[초선이 바꾼다] 정일영 “토론 없이 싸우는 정치가 ‘나쁜 국회’ 낳아”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20.05.0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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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민주당 인천 연수을 정일영 당선인
“후보 단일화 제안 내가 거부…사전투표 의혹, 대한민국서 불가능”
“존경하는 정치인 文대통령…정책으로 경쟁하는 국회 돼야”

“다 말렸죠. ‘나쁜 정치’ 하려면 시작도 말라고.”

이번 21대 총선에서 첫 배지를 단 정일영 더불어민주당 당선인(63). ‘정치 입문’의 계기를 묻자,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처음에는 가족들도 주변 지인들도 다 반대했다”고 웃어 보였다. 정 당선인은 “소위 폼 잡고, 권력을 쫓는 정치인의 모습으론 더 이상 국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며 “싸우지 않고 일하는 정치, 그래서 지탄받지 않는 정치 하겠다고 가족에게 말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어려운 길을 걸을 것”이라고 밝혔다. 4일 인천 송도의 한 사무실에서 정 당선인을 만나 21대 국회를 준비하는 ‘새내기 정치인’으로서의 포부를 들었다.
 

‘거물급’ 현역 민경욱‧이정미 잡은 ‘교통 9단’

제21대 총선 인천 연수을에서 당선된 정일영 더불어민주당 당선인이 4일 인천 사무소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기자
21대 총선 인천 연수을에서 당선된 정일영 더불어민주당 당선인이 4일 인천 사무소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기자

‘옆집 아저씨’ 같은 푸근함으로 ‘좋은 정치’를 말한 정 당선인. 그러나 불과 3주 전까지만 해도 그의 21대 국회 진입을 확언한 이는 없었다. 정 당선인은 4‧15 총선에서 인천 연수을에 출마했다. 재선을 노리던 민경욱 미래통합당 의원과 정의당 당 대표를 지낸 이정미 의원의 벽은 높았고, 선거 막판까지 격전을 벌여야 했다. 최종 결과 정 당선인이 민 의원을 2.3%p 간발의 차이로 누르고 인생 첫 배지를 달았다. 연수구가 독립선거구로 분리된 15대 총선 이후 연수에서 24년 만에 민주당의 첫 승리다. 다만 선거 중엔 끊임없이 정의당과 단일화 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었다. 그러나 정 당선인의 생각은 달랐다.

“물론 상대방(이정미 의원) 진영에서 간접적으로 (단일화 제안이) 있었다. 그러나 단지 승리를 위한 단일화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 정치적 계산을 앞세워 승리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정치는 결국 진정성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선거 내내 현수막 문구의 점 하나까지 신중하게 살폈다. 공약은 성실하게, 그러면서도 전문성 있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이런 면 (진정성)을 지역 주민분들이 봐준 것 같다. 특히 기존 분(민경욱 의원) 보다 더 큰 변화와 개혁을 보여줘야 한다는 열망이 (지역에) 있었던 것 같다.”

단일화 없는 3파전을 택한 정 당선인의 노림수는 성공했다. 그러나 격전의 후유증도 남았다. 선거 중 현역 의원들의 각종 공세에 맞서며 ‘진흙탕’을 뒹굴어야 했다. 특히 같은 진보 표심을 두고 다퉜던 정의당은 선거 내내 그를 보수 정부의 ‘수혜자’라고 비판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추진한 철도 민영화에 정 당선인이 앞장섰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선거가 끝난 후엔 민 의원이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그는 한숨을 한 번 짧게 쉬고 “오늘 점심에도 그 얘기를 하다 왔다”며 답을 이었다.

“(정의당 공세에 대해) 선거 기간에 굳이 대응하지 않았던 건 언젠가는 밝혀지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는 정말 당당하다. 같이 일한 국토부 후배들도 다 안다. 내가 철도 민영화를 말한 적이 없다. 그렇다고 내가 추진할 자리에 있지도 않았다. 나중에는 인천공항공사 사장으로 있을 때 박근혜 전 대통령이랑 찍은 사진까지 공개하며, 나를 (보수 정부와) 어떤 관련이 있는 것처럼 퍼뜨리더라. 아니 어떤 공직자가 대통령이 현장에 왔는데 행사에 참여도 안 하겠나. 정말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민 의원의 주장에 대해선 뭐라 얘기하고 싶지 않다. 다만 시대가 변했다. 지금은 투명하고 공정하고 감출 수 없는 나라에 우린 살고 있다.”

정 당선인은 정치판에선 이제 막 데뷔한 ‘초보’다. 그러나 공직 사회에서 그는 성공신화를 쓴 ‘프로’였다. 정 당선인은 1979년 제23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교통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다. 해양수산부와 건설교통부 등에서 근무했으며 교통안전공단 이사장과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 등 핵심 요직을 두루 거쳤다. 이번 선거에서 ‘교통전문가’를 핵심 구호로 내세운 이유다. 21대 국회 담당 상임위원회 역시 국토교통위원회를 희망하고 있다고 했다. 연수을의 핵심 과제도 교통을 짚었다.

“송도국제도시는 GTX-B 등 큰 교통 현안이 많다. 약 30년간 국토부에서 근무했다. GTX 착공을 조금 더 앞당길 수 있는 방법이 분명 있다. 예를 들어 민자 방식을 BTO(수익형 민간투자사업)와 BTL(임대형 민간투자사업)로 혼합해 진행하고, 심의 과정을 대폭 줄이는 패스트트랙을 적용할 수도 있다. 철도는 늦어지면 한없이 지연될 수 있는 사업이다. 실무자들이 의지를 갖고 다양한 프로세스를 검토할 수 있도록 같이 방법을 모색할 것이다.”

다만 정 당선인이 준비 중인 ‘1호 법안’은 교통이 아닌 교육과 닿아있다. 그는 “아직 확정은 아니고 고민 중”이라고 전제를 한 뒤 “송도 국제도시에 와보니 젊은 학부모들이 많이 있더라. 이분들이 가장 많이 하는 걱정이 학교다. 아파트 입주가 다 끝났는데 학교는 완공되지 않은 게 불안하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아파트가 들어서면 학교도 같이 들어서는 법을 명문화해야 한다. 관련해 지역 교육감, 그리고 교육부와 국토부 실무자들의 의견을 수렴할 것”이라고 밝혔다.

 

“文대통령의 ‘진정성’을 닮고 싶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12일 인천공항공사에서 열린 `찾아가는 대통령.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습니다!' 행사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발표한 정일영 당시 인천공항공사 사장에게 감사의 표현을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12일 인천공항공사에서 열린 `찾아가는 대통령.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습니다!' 행사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발표한 정일영 당시 인천공항공사 사장에게 감사의 표현을 하고 있다.

정 당선인은 선거가 끝난 후 누구보다 바쁜 봄날을 보내고 있다. ‘일하는 의원’이 되기 위해, 매일 연수을 주민들을 만나 민원을 청취하고 있다. 다만 의견 수렴의 방법이나 장소를 간담회장으로 한정 짓지 않는다. 지난 주말에는 등산복을 입고 직접 청량산을 오르며, 주민의 입장에서 불편한 게 무엇인지를 살폈다. 모든 문제의 답은 결국 ‘현장’에 있다는 게 정 당선인의 신념이다.

“현장을 찾아 그냥 쭉 둘러보고 온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 CEO나 기관장의 입장으로 봐선 답이 보이지 않는다. 고객의 입장에서 보는 게 중요하다. 인천공항에서 일할 때도 늘 운동화를 신고 일했다. 매일 같이 화장실도 가보고, 음료대도 가보고, 청소도 직접 했다. 정치도 마찬가지 아니겠나. 수요자의 입장에서 끈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문제점을 살펴야 한다.”

그는 닮고 싶은 정치인으로 문재인 대통령을 꼽았다. 정 당선인이 인천공항공사 사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문 대통령은 당선 3일 뒤 인천국제공항을 찾았다. 그때 문 대통령이 자신이 앉을 의자에 바로 착석하지 않고 “여기가 제 자리 맞나요?”라고 물었던 기억이 정 당선인에겐 인상깊은 장면으로 새겨졌다고 했다. 정 당선인은 “굉장히 평범한 말이지만 그게 배려고 겸손이지 않나”라며 “성실하고 배려심을 갖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참 닮고 싶다”고 말했다.

정 당선인에게 앞으로의 포부를 물었다. 그러자 그는 인터뷰 시작 때 말한 ‘좋은 정치’를 다시금 꺼냈다. 그만큼 지금까지의 국회가 ‘나쁜 정치’의 모습을 보였다는 게 그의 냉철한 평가다. 정 당선인은 “많은 국민들이 정치를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나. 토론하지 않고 싸우기만 하는 정치로는 국민에게 존중을 받을 수 없다”며 “앞으로는 정책과 법안을 가지고 국민들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에게 ‘정치인으로서 어디까지 꿈꾸나’라는 질문을 던지자 덤덤하게 웃으며 “대단한 인물이 되겠다는 생각이 없다”고 했다. 이어 “나중에 생각하면 그 사람 참 일 열심히 했다고, 그래서 국민들 기억에 남는 정치인이 됐으면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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