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위기 상황에서 빛나는 영국 사회보장제도
  • 방승민 영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5.14 14:00
  • 호수 1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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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최대 코로나 피해국’ 오명에도 사업체에 월급 80% 지급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유럽 최대 피해국’ 타이틀은 불명예스럽게도 이탈리아에서 영국으로 옮겨 갔다. 이로 인한 소상공인의 신음 또한 영국은 피할 수 없게 됐다. 영국 정부는 코로나19가 유럽 전역으로 퍼지기 시작한 지난 3월 120억 파운드(약 18조3000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코로나 긴급 경제자금 및 지원금으로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긴급 경제 지원 방침의 초점은 사업체 유지와 고용·소득 유지에 맞춰져 있다. 봉쇄령으로 인해 영국 내 상점·식당 등 많은 사업체는 두 달여째 임시로 영업을 중단한 상태다. 정부는 일시적인 소비 증진을 위한 지원보다는 이들을 위한 근본적인 사업체 및 고용 유지 지원에 중점을 두겠다고 밝혔다.

4월14일 영국이 코로나19 확산 억제를 위해 계속 봉쇄를 하고 있는 가운데, 마스크를 쓴 남성이 런던 거리의 한 폐업한 상점 앞을 지나가고 있다. ⓒPPA 연합
4월14일 영국이 코로나19 확산 억제를 위해 계속 봉쇄를 하고 있는 가운데, 마스크를 쓴 남성이 런던 거리의 한 폐업한 상점 앞을 지나가고 있다. ⓒPPA 연합

일시적 소비 증진보다 사업체 유지에 초점

우선 영국 노동법 역사상 처음으로 ‘임시해고’가 사용되었다. 자금 부족이나 기타 이유로 사업체 운영이 불가능해진 경우, 회사와 고용주는 직원에 대해 임시해고 방침을 내릴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코로나바이러스 고용 유지 지원책(CJRS·Coronavirus Job Retention Scheme)’을 발동했으며, 해당 제도를 통해 사업체마다 국민의 고용 및 소득 유지에 초점을 둔 지원금을 지급한다.

현재 코로나 사태와 봉쇄령으로 인해 정상적 영업이 불가능한 사업체들은 이 제도를 활용해 기존 직원을 유지함과 동시에 임금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현 사태로 인해 최소 3주 이상 임시해고 상태가 유지되는 직원에 한해 월 2500파운드(약 380만원) 상한선 내에서 직원 임금의 80%를 정부가 지급하며 이에 수반되는 건강보험료 및 연금도 함께 지원한다. 이는 3월1일부터 시작된 임시 지원 정책으로, 향후 4개월간 영국 내 모든 사업체에 동일하게 적용될 계획이다. 정부는 고용주에게 해당 직원의 급여80%에 해당하는 금액을 사업자 계좌를 통해 현금으로 지급하며, 이 금액은 전액 직원에게 제공된다. 추가 20%에 대한 지급은 고용주의 재량으로, 의무는 아니다. 정부는 4월20일부터 임시해고 직원에 대한 지원금 신청을 받기 시작했으며, 접수 첫날에만 18만5000여 개 사업체가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 제도는 정직원뿐만 아니라 계약직·시간제 근로자 모두에게 적용된다. 사업체가 아닌 일반인도 가정부·청소부 등과 같이 급여명세서를 발급하는 서비스를 주기적으로 이용한 경우 임시해고 등록을 통해 이들 임금의 80%까지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국세청은 제도 시행 후 지난 2주간 영국 전체 근로자의 4분의 1에 달하는 630만 명이 80만 개의 회사로부터 임시해고됐다고 밝혔다.

영국 정부는 이와 같은 지원에도 어려움을 겪을 사업체들을 위해 ‘코로나 긴급 사업자금 대출 정책’ 또한 추가로 시행했다. 사업체들의 긴급자금 확보를 위해 연간 총매출액이 4500만 파운드(약 680억원) 미만인 중소기업체를 대상으로, 최대 6년 동안 500만 파운드(약 76억원) 한도 내에서 긴급 대출을 가능케 했다. 정부는 대출금의 80% 상환을 보증하고 첫 12개월 동안의 이자를 전액 지원한다. 이와 더불어 사업체당 최대 5만 파운드(약 7600만원)까지 긴급 대출이 가능한 소상공인 맞춤 지원책도 별도로 준비돼 있다.

특히 봉쇄령과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가장 큰 타격을 받게 된 소매업·유흥업·식당·관광레저 산업 사업체들은 별도의 절차 없이 12개월간 사업세 납부가 면제된다. 세금 납부기한을 지키기 어려운 사업체의 경우 소득세 및 부가세 납부기한을 연장해 지연 벌금이나 이자 없이 유예가 가능하도록 했다. 건물을 임차해 사업을 하는 이들 중 코로나로 인해 임대료 지불이 불가능한 경우 3개월간 임대료를 내지 않아도 퇴거 명령을 받지 않도록 하는 보호책 또한 발표했다. 영국 정부의 재난 지원책은 이처럼 ‘그 누구라도’ 사각지대가 없도록 하는 데 목적을 둔다.

영국의 파운드 동전 및 지폐 ⓒPPA 연합
영국의 파운드 동전 및 지폐 ⓒPPA 연합

향후 ‘세금 폭탄’ 우려 있지만 대체로 만족

반면에 영국은 코로나와 관련해 지역사회 소비 증진을 위한 별도의 지원금은 지급하지 않는다. 이는 5월부터 전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한국과는 다소 차이를 보인다. 그 대신 기존의 제도를 활용해 코로나 사태로 인해 실직하거나 직접 코로나에 감염돼 근무가 불가능한 경우에 한해 개인에게 소정의 지원금을 제공한다. 코로나에 걸렸거나 의심 증상으로 자가격리 중이어서 근무가 불가능한 경우 기존의 병가 지원 제도(SSP·Statutory Sick Pay)를 이용해 최대 28주까지 매주 약 96파운드(약 15만원)를 지급받을 수 있다.

만일 코로나 사태로 임시해고가 아닌 실직을 했거나 사업 중단으로 소득이 사라진 경우, 경제활동이 가능한 인구의 최저소득을 보장하는 제도인 ‘유니버설 크레딧(Universal Credit)’을 온라인으로 신청해 지원금을 직접 수령할 수 있다.

이같이 영국 정부의 ‘꼼꼼한’ 정책은 자국 내 사업체를 운영하는 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소식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소상공인을 위한 지원책의 경우, 전액 세금을 기반으로 한 자금임을 고려해 볼 때 향후 이 부담이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오는 것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코로나 사태가 끝난 후 찾아올 경제 불황 등 후폭풍에 대한 대비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사업체 지원 대상이 넓을뿐더러, 지원 방향성과 그 효과에 대해서도 아직까진 긍정적인 평가가 지배적이다.

영국의 한 소기업에서 근무 중인 리아 포틴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코로나로 인해 임시해고 상태로 근무가 불가능해졌음에도 집세 등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을 만큼의 지원금이 나와 다행”이라고 밝혔다. 비록 코로나 사태 대응이 늦어 유럽 내 최대 사망자를 기록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지만, 기존의 사회보장제도를 십분 활용해 경제적 후유증을 비교적 잘 수습하고 있다는 게 영국 내 다수의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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