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8일’ 나주, 1조원 규모 방사광가속기 거머쥘까
  • 호남취재본부 정성환·고비호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0.05.07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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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나주, 방사광가속기 최종 관문 진출
최종 유치경쟁, 나주 vs 청주 2파전 압축
민선 7기 도정·전남 정치권 ‘시험대’ 올라

전남 나주가 1조원 대 국책사업인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구축사업의 1차 관문을 통과했다. 유치경쟁의 큰 산 하나를 넘은 셈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신규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구축사업 부지의 현장 확인 대상 후보지 2곳으로 나주시와 청주시를 결정했다고 6일 밝혔다. 이에 따라 차세대 방사광가속기의 유치 경쟁은 전남 나주와 충북 청주의 2파전으로 좁혀졌다. 최종 선정지는 이틀 후인 8일 결정될 예정이다. 나주시가 14만명에 달하는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방사광가속기 구축사업을 가져 올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영록 전남지사를 비롯해 전남 농업의 각 분야를 대표하는 30개 농업인단체 회장들이 방사광가속기 유치계획서 제출 마감 하루 앞둔 4월 28일 오후 도청 앞 광장에서 전남 유치를 호소하고 있다. ⓒ전남도
김영록 전남지사를 비롯해 전남 농업의 각 분야를 대표하는 30개 농업인단체 회장들이 방사광가속기 유치계획서 제출 마감 하루 앞둔 4월 28일 오후 도청 앞 광장에서 전남 유치를 호소하고 있다. ⓒ전남도

경제효과 6조원 ‘꿈의 현미경’…나주 품에 안길까

6일 전남도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경북 포항, 전남 나주, 충북 청주, 강원 춘천 등 지방자치단체 4곳이 유치계획서를 제출해 이날 사업 지원 계획 등을 담은 설명회를 진행했다. 나주는 오후 2시부터 명창환 전남도 기획조정실장이 발표자로 나서 PPT 발표 25분, 질의응답 25분, 평가정리 20분 등 총 70분 간 발표했다. 과기부는 심사를 거쳐 나주와 청주를 1·2위로 선정했다. 평가 결과와 순위는 따로 밝히지 않았다.

과기부가 설정한 방사광가속기 구축사업 부지 유치 공모계획 평가항목과 기준은 기본요건(25점), 입지 조건(50점), 지자체 지원(25점) 등이다. 과기정통부는 다음날인 7일 이 두 곳의 현장심사에 나선다. 운명의 8일에는 15명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선정평가위원회가 최종적으로 선정한 우선협상 지역이 발표된다. 나주 현장심사는 이날 오후 한전공대 예정지 부근 연구소 및 클러스터 입지 예정지에서 열릴 예정이다.  

이날 선정된 나주는 유치 시 국토 균형발전과 한전공대와의 시너지 효과, 안전성과 확정성을 장점으로 내세운 것이 높게 평가를 받은 것으로 분석된다. 청주는 수도권과의 교통 접근성과 국책연구시설과의 시너지 효과를 강조했다. 나주는 줄곧 대형 첨단연구시설이 전무하기 때문에 국가 균형발전을 위해 다른 곳이 아닌 이곳에 유치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호남에 국가연구시설이 전무하다는 점에서 국가균형발전론을 외친 정치권의 목소리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된다. 다른 선정 요인으로는 3월 개교 예정인 한전공대와 나주 한전 본사의 시너지 효과가 꼽힌다. 

 

‘국토균형발전론’ 높은 평가

안전성과 확정성도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전남도는 나주가 안전성과 확정성에서 경쟁지역을 압도한다며 유리한 입지라는 점을 강조해왔다. 자연재해로부터 안전하고 인근에 160만평의 부지가 이미 조성돼 있어 부지 공사기간 2년 단축은 물론 미래 확장 부지 확보도 용이하다는 것이다. 김영록 전남지사는 “고도차가 커 부지 개발이 어려운 타 지역과 다르게 나주 예정부지는 표고 30m 이하가 약 90%인 평지로 부지 평탄화 등 공사가 쉽다”며 “가속기 시설을 짓기 위해 필요한 부지 공사기간을 1년 이상 단축하는 등 신속한 도시관리계획 변경 등을 통해 최종적으로는 2년 이상 공사기간을 단축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영록 전남지사(가운데)가 6일 대전 인터시티호텔에서 발표 평가장으로 입실하는 전남도 관계자들을 격려하며 전남 나주의 다목적방사광가속기 구축사업 유치계획서를 살펴보고 있다. ⓒ나주시
김영록 전남지사 등이 6일 대전 인터시티호텔에서 발표 평가장으로 입실하는 전남도 관계자들을 격려하며 전남 나주가 제출한 다목적방사광가속기 구축사업 유치계획서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신정훈 21대 국회의원 당선인, 김영록 전남지사, 강인규 나주시장 ⓒ나주시

‘과한 입지조건 배점’ 최대 걸림돌

그러나 이번 1차 심사에서 시설 접근성, 배후도시 등 입지에 가장 큰 비중을 둔 것으로 알려져 최종 관문 돌파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 3일, 21대 국회의원 호남권 당선인들이 “차세대 방사광가속기 입지 선정 기준을 개선해야 한다”고 촉구한 것도 이 때문이다. 광주·전북·전남 등 호남권 국회의원 당선인 28명은 이날 공동성명을 내 “방사광가속기의 공모계획 평가 기준이 특정 지역에 유리하도록 정해졌다는 의구심이 증폭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당선인들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평가 기준을 보면 입지 조건 배점이 과하다”며 “연구 수요가 많은 수도권과 인접한 후보지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형식화한 현장 평가도 마치 갈 곳을 정해놓은 것으로밖에 이해할 수 없다”며 “지역 간 공정한 경쟁과 균형 발전, 지속가능한 성장과 혁신을 담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남 지진, 방사광가속기 입지 변수되나

최근 전남 해남지역에서 사례를 찾기 힘든 군집형 지진이 계속되면서 1조 원대 국책사업인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입지 선정의 변수로 떠올랐다. 이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방사광가속기 부지 주요 평가항목 기준으로 ‘지진으로부터의 안정성’을 꼽았다. 증빙자료로 최근 20년 동안 제공부지로부터 50km 이내에 리히터 규모 3.0 이상 지진 발생 기록까지 제출하도록 했다. 결과적으로 이번 해남 지진은 나주에서 반경 50km를 벗어난 데다 규모(강도)도 3.0에 미치지 못해 부지 선정 평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전망이다. 다만, 이번 지진으로 전남지역의 단층 존재는 증명된 만큼 부지 선정 평가에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나주 꼬오옥~”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전남 나주 유치의 간절함을 담은 현수막이 전남도청사 외벽에 걸려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나주에 꼬오옥~”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전남 나주 유치의 간절함을 담은 현수막이 전남도청사 외벽에 걸려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나주가 이 사업을 유치하면 전국 최하위 수준인 호남권의 연구개발 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전남도는 방사광가속기가 미래 100년을 이끌어갈 신성장산업 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사업에는 국비 8000억원 투자된다.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KBSI) 조사에 따르면 1조원의 비용이 들어가는 이 시설의 생산유발 효과는 6조 7000억원, 고용창출 13만 7000명에 이를 정도로 경제적 효과가 크다. 2022년에 공사를 시작하며, 2027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치적으로 볼 때 정부가 대선을 앞두고 충청권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어 호남권 유치가 쉽지 않다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호남권 전체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230만 명이 지지 서명에 동참하는 등 지역의 유치 열망이 높은 만큼 정치적 고려가 아닌 공정한 평가와 경쟁을 통한 유치 가능성에 기대가 커지고 있다.

 

유치 실패시 민선7기 도정·정치권 책임론 불가피

반면 유치에 실패할 경우 민선 7기 하반기를 맞은 전남도와 최근 4·15 총선으로 재편된 지역 정치권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광주·전남·전북지역 각 지자체는 물론 대학, 연구단체, 지역 정치권 등이 똘똘 뭉쳐 유치활동을 전개해온 만큼 유치에 실패하면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차세대 방사광가속기는 기초과학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초정밀 거대 현미경’이다. 첨단 반도체 공정과 신약 개발 등 다양한 산업부문에 활용할 수 있을뿐 아니라, 기초과학 연구에도 필수적인 첨단장비다. 미국 제약사 길리어드의 신종플루 치료제 타미플루와 AIDS 치료제 사퀴나비르 등이 방사광가속기를 이용한 대표적 신약 개발 성과다. 

D-2, 과연 충북과의 마지막 진검승부 끝에 전남도의 염원인 차세대 방사광가속기 유치의 꿈이 현실로 이뤄질 수 있을 지 지역민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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