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회 출석률 높은 총수와 낮은 총수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0.05.13 10:00
  • 호수 1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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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그룹 전수조사 …이사회 참석 안 하면서 연봉은 챙기는 총수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2017년 들어 사내이사로서 이사회에 단 한 차례도 출석하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해 10월26일 사내이사 임기를 연장하지 않고 물러났다.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도 지난해 그룹 지주사인 금호산업 사내이사직에 있으면서 한 번도 이사회에 참석하지 않다가 퇴임했다. 롯데지주 사내이사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지난해 내내 등기임원직을 유지한 총수 중 가장 낮은 출석률을 기록했다. 올해는 4차례 열린 이사회에 모두 불참했다. 

일부 대기업 총수가 사내이사로 이름을 올리고도 이사회에 제대로 참석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사회는 회사 업무 집행에 관한 주요 사항을 결정하는 기구로, 기업 지배구조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그룹을 대표하고 막강한 권한을 휘두르며 많은 연봉도 받아가는 총수들이 이사회를 등한시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비판 여론 속에서 몇몇 총수는 이사회 출석률을 높이려 노력하지만, 계속 불참하거나 아예 사퇴해 버리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시사저널은 현재 국내 20대 그룹(자산총액 기준) 가운데 오너와 상장 계열사가 있는 기업 총수의 지난해 이사회 출석률을 전수조사했다. 대표 계열사 내지 지주회사를 기준으로 했다. 

조사 결과 삼성, 롯데, 대림, 금호아시아나 등 4개 그룹의 총수이자 사내이사들은 이사회 출석률이 75%에 못 미쳤다. 75%는 국민연금이 사외이사 출석률의 마지노선으로 제시한 수치다. 국민연금은 ‘수탁자 책임 활동에 관한 지침’에서 사외이사의 경우 이사회 출석률이 75% 미만이면 국내 주식 의결권 행사 시 반대 사유 중 하나라고 정해 뒀다. 

사내이사에 대해서는 기준이 없으나, 사외이사에 준하는 출석률 기준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경제개혁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지적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해 참석해야 했던 5차례 이사회에 모두 얼굴을 비치지 않았다. ‘2019년 경영계획 승인’ ‘이사 보수 책정’ ‘대구·경북창조경제혁신센터 창업지원사업’ 등 주요 안건이 이 부회장 없이 의결됐다. 이 부회장은 2016년에는 이사회 출석률이 100%였으나 2017년부터 이사회 출석률 0%를 유지했다. 

ⓒ일러스트 김세중
ⓒ일러스트 김세중

이사회에 올라온 의안들은 100% 통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지난해 진행된 롯데지주 이사회 13번 중 4번만 참석(출석률 30.8%)했다. 역시 신 회장이 없는 사이 ‘롯데글로벌로지스 지분 매입’ ‘해외 자회사 지분 매각’ ‘롯데카드 경영권 지분 매각 승인’ 등의 안건이 가결됐다. 신 회장도 2017년 100%였던 이사회 출석률이 2018년 구속수감 등으로 7%까지 급락한 뒤, 2019년에도 저조한 수준을 이어갔다. 

지난해 11차례 개최된 대림산업 이사회에 이해욱 회장은 7번 참석(출석률 63.6%)했다.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경우 지난해 첫 이사회 참석 후 5차례 연속 불참(출석률 16.7%)했다. 

총수 4명의 출석률은 다른 사내이사나 사외이사에 비해서도 현저히 낮다. 총수를 제외한 이사회 구성원의 평균 출석률은 삼성전자 98.6%, 롯데지주 100%, 대림산업 100%, 금호산업 88.2%다. 유독 총수들만 이사회에서 보기 힘들었던 것이다. 이미 총수를 중심으로 결정돼 이사회에 올라온 의안들은 100% 통과됐다. 사내이사들과 사외이사들 중 의안에 반대 의견을 낸 이는 전무했다. 주식회사 경영의 ‘허브’인 이사회가 해당 기업들에선 사실상 ‘거수기’에 지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경제개혁연대는 지난해 4월과 6월 일부 대기업 총수들의 저조한 이사회 출석률을 잇달아 지적하면서 “재계에서 말하는 경영이 이사회를 통한 것이 아니라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또 “총수 일가가 그룹 내 다수 계열사의 등기임원을 겸직하면서도 중요한 이사회 결정에는 참여하지 않는 그릇된 관행은 최근 지배구조 문제로 논란을 겪은 그룹에서 주로 나타났다”며 “이사의 권한을 누리면서 그에 부합하는 책임은 회피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특히 이 단체는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됐던 삼성과 롯데에 대해 “이재용 부회장은 2018년 2월 항소심 선고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으나 삼성전자 이사회에는 단 한 차례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신동빈 회장은 2018년 10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나 롯데지주 이사회에 한 차례 모습을 드러냈을 뿐”이라고 언급했다. 

이런 총수들의 연봉은 얼마나 됐을까. 지난해 이해욱 대림산업 회장의 보수는 59억8300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신동빈 롯데 회장이 롯데지주에서 받은 급여는 18억6700만원이었다. 2억원의 상여금 등을 포함하면 20억7206만원이다.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 회장은 금호산업에서 급여 6억6300만원과 상여 2억5300만원 등 총 9억1600만원을 수령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2017년 3월부터 삼성전자로부터 급여를 받지 않아 왔다. 하지만 이 부회장 일가의 삼성 내 지배적인 영향력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정의선·허창수·구자열 참석률 100% 

모든 대기업 총수의 이사회 출석률이 낮은 것은 아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수석부회장과 허창수 GS그룹 명예회장은 지난해 각각 현대차와 GS 이사회에 모두 참석했다. 구자열 LS그룹 회장(LS),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카카오), 김남구 한국투자금융 회장(한국금융지주),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교보생명보험),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효성)도 100% 출석률을 기록했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두산·90%),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한진칼·88%),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현대백화점·83%) 등의 이사회 출석률도 75% 이상이었다. 

지난해 상반기 경제개혁연대 등을 통해 비판 여론이 터져 나오자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 회장, 조원태 한진 회장, 정지선 현대백화점 회장 등은 하반기 들어 이사회 출석에 더욱 신경 쓰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신동빈 회장도 지난해 1~5월 열린 6차례 이사회에 내리 불참하다가 6~12월 중엔 7차례 중 4차례 모습을 나타냈다. 그러나 올해 들어선 4번의 이사회에 모두 참석하지 않았다. 

경제개혁연대는 이사회 출석률이 저조한 총수들을 향해 “이사회에 출석할 의사가 없다면 스스로 그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주주와 회사를 위한 최소한의 도리일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개혁연대가 지목한 ‘자리’는 최고경영자였는데, 일부 총수는 사내이사직만 내려놨다. 삼성전자는 “이재용 부회장이 2019년 10월26일 임기 만료로 사내이사에서 퇴임했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은 사내이사직 퇴임 후에도 부회장직을 계속 수행하며 신사업 발굴과 대규모 투자 결정, 미래 먹거리 육성 등에 앞장서 왔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전 회장도 지난해 3월29일부로 사내이사에서 사퇴했다. 이해욱 대림산업 회장은 올해 3월27일부로 사내이사 임기가 만료된 뒤 물러났다. 

출석률이 저조했던 총수들의 잇따른 사내이사직 퇴임을 두고 ‘전문경영인 체제 강화’라는 호평도 있지만 ‘책임·비난 회피’란 지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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