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거론되는 잠룡들 중에서 차기 대통령 나온다”
  • 감명국 기자 (kham@sisajournal.com)
  • 승인 2020.05.11 08:00
  • 호수 1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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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선 D-700일 여론조사 분석…‘깜짝 스타’는 없었다

예전 정치권에 ‘김심(金心)’이 크게 회자된 바 있다. 강력한 카리스마로 대통령에 올랐던 YS(김영삼)와 DJ(김대중)가 각각 대통령 임기 중 여권의 차기 대선주자로 누구를 마음에 두고 있는지가 대권 향배에서 최대 관심이었다. 실제 YS 정권 말기인 1997년은 여권에서 무려 9명의 대선주자가 난립하는 혼전 양상을 나타냈고, 저마다 김심은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DJ 정권 말기인 2002년도 비슷한 양상이었다. 민주당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노무현 후보 뒤에 “김심이 개입하고 있다”며 이인제 후보 측이 반발하기도 했다. 임기 말 대통령의 힘이 빠지는 ‘레임덕’ 현상은 어김없이 찾아왔지만, 그래도 현직 대통령의 영향력을 무시하긴 어려웠다. 

2022년 3월 치러질 차기 대선을 약 700일 정도 남겨둔 지난 4월말,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무려 63.7%를 기록했다.(4월20~24일 리얼미터 조사) 다음 주(4월27~29일) 조사에서 60.6%로 소폭 하락했지만, 가장 최근인 그다음 주(5월4~6일) 조사에서 다시 61.4%로 반등했다. 3주 연속 60%대를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4·15 총선의 ‘여당 압승’ 일등공신도 문 대통령이란 해석이 지배적이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탓인지 5월7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경선에서도 친문 당권파인 김태년 의원이 당선됐다. 정치권에서 ‘문심(文心)’이 회자되기 시작하는 이유다.

(왼쪽부터)이낙연·이재명·홍준표 ⓒ시사저널 이종현·임준선·박은숙
(왼쪽부터)이낙연·이재명·홍준표 ⓒ시사저널 이종현·임준선·박은숙

“전혀 뜻밖의 새로운 인물 등장 가능성 희박”

2016년 4월 총선을 시작으로 2017년 5월 대선, 2018년 6월 지방선거에 이어 이번 4·15 총선까지 내리 승리한 더불어민주당은 내쳐 내후년 대선까지 5연승을 치달을 기세다. 대선을 700일이나 남겨둔 시점에서 섣불리 예단하긴 어렵지만, 민주당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총선 직후인 4월20~24일 리얼미터가 조사한 ‘대선주자 선호도’에 따르면, 이낙연 전 총리는 무려 40.2%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총선 압승의 컨벤션 효과라고 해도, 대선을 1년 이상 남겨두고 여러 주자들이 난립하는 상황에서 특정 주자가 40% 이상의 압도적 지지율을 기록한 전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나마 2위(이재명 경기지사)도 여권 인사다.

살아 움직이는 생물인 정치판에서 어떤 돌발변수가 발생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는 이 전 총리가 과연 지금의 지지율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친문’이 엄호하는 ‘문심’은 아직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전혀 예상치 않았던 새로운 인물이 갑자기 나타나서 대권을 거머쥘 확률은 극히 낮다는 점이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이런 점을 지적한다. 역대 대선의 경험이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기도 한다. 1987년 개헌 이후 민주주의가 안정적으로 정착한 한국 정치의 특성상 항상 예측 가능한 인물이 결국 차기 대선의 주인공이 됐다는 것이다.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는 “역대 대선 사례를 볼 때 지금 시점에서 거론되지 않았던 후보가 대권에 오른 적은 한 번도 없었다”며 지금 언급되는 대선주자들 중에서 20대 대통령이 탄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뚜렷한 주자가 떠오르지 않고 있는 야권에 대해서도 “황교안 전 대표의 빈자리를 대신할 새로운 잠룡이 추가될 순 있겠지만, 그 인물도 현재 거론되고 있는 홍정욱, 김세연 등 예상 가능한 인물들일 것이다. 전혀 뜻밖의 새로운 인물이 나타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했다.

ⓒ시사저널 고성준·최준필·임준선

역대 대선 승자들, 모두 D-700일 상황에서 유력 후보

지난 19대 대선(2017년 5월)을 700일 정도 남겨둔 시점인 2015년 6월 당시 여야에서 거론된 대선주자군은 여권에서 김무성 새누리당(통합당의 전신) 대표, 김문수 전 경기지사, 홍준표 경남지사, 정몽준 전 대표, 남경필 경기지사 등이고, 야권에선 박원순 서울시장, 문재인 새정치연합(민주당의 전신) 대표, 안철수 전 새정치연합 대표, 안희정 충남지사 등이었다.

여권에서는 김무성 대표가 20~25%를 유지하며 선두를 질주하는 상황이었고, 야권에서는 박원순 시장과 문재인 대표의 엎치락뒤치락 선두 경쟁이 치열했다. 이렇게 선두권 ‘빅3’를 형성한 세 후보 가운데 결국 대권의 주인공이 탄생했다. 특히 2015년 6월 이후 대선이 치러지기까지 700일 동안엔 한국 사회를 뒤흔든 엄청난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헌정 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탄핵이라는 돌발변수가 발생한 것이다. 이렇듯 격동의 상황 속에서 당시 박근혜 대통령과 각을 세우며 대선주자로 급부상한 유승민 의원과 일개 기초단체장(성남시장) 신분으로 대선 경쟁에 뛰어든 이재명 지사 등 새로운 잠룡이 등장했지만, 전체 판도까지 뒤집지는 못했다. 

18대 대선(2012년 12월) 전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선거 700일 정도를 앞둔 2011년 1월 당시 여론조사 내용을 보면, 박근혜 전 새누리당 대표가 여야 통틀어 압도적 우세를 점하며 ‘대세론’을 형성하고 있었다. 후발주자들과 더블스코어 이상으로 간격을 벌렸다. 그리고 이런 추세가 결국 대선까지 이어지며 최종 승자가 됐다. 당시 여권 후보로 오세훈 서울시장, 김문수 경기지사,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 등이 있었고, 야권 후보로는 유시민 국민참여당 정책연구원장, 손학규 민주당 대표, 한명숙 전 총리,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 등이 있었지만, 박 전 대표를 넘어서진 못했다.

18대 대선 구도에서도 D-700일 이후 새로운 잠룡의 급부상이 있었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뒤늦게 바람몰이를 하며 대선전에 뛰어들었다. 두 사람은 후보단일화까지 성사시키며 ‘대세론’을 뒤집기 위해 분투했지만, 끝내 박 전 대표의 벽을 뛰어넘지는 못했다.

17대 대선(2007년 12월)을 700일 정도 앞둔 2006년 1월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당시 노무현 정부에서 초대 국무총리를 지낸 고건 전 총리가 여권에서 선두를 질주했고, 야당인 한나라당(통합당의 전신)에선 이명박 서울시장과 박근혜 당 대표 간 각축전이 치열했다.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민주당의 전신) 내 지지 기반이 취약했던 고 전 총리는 결국 중도 낙마했지만, 야권에선 이 시장이 박 대표와 해를 넘겨 2007년까지 치열한 혈투를 벌이며 승부를 이어갔고, 결국 그 기세로 대권까지 손에 잡았다. 

그나마 가장 극적인 뒤집기 승부가 연출됐던 16대 대선(2002년 12월)에서도 최종 승자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예측 가능한 후보였다. 16대 대선을 700일 정도 남겨둔 시점인 2001년 1~2월경 여론조사를 보면, 당시 노무현 해수부 장관은 이인제 민주당 최고위원, 김중권 민주당 대표와 더불어 여권 잠룡 ‘빅3’를 형성하고 있었다. 민주당 경선에서 대세론을 형성했던 이 최고위원을 꺾었고, 본선에서도 역시 여야 통틀어 선두를 질주했던 이회창 한나라당 대표를 꺾는 이변을 거푸 연출했지만, 이미 D-700일 시점에서 검증된 후보였다. 반면에 2002년 월드컵 붐을 타고 대선주자로 급부상한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표는 노무현 장관과의 후보단일화 경선에서 패하면서 대이변의 주인공이 되지는 못했다.

“대선 투표, 급격한 변화보다 안정적 변화 선호 경향”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의 의뢰를 받아 4월28일 내놓은 여야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4월20~24일) 결과는 4·15 총선 결과를 반영했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끌었다. 예상대로 기존 여야를 대표했던 이낙연 전 총리와 황교안 전 통합당 대표의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결과가 나왔다. 이 전 총리는 총선 전인 3월에 비해 10.5%p 상승했고, 황 전 대표는 13.4%p 급락했다.(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5만6661명 가운데 4.5%인 2552명 응답,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1.9%포인트. 기타 자세한 내용은 리얼미터 홈페이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14.4%로 지지율이 소폭 상승하며, 전체 2위로 도약한 것도 눈에 띈다. 이 외에 여권에서는 추미애 법무장관, 박원순 서울시장, 김부겸 의원 등이 모두 2% 안팎의 지지율을 나타냈다. 야권에선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가 가장 앞선 것으로 나타났지만, 7.6%(3위)에 그쳤다. 그 뒤를 황 전 대표(6.0%),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4.9%), 오세훈 전 서울시장(4.7%), 유승민 의원(3.3%), 원희룡 제주지사(2.0%) 등이 이었다.  

쿠키뉴스-조원씨앤아이가 5월7일 발표한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도 비슷한 양상을 나타냈다. 여권과 야권으로 각각 나눠 조사한 결과를 보면, 여권에선 이낙연 전 총리가 44.6%로 압도적 선두를 나타낸 가운데 이재명 지사(14.1%), 김부겸 의원(5.2%), 박원순 시장(2.8%), 김경수 경남지사(1.9%) 순으로 나타났다. 야권에선 유력한 선두주자가 없는 가운데 홍준표 전 대표(11.7%), 유승민 의원(11.0%), 안철수 대표(10.5%), 오세훈 전 시장(8.8%), 황교안 전 대표(8.3%) 등이 모두 오차범위 내에서 경합하는 양상을 드러냈다. 오히려 ‘없음/잘모름’이 36.9%로 가장 높았고, ‘기타 인물’도 9.9%로 나왔다.(5월2~4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1명을 대상으로 ARS 여론조사(유선전화 10%+휴대전화 90% RDD 방식), 응답률 3.0%,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향후 야권보다는 여권에서 오히려 더 변화 가능성이 클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이낙연 전 총리가 지금의 대세론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 의외로 영남에 기반을 둔 김두관 의원이 친문의 지원을 받는다면 급부상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야권에 대해서는 “현재 거론되는 인물들이 마땅치 않은 측면이 있지만, 문제는 지금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해도 국내 정치 구도상 단기간에 대권 고지까지 점령하기엔 물리적인 한계가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연구소 소장도 “이 전 총리가 너무 빨리 대세론을 형성한 것이 오히려 향후 변화 가능성을 더 높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역대 대선 사례를 보더라도 현재 거론되는 후보군 중에서 차기 대통령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며 “우리 국민들의 대선 투표 성향은 급격한 변화보다는 안정적인 변화를 선호하는 양상을 나타냈고, 그런 점에서 꾸준히 검증되고 예측 가능한 잠룡 후보군을 지지하는 양상이 컸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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