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노사 몽니에 멍든 ‘광주형 일자리’
  • 호남취재본부 정성환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0.05.11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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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들 이번엔 ‘사유화 결의’ 논란…파행 재점화 되나
사측 “경영 간섭 말라” vs 시민단체 “시민혈세 반납하라”
일각에선 “현재 임원들 자진 사퇴하라” 쓴소리도 나와

최근 경로를 무단이탈했던 노동계의 극적 복귀로 정상화된 광주형 일자리사업이 이번에는 사측이 외부기관의 경영간섭 배제를 천명하면서 ‘사유화 결의’ 논란을 빚고 있다. 광주글로벌모터스(GGM) 주주들은 지난 7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외부기관의 어떤 경영 간섭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촉구했다. 광주글로벌모터스는 이날 “노동이사제 등 5대 요구사항에 대해 공식철회하고, 노사상생 발전협정서의 준수약속을 한 노동계의 입장을 신뢰한다”면서도 이같이 밝혔다. GGM 주주들 중심의 ‘사유화’ 수순을 밟고 있다는 시민사회의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이번 주주들의 기습 결의로 한국노총이 탈퇴와 번복을 거듭하면서 위기에 처했던 광주형일자리사업이 정상화된 듯 했던 노사정간 갈등의 불씨가 되살려지는 분위기다. 

4월 29일 오후 광주시청 3층 비즈니스룸에서 열린 광주형 노사상생 완성차 성공을 위한 합의서 체결식. 왼쪽부터 박광태 광주글로벌모터스 대표, 이용섭 광주시장, 윤종해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 의장. ⓒ광주시
4월 29일 오후 광주시청 3층 비즈니스룸에서 열린 광주형 노사상생 완성차 성공을 위한 합의서 체결식. 왼쪽부터 박광태 광주글로벌모터스 대표, 이용섭 광주시장, 윤종해 한국노총 광주지역본부 의장. ⓒ광주시

광주시·노동계 오락가락에 합의 누더기 전락

지역사회에서는 이번 주주들의 외부기관 경영권 참여 배제 도발이 ‘작은 소동’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GGM 자동차공장 사업 추진의 ‘독립성’ 확보 차원의 원론적 주장이라고 하더라도 광주형일자리의 정신이자 핵심 뼈대와도 같은 노사민정의 참여를 배제하고 부정하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지역시민사회 단체들은 즉각 비판에 나섰다. 

노동 존중·사회연대 광주형 일자리 성공을 위한 시민모임(준)은 이번 결의를 놓고 8일 성명을 내고 “GGM 성공을 염원하는 광주시민을 외부로 치부하고 배제하는 주주들은 정부와 광주시의 지원을 받지도, 더 요청하지도 말라”고 비난했다. 시민모임은 “끊임없이 지적되는 세간의 우려처럼 광주글로벌모터스가 공장 설립 과정과 인사, 임금 등 운영에 있어 투명한 정보공개는커녕 경영진과 주주들 중심의 폐쇄적 운영으로 사유화하고 현대차 하청공장 수순을 밟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간 광주시는 노사민정협의회를 구성해 광주형일자리 사업을 협의해왔다. 마침내 지난해 1월 광주시와 현대차간 투자협약이 이뤄졌다. 하지만 한국노총과 주요 주주, 현대차 노조 등 안팎의 관련 조직들이 각자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 삐걱댔다. 한국노총은 이전에도 노동계가 떠났다가 복귀한 적이 있고, 그 과정에서 광주시는 노동계에 끌려 다니는 인상을 줬다. 문제는 광주시가 노사 양측의 경쟁적인 ‘몽니’에 대책 없이 끌려 다니느라 합의 내용이 자꾸 바뀐다는 점이다. 광주시는 한국노총이 탈퇴와 번복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노동이사제, 원하청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하청 이익공유제 등에 대해 수차례 태도를 바꿨다. 투자협약 체결 전에 제안했다가 이미 철회했던 안건들이지만, 이후로도 노동계가 다시 요구하면 투자자들에게 재차 수용을 요구하는 등 수시로 말을 바꿨다는 게 투자자들의 주장이다. 

2018년 11월 광주시와 노동계, 공익전문가, 시민대표들로 구성된 ‘투자유치 추진단’은 이전에 광주시와 현대차가 협상해 온 내용을 모두 뒤엎었다. 그리고 △매년 산별교섭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하청 이익공유제 △노동이사제 도입 등에 합의했다. 광주시는 현대차가 사업에서 손을 떼려 하자 그제야 원래 협상 내용으로 돌아갔고, 그 결과 지난해 1월 31일 문재인 대통령도 참석한 가운데 겨우 협약 체결이 이뤄졌다. 체결된 협약 내용은 △주 44시간 기준 전체 근로자 평균 초임 연봉 3500만 원 △35만 대 생산 시까지 상생협의회 결정사항 유효 △동반성장과 상생협력 △소통·투명경영 등이었다. 노동이사제가 빠졌다.

그런데 지난해 9월 한국노총 광주본부는 노동이사제 도입 등을 다시 요구했고, 올해 4월 2일에는 투자유치협약 파기 선언까지 했다. 한국노총의 오락가락 행보에 광주형 일자리 주요 주주들은 지난달 8일 긴급 주주총회를 열고 “4월 29일까지 사태가 정상화되지 않으면 사업 진행 여부를 재고하겠다”고 압박했다. 한국노총은 광주시가 광주상생일자리재단설립 등 카드를 제시하자 27일 만에 주주들이 복귀시한으로 통첩한 날 복귀했다. 

 

광주형 일자리 사업 뒤에서 웃는 자 누구?

이처럼 GGM가 좀처럼 중심을 잡지 못하자 애초 순수한 설립 목적의 퇴색을 질책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희동 전남대 총동창회 사무총장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GGM은 광주시민의 혈세가 투자된 만큼 광주시민 모두가 주주나 마찬가지다”며 “광주시의 간섭 아닌 감독은 당연한 책무며 시민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지켜 봐야할 기업이다”고 사측 주장에 쐐기를 박았다. 그는 광주시를 향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광주형 일자리란 목적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 역시 투명해야 한다. 요즘은 사기업도 기업의 투명성을 중시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이 계속 야기되는 건 처음부터 임원 선임을 잘못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많은 시민이 반대한 (박광태 전 광주시장의) 사장선임, 노동자를 인정하지 않는 임원 선임에서 이미 문제를 안고 출발했다”며 비판했다. 최 사무총장은 광주형일자리가 성공하려면 현재의 임원들이 자진사퇴하고 전문성과 공공성을 가진 사심없는 임원들의 선임이 필요하다고 결자해지(結者解之)식 해법을 제시했다.   

일부에선 임원선임이라는 첫 단추부터 잘못 꿰여 줄줄이 꼬이자 광주형일자리가 단순하게 일반 시민들의 일자리 창출로만 받아들이지 않는 눈치다. 과연 누구를 위한 광주형 일자리 창출이냐는 근본적인 질문이 나오는 것이다. 광주시는 채용과정에서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강조하지만 시민들은 염려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민선 6~7기 들어 숱한 논란을 낳았던 공공기관 인사 채용과정의 전례에 비춰볼 때 또다시 힘깨나 쓰는 지역 유력자들과 그 자녀 등 ‘그들만의 리그’가 재연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외형상 구색 갖추기 위해 생산직 등 일부 일자리는 지역 공고출신들에게 돌아갈 뿐 광주글로모터스로 연결되는 부패한 광주권력들이 다시 형성될 것이라는 냉담한 시각이다. 

광주 한 시민의 말이다. “솔직히 좋은 일자리를 서민 자녀들에게 덥썩 내줄지 믿기지 않는다. 구직활동에 나선 20, 30대 청년들의 심정은 절박하다. 그런데도 시장 측근이나 지역 유력인사들이 입김 하나로 나눠 먹는다면 ‘흙수저’ 청년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게 된다. ‘힘’있고 ‘빽’있는 자녀들은 쉽게 취업하나 ‘빽’없으면 기회마저 잃고 일할 자리를 얻지 못하는 세상은 공정한 세상이 아니다. 그럼에도 서민들이 일상에서 공정을 경험하는 건 아직 쉽지 않다. 5.18이 광장 뿐만 아니라 우리 삶 곳곳에서 정의와 공정으로 가슴이 울렁거리는 ‘일상민주주의’로 거듭나도록 지역 지도층부터 각성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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