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로 더 주목받는 ‘애그테크’ [이형석의 미러링과 모델링]
  • 이형석 한국사회적경영연구원장․KB국민은행 경영자문역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5.21 15:00
  • 호수 1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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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작물 재배 기술에 기반한 비즈니스 모델…빌 게이츠 등 유명인도 투자 나서

지난 1992년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일이다. 민간 사업자가 포인트 일기예보를 하고 있어 색다른 느낌을 받았다. 주로 낚시나 골프, 서핑 등 레저산업에 이 포인트 일기예보가 적용됐다. 당시 우리나라의 날씨 정보는 기상청이 독점하고 있었다. 1997년부터 민간에서 날씨 정보를 제공하고는 있지만 스타트업엔 여전히 접근이 어려운 분야였다. 최근 기상청이 기상정보 기반 스타트업을 육성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점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세계경제의 80%는 직간접적으로 날씨의 영향을 받고 있다. 국내총생산(GDP)의 10%가량이 직접적으로 날씨의 영향을 받는다. 그동안 날씨 정보는 농업, 어업, 스포츠 등 일부 산업에 제한적으로 활용됐으나, 오늘날에는 산업 전반에서 다양하게 이용되고 있다.

서울 동작구 지하철 7호선 상도역에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가 농업회사 팜에이트와 협력해 ‘메트로팜(Metro Farm)’을 개소해 눈길을 끌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동작구 지하철 7호선 상도역에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가 농업회사 팜에이트와 협력해 ‘메트로팜(Metro Farm)’을 개소해 눈길을 끌고 있다. ⓒ연합뉴스

GDP의 10% 날씨에 직접적 영향

일례로 스웨덴 스타트업인 이그니티아(Ignitia)는 현재 기후에 민감한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부들에게 국지적 일기예보를 서비스하고 있다. 개발 기관이나 NGO, 농업 입력 사업 및 모바일 네트워크 사업자와 제휴해 소작농을 위한 맞춤형 일기예보를 제공하고 있는데 반응이 좋다. 일기예보 범위를 반경 3㎢까지 좁혀 서비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농업에 기술을 더해 생산성을 높이는 비즈니스 모델을 애그리푸드(AgriFood)라 한다. 애그리푸드는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농작물 재배와 관련된 기술 기반이면 업스트림(Upstream) 혹은 애그테크(agtech)라 한다. 소비자의 식생활 개선을 위한 기술이 적용되면 이를 다운스트림(Downstream) 혹은 푸드테크(foodtech)고 부른다.

이 가운데 애그테크에 대한 사례를 집중적으로 보고자 한다. 애그테크는 농업 가치사슬의 여러 단계가 얼마나 효율적으로 수행되는지를 분석한 후 발견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새로운 디지털 기술을 적용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는 농업생명공학 기술, 정밀농업, 대체식품, 식품 전자상거래 등이 포함된다.

아테네에 본사를 둔 아우그멘타(Augmenta)는 농산물의 성장 과정 중 가장 적절한 시점에 비료를 주거나 추수하는 로봇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 시스템을 활용하면 작물 수확량을 최대 12%까지 높일 수 있고, 작물 품질을 20% 향상시키며 비료 사용도 15%가량 줄일 수 있다. 여기에 적용된 기술은 위성에서 사용되는 e2b센서와 다중분광이 가능한 고해상 영상기기 등이다.

미국 매사추세츠에서 창업한 그린라이트 바이오사이언스(Greenlight Biosciences)는 특정 해충을 잡는 생물 살충제를 개발해 주목받았다. 예컨대 딱정벌레를 죽이는 생물 살충제는 딱정벌레 이외의 다른 곤충이나 동물에게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 기술은 해충의 RNA가 단백질을 합성하지 못하도록 간섭하는 역할을 한다. 이 회사는 이 기술로 최근 5000만 달러를 투자받았다.

스위스의 무트랄(Mootral)은 가축의 폐기물과 메탄 배출을 줄이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소위 인간의 소화제 같은 것이다. 이 회사의 프로그램을 채용하면 동물의 폐기물과 메탄을 30% 이상 줄일 수 있다. 실제로 소, 염소, 양, 사슴 등 반추동물이 뿜어내는 메탄은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 빌 게이츠가 “소가 한 국가라면 중국과 미국에 이어 온실가스(GHG) 배출량 3위다”고 말할 정도다. 이 때문에 무트랄의 프로그램은 기후산업의 게임 체인저로 인정받으며 카본 트러스트(Carbon Trust) 인증을 받았다. 카본 트러스트는 ‘지속 가능한 저탄소 경제’를 사명으로 탄소 인증마크를 발급하는 기관이다.

보스턴에 본사를 둔 루트AI(Root AI)는 실내농업 부문을 지원하기 위한 인공지능 기반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농업인구가 줄어드는 추세다. 충분한 식량을 계속 생산하려면 농촌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재배가 이뤄져야 한다고 이 회사의 창업자는 생각했다. 현재는 토마토 온실재배에 국한돼 있지만 앞으로는 다양한 농산물에 적용할 수 있는 하드웨어를 개발 중이다. 이런 생각은 로컬푸드를 지향하는 소비 추세와도 맞아 향후 각광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런던에 있는 핀테크 스타트업 스테이블(Stable)은 농민들이 상품 가격 변동에 따른 피해를 입지 않도록 보험 플랫폼을 개발했다. 농부가 작물 변동성 보험에 저렴하게 가입해 리스크를 최소화하도록 한 것이다. 농산물 가격은 매년 20~30% 변동해 농민들에게 중대한 위협 요인이 돼 왔다. 이 프로그램은 농부뿐 아니라 사전에 계약하는 투자자들에게도 적용되므로 상호 안전한 거래를 유도할 수 있다.

 

농업 선진화 통한 ‘농업굴기’ 필요

그런가 하면 미국의 어필사이언스(Apeel Sciences)는 과일과 채소의 부패를 유발하는 산화 및 수분 손실의 속도를 늦춤으로써 농산물의 유통기한을 연장하는 기술로 빌 게이츠의 후원을 받고 있다. 또 다른 스타트업 플렌티(Plenty)는 기계학습, 인공지능 및 작물 과학을 활용해 수확량을 최적화하고 최적의 신선함과 맛을 얻기 위해 필요한 만큼 정확하게 생산하는 실내농업을 지향하고 있다.

최근 발생한 코로나19는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의식을 갖게 했다. 글로벌 시대에 국경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고 그동안 생각했다. 하지만 국가 간 이동이 통제되자 원자재 공급망이 차단되면서 공장 가동을 중단해야 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다른 하나는 코로나19와 같은 미증유의 사태가 발생하면 생존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각자도생의 방법 외에는 대책이 없다는 점이다. 마스크·진단키트 등 의료물품을 확보하기 위해 국가 간 혈투를 벌였다는 점이 이를 말해 준다.

이는 경제의 기본 단위가 여전히 국가라는 점을 강렬하게 일깨워 줬다. 농산물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자료에 따르면 2017년 현재 국내에서 소비하는 곡물과 육류, 채소, 과일 중 38%만이 국내에서 생산됐다. 나머지 62%는 수입품이었다. 비상시를 대비해 애그테크를 통해 농업의 선진화를 이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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