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향한 비난 화살, 미국 쪽으로 돌려라
  • 모종혁 중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5.15 15:00
  • 호수 1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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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언론 통해 트럼프 주장 정면 반박
‘코로나 책임론’ 벗으려 美와 갈등 조장한다는 시각도

5월11일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에 한 편의 글이 올라왔다. 제목은 ‘미국이 주장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중국 상황에 관한 거짓과 진실’이다. 본래 이 글은 5월9일 저녁 관영 신화통신이 타전했었다. 미국이 제기하는 코로나19에 관한 24가지 의혹을 일일이 반박하는 내용이었다. △우한바이러스연구소의 제조 및 유출설 △중국의 초기 대응실패로코로나19를 전 세계로 퍼뜨렸다는 책임론 △중국인의 야생동물 식습관 문제론 △중국 정부가 행한 코로나19 정보와 통계의 은폐·조작론 △세계보건기구(WHO)에 대한 매수설 등이 그것이다.

흥미롭게도 기사 형식을 빌린 이 글이 ‘헤드라인 뉴스’에 올라왔다. 헤드라인 뉴스는 오직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을 위시한 최고지도부의 동정만 소개한다. 외교부장의 동정, 대변인의 입장과 논평도헤드라인 뉴스에 올라가지 못한다. 사실 그동안 중국 정부는 코로나19에 대한 의혹을 외교부 대변인의 논평을 통해 대응해 왔다. 하지만 외교부가 총괄적인 입장을 홈페이지에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주목할 점은 정부 입장을 선전하거나 대외 접촉이 많은 모든 부서의 홈페이지에도 같은 날부터 동일한 글이 게재됐다는 것이다.

미국을 겨냥한 중국의 공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5월11일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논평을 통해 “미국의 일부 정치인이 코로나19와 관련해 중국을 모함하는 헛소리를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중국을 건드리려는 망상을 단념하고 중국의 반박글을 자세히 읽어보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인민일보는 반박글을 5월9일 신화통신과 동시에 홈페이지에 올렸다. 같은 날 의혹의 당사자인 우한바이러스연구소도 나섰다. 과기일보는 연구소 소속 국가생물안전실험실의 위안즈밍(袁志明) 주임과 가진 인터뷰를 보도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 두 번째)이 4월31일 저장성 항저우 시시국가습지공원을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걸어가고 있다. ⓒAP 연합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 두 번째)이 4월31일 저장성 항저우 시시국가습지공원을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걸어가고 있다. ⓒAP 연합

언론 통해 ‘우한연구소 유출설’ 반박

위안 주임은 “생물안전 4급(P4) 실험실은 안전 수준이 최고일 뿐만 아니라 연구원 출입, 동물실험, 폐기물 처리 등에서 엄격한 관리 시스템을 갖췄다”고 밝혔다. 또한 “각종 기술과 조치는 실험실 내 바이러스가 유출되는 일이 없도록 확실히 보장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언급은 4월3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행사를 끝낸 뒤 “코로나19가 우한연구소에서 유래한 증거를 봤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실수로 바이러스를 유출했거나 확산하도록 고의로 놔뒀을 수 있다”고도 말했다.

우한바이러스연구소에는 2015년 1월 완공된 아시아 최초의 P4 실험실 한 곳을 비롯해 P3 실험실 두 곳이 있다. 현재 P4 실험실은 우한연구소가 아시아에서 유일하다. 위안주임은 “P4 실험실의 핵심 부분은 스테인리스스틸 벽으로 둘러싸인 상자 안의 상자 구조로 완전히 밀폐됐다”고 밝혔다. 또한 “음압기술로 P4 실험실의 오염된 공기가 외부로 퍼지는 것을 막는다. 배출하는 기체, 폐수, 오염 폐기물 등은 여과와 처리 과정을 거친다”고 말했다. 실험실 시설은 매년 외부기관이 평가하고 운영은 매년 당국의 감독을 받는다는 사실도 밝혔다.

이런 위안 주임의 설명이 과장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P4 실험실은 중국과학원이 프랑스의 바이오 업체인 앵스티튀 메리외와 협력해 건설했다. 시설 및 운영 시스템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미국 정보기관도 코로나19가 사람에 의해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주장에 대해 회의적이다. 4월30일 미국 국가정보국(DNI)은 성명에서 “정보기관들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사람이 만들거나 유전자적으로 변형된 것이 아니라는 과학적 합의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이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자연발생적이라는 데 힘을 실은 것이다. 다만 DNI는 “계속 조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DNI는 미국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부서다. 이런 부처조차 트럼프 대통령의 우한바이러스연구소의 제조 및 유출설에는 동의하지 않고 있다.

 

中 외교부 “미군이 코로나바이러스 퍼뜨려”

사실 우한연구소 의혹이 처음 제기된 발원지는 미국이 아닌 중국이었다. 이는 2월6일 샤오보타오(肖波濤) 화난(華南)이공대학 교수가 학술 사이트 ‘리서치게이트’에 논문을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샤오 교수는 “박쥐에서 중간 숙주를 거쳐 사람에게 전파됐을 가능성보다는 실험실에서 유출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의 실험실로 우한질병통제센터와 우한연구소를 꼽았다.

논문은 2월15일 홍콩 언론매체를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그 뒤 우한바이러스연구소에 대한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터져 나왔다. “군부가 연구소에서 생화학무기를 실험했다” “연구실의 모 연구생이 첫 번째 감염자다” 등 온갖 소문이 중국 내에서 떠돌았다. 이에 대해 우한연구소는 성명을 내고 “완전한 가짜뉴스”라면서 “연구소 직원 중 감염자는 나오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당시 중국은 코로나19 환자와 사망자가 급속도로 퍼지던 시점이었다. 그로 인해 중국인들의 절망과 분노가 한껏 증폭되고 있었다.

적지 않은 중국인은 우한연구소가 코로나19 치료제라면서 쌍황연구복액(雙黃連口服液)을 판매해 막대한 수익을 올린 사실을 성토했다. 또한 2018년부터 연구소장으로 재직 중인 왕옌이(王延)가 1981년생으로, 연구 성과가 전혀 없는 점도 주목했다. 왕옌이는 중국과학원 원사이자 저명한 과학자 수훙빙(舒紅兵)의 아내다. 따라서 자격 미달인 낙하산이 고위 관료급인 소장이 됐는데, 관리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이렇듯 우한연구소에 쏟아지는 의혹의 시선에 중국 정부와 언론조차 한동안 우한연구소 기원설에 대해 관망만 했다.

그러나 3월초부터 미국을 위시한 여러 나라에서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중국 책임론이 일어나자, 본격적인 부인에 나섰다. 심지어 외교부 대변인은미군이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퍼뜨렸다는 적반하장 주장까지 펼쳤다. 3월12일 자오리젠(趙立堅) 대변인은 트위터에 “미군이 우한에 코로나19를 옮겼을 수 있다”고 남겼다. 그가 특정한 것은 지난해 10월 우한에서 개최됐던 세계군인체육대회와 관련 있다. 당시 일부 참가자가 말라리아에 걸렸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무시하고, 3월 하순에는 중국 관영매체까지 나서 미군 책임론을 제기했다. 심지어 선수 이름까지 공개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중국에서는 초기 대응에 부실했던 중국 시진핑 정부를 성토하는 사회 분위기가 사그라들었다. 3월초부터 중국 내 지역감염이 급감한 현실도 한몫했다. 중국 정부는 이 틈을 놓치지 않았다. 책임론을 놓고 미국과의 전선을 강화했다. 실제 중국에서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미국에 오히려 책임을 묻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이는 미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를 내면서 더욱 커지고 있다. 향후 코로나19에 대한 책임론을 두고 미국과의 공방이 가열될수록, 시진핑 등 중국 최고지도부에 면죄부가 주어질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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