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조금만 더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5.18 09:00
  • 호수 1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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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서 의학 관련 기사를 전담하는 시사저널 기자의 낯빛도 나날이 어두워진다. 확진자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든 이후에도 심각한 표정이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불확실성이다. 이 바이러스가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점을 무엇보다 크게 염려한다. 최근에는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밖으로 나오는 사람이 많아진 것 같아 걱정스럽다는 말을 자주 하기도 했다.

그를 비롯해 많은 사람이 우려했던 일이 기어이 터지고야 말았다. 서울 이태원 클럽에서 시작된 집단감염 사례가 그것이다. 힘들게 버텨 왔던 둑이 한순간에 무너지듯 방역의 벽이 어이없이 뚫렸다. 관련 확진자도 벌써 100명을 넘어 계속 확산하는 추세다. 한 감염병 전문가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안 좋은 형태의 발병 패턴’이 나타났다며 “질병관리본부가 그야말로 폭탄을 맞았다고 볼 수 있다”고 개탄하기까지 했다. 그런 탄식과 더불어 ‘올 것이 왔다’는 반응도 잇따라 나온다. 클럽과 같은 유흥시설이 ‘밀폐’ ‘밀집’ ‘밀접’의 요소를 다 갖춘 공간이니만큼 언제든 감염 확산의 발원지가 될 수 있다는 경고가 그동안 숱하게 나왔었기 때문이다. 정부가 부랴부랴 전국 유흥시설에 대해 운영 자제 행정명령을 내리고, 서울시 등 지자체들도 다투어 시내 모든 유흥시설을 대상으로 집합금지 명령을 발동했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느낌이 크다. 위험 관리는 이미 실패했고, 정부와 지자체의 조처가 과연 얼마만큼 효력을 발휘할지도 미지수인 탓이다.

용인 확진자(66번)가 지난 2일 다녀간 것으로 확인된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 위치한 킹클럽이 방역을 위해 폐쇄돼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용인 확진자(66번)가 지난 2일 다녀간 것으로 확인된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 위치한 킹클럽이 방역을 위해 폐쇄돼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이번 사건이 말해 주듯 코로나19 국면은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한 불확실성의 연속이다. 우리는 이 바이러스와 함께 이미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어둠의 길로 들어서 있다. 지금껏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들이 잇따라 벌어지고 있는데도 그에 맞춤한 정보와 지식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각급 학교의 개학도 마찬가지다. 5월13일부터 시작될 예정이었던 개학을 일단은 일주일씩 순차적으로 연기했지만, 진작에 축적해 놓은 경험이 없는 탓에 학교 문을 연 이후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그렇다고 제풀에 지쳐 무작정 손을 놓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돌다리를 건너듯 두드리고 또 두드리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조금씩 나아가면서 매뉴얼을 새롭게 만들어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연대의 끈을 내려놓지 않은 채 함께 손잡고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싸움에서든 가장 앞쪽에서 가장 아프게 다치는 쪽은 약자들이다. 바이러스만큼이나 정체를 알기 어려운 존재인 ‘백귀(白鬼)’와 좀비에 인간들이 맞서 이긴다는 내용을 담은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가상의 스토리이긴 하지만, 호주의 한 대학 유행성 질병 연구팀이 이 드라마 속 주요 캐릭터의 사망 형태를 분석한 결과 가장 많이 희생된 계층은 귀족이 아닌 평민이었다고 한다. 전쟁은 귀족들이 일으켰는데 고통에 직접적으로 노출된 쪽은 힘없는 민중이라는 얘기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보다 더 약한 이들을 위해서 참고 견디며 애쓰는 사람이 많을수록 우리는 강해질 수 있다. 더 긴 날의 안녕을 위해 이 짧은 날의 불편은 조금만 더 기꺼이 참아내자. 그것이 우리가 내일을 위해 오늘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행동일 터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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