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가 깨어졌다 [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 노혜경 시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5.16 14:00
  • 호수 1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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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동지’ 윤미향과 이용수, 다시 손잡고 웃는 모습을 보고 싶다

내 휴대폰지갑에 오랫동안 달려 있던 노란나비가 깨어졌다. 어느 해인가 수요집회에서 만난 누군가가 준 것이다. 종이를 여러 겹 압축해 정교하게 나비 날개의 무늬까지를 파낸 아주 예쁜 나비였다. 이빨 간지러워하는 어린 고양이 고식이가 어느날 번개처럼 달려들어 나비 장식을 깨물었다. 급히 구해 냈지만 나비 날개 한쪽이 부러져 버렸다.

예언적인 사고였나 보다. 이용수 인권운동가께서 정의기억연대(정대협의 후신)의 가장 중요한 업적이라 할 수요집회에 더 이상 참석하지 않겠다는 폭탄선언을 하신 날, 나비는 완전히 줄에서 떨어져 나갔다. 정의기억연대의 자매단체인 평화나비네트워크의 상징 노란나비가.

나는 많이 혼란스럽고 어수선한 채로 언론과 이해관계자들이 이용수 선생님의 발언을 다양하게 곡해하고 부풀려 윤미향 당선자를 공격하는 것을 지켜봤다. 두통과 복통을 앓았다.

이용수 선생님은, 아니 할머니는, 왜 수요집회에 더 나오지 않겠다고 하셨을까. 수요집회의 목적과 문제가 무엇이었길래. 이것이 핵심이고 나머지는 모두 곁가지다.

일본이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한 것만 역사왜곡이 아니다. 위안부 문제에 일본국의 법적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도 역사왜곡이다. 수요집회는 그러한 왜곡에 맞서 무슨 일이 있었던가를 밝히고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 회복을 추구하는 강렬한, 그러나 어수선한 현장이었다. 뒤틀린 역사의 무게를 일개 단체가 30년 동안 짊어진 채 외쳐왔다. 어쩌면 할머니는 모두가 힘을 합쳐 이룬 성과를 윤미향(당선인)이 국회로 들어가는 연료로 다 써버린 거라고 생각하시는지도 모르겠다. 얼마나 노엽고 슬플까. 더 나아가 ‘윤미향 없는 수요집회가 무슨 의미가 있나’라고 생각하셨을 수도 있다.

2016년 10월18일 서울 마포구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에서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위안부 피해자 고(故) 김복동 할머니가 생전인 2016년 10월18일 서울 마포구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드디어 국가가 나설 차례인데

하지만 윤 당선인의 국회 입성은 전혀 다른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 지금껏 민간이 하던 일을 이제는 국가가 하겠다는 약속과 다짐, 적어도 윤 당선인에게는 정부 차원에서 이 문제를 풀어내야 할 의무와 소망이 있다. 가까이는 잠정 중단 상태로 있는 2015년의 ‘한·일 간 일본군위안부 문제 합의’를 완전히 파기해야 하는 임무가 있다. 멀게는 모든 위안부 피해자가 다 돌아가신 뒤에라도 일본국이 법적 책임을 인정하고 ‘불가역적’ 사죄를 하게 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한국군의 전시 성폭력 사죄를 포함해 전 세계적 차원의 평화를 추구할 책임 또한 무거운 짐이다. 그 짐을 질 사람이 윤 당선인 말고 또 누가 있겠는가.

할머니는 함께 싸우던 동지가 높은 자리로 가버리는 것으로 여기셨을지 모른다. 정작 위안부 문제를 털고 “화해와 치유”를 해야 한다고 여기던 사람들에게는 정말 위험하고 힘든 상대가 등장한 것이다. 그를 향해 쏟아지는 별의별 공격의 화살을 보면, 역설적으로 윤 당선인이 얼마나 껄끄럽고 무서운 존재인지 드러난다. 일본대사관 앞에서 수요일마다 열리던 집회가 국회의사당에서 매일같이 열린다고 상상해 보라. 윤 당선인을 도덕적으로 흠잡고 무너뜨리는 것이 왜 그토록 중요하게 여겨지는지가 보이지 않는가.

이용수 선생님이 뭐라고 말씀을 하셨든, 두 분은 오랜 동지다. 오해가 있었다면 풀고, 불만이 있었다면 해결하고, 두 분이 대화해 반성할 것 반성하고 해명할 것 해명해서, 우리 사회의 빛나는 표상인 두 사람이 다시 포옹하며 웃는 모습을 보고 싶다.

깨진 나비 조각을 모아둘 걸 그랬다. 마음 차분한 날에 수선할 수 있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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