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택트 시대] 비대면 소통하는 콘텐츠가 뜬다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0.05.19 10:00
  • 호수 1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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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新)콘텐츠 부흥 이끈 언택트의 흐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우리 삶의 방식을 언택트(Untact·비대면)로 바꾸면서, 기존 개념의 혁명적 전환이 이뤄지고 있다. 무조건 ‘오프라인’ ‘현장’이라고 생각했던 즐길거리들이 언택트의 흐름을 타고 변모했고, 이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신(新)풍경들이 등장하고 있다. 바야흐로 언택트 시대, 콘텐츠들은 어떻게 바뀌었는가. 그리고 어떤 콘텐츠가 주목을 받고 있는가.

5월10일 네이버 V라이브를 통해 생중계 된 엔시티 드림의 공연. AR 등을 활용해 오프라인과 차별화된 무대를 연출했다. ⓒ 에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5월10일 네이버 V라이브를 통해 생중계 된 엔시티 드림의 공연. AR 등을 활용해 오프라인과 차별화된 무대를 연출했다. ⓒ 에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AR로 무대 꾸미고 블루투스·화상으로 소통

언택트 콘서트

콘서트 시장이 내세운 핵심 가치는 ‘경험’과 ‘소통’이었다. 공연 전문가들은 “콘서트를 촬영한 영상이 콘서트 자체를 대체하기는 힘들다”고 평가해 왔다. 그러나 영상에 익숙한 Z세대가 콘텐츠 소비시장으로 들어오며 상황이 바뀌었다. 마케팅 기업 메조미디어는 ‘언택트 트렌드’ 보고서를 통해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는 공연 등 오프라인 콘텐츠도 안방 1열에서 동영상 플랫폼으로 소비한다”고 했다. 콘서트를 ‘안방’으로 옮겨올 기술도 충분히 발전했다. 현장감을 재현한 화질이 구현됐고, 고품질 음원의 녹화와 송출이 가능해졌으며, 5G 등 통신기술 발전으로 라이브 영상 스트리밍도 쉬워졌다. 온라인 콘서트가 미래 콘서트의 대안이자 K팝의 새로운 장이 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SM엔터테인먼트가 시도한 ‘비욘드 라이브’의 성공이 이를 입증한다. 비욘드 라이브는 새로운 컬처 테크놀로지(CT)를 콘서트 분야에 접목한 것이다. 첨단기술과 공연을 결합한 세계 최초 온라인 전용 유료 콘서트를 표방한다. 5월10일 네이버 V라이브를 통해 ‘엔시티 드림-비욘드 더 드림쇼’가 생중계됐다. 한국은 물론 미국, 영국, 일본, 중국, 캐나다 등 전 세계 107개국 관객들이 안방에서 실시간으로 콘서트를 즐겼다.

4월26일 진행된 슈퍼엠의 공연 역시 팬들에게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한 번 접속에 3만3000원인 유료 공연이었음에도 109개국 7만5000명의 시청자들이 안방에서 실시간 공연을 봤다. 인기 아이돌그룹의 콘서트가 회당 평균 1만 명 규모로 진행되는 것을 감안할 때, 1회 공연으로 오프라인 대비 7.5배의 관객을 동원한 셈이다. 증강현실(AR) 효과 등을 활용해 오프라인 공연과 차별화된 무대를 연출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소통’은 어떻게 했을까. 화상 연결로 이뤄졌다. 비욘드 라이브를 통해 공연한 가수들은 세계 각국의 시청자와 화상 연결로 궁금한 점을 묻고 답하는 질의응답 코너와 미션 챌린지 등으로 관객과 소통했다. 엔시티 드림은 “온라인 공연은 어떨까 궁금했는데, 이렇게 화상 통화로 팬 여러분들을 보고 있으니 오프라인으로 공연하는 느낌이다. 팬분들이 응원하는 소리가 잘 들려 정말로 함께 있는 것 같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언택트 콘서트의 가능성은 이미 방탄소년단이 4월18~19일 유튜브 채널 ‘방탄TV’를 통해 서비스한 ‘방방콘(방에서 즐기는 방탄소년단 콘서트)’에서 엿보였다. 방방콘의 첫날 동시 접속자 수는 220만 명까지 치솟았고, 19일에도 200만 명에 육박하는 팬들이 콘서트를 관람했다. 새로운 기술도 접목됐다. 응원봉인 ‘아미밤’을 공연과 연동해 마치 현장에서 응원하는 것 같은 경험을 할 수 있게 했다. 자체 개발한 커뮤니티 플랫폼인 위버스를 통해 블루투스 모드로 아미밤을 연결하면, 영상의 오디오 신호에 따라 아미밤의 색깔이 달라지는 방식이었다. 전 세계 162개 지역에서 약 50만 개의 아미밤이 연동됐다.

해외에서도 한국의 온라인 콘서트는 주목받고 있다. 미국 ABC는 “여러분은 가장 좋아하는 보이밴드를 보기 위해 공연장 앞에 줄을 설 필요도, 비싼 좌석을 구하는 것에 대해서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며 “K팝은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속에서 최첨단 AR 기술과 실시간 소통으로 라이브 콘서트의 새로운 시대를 맞았다”고 평가했다.

무관중으로 진행되고 있는 KBO리그는 미국과 일본에서도 집중 조명받고 있다. 특히 ‘배트 플립’은 미국 야구 팬들의 큰 관심사다. ⓒ 뉴스1
무관중으로 진행되고 있는 KBO리그는 미국과 일본에서도 집중 조명받고 있다. 특히 ‘배트 플립’은 미국 야구 팬들의 큰 관심사다. ⓒ 뉴스1

랜선으로 응원하는 무관중 프로야구

《기생충》·BTS에 이어 세계에 적시타

이제 ‘직관’이 아니라 ‘집관’이다. 2020 KBO리그는 당초 일정인 3월28일보다 38일 늦은 5월5일 무관중으로 개막했다. 개막전을 기다리던 야구팬들은 생중계를 하는 TV와 휴대폰 앞으로 모여들었다. 시청률 조사회사 TNMS의 미디어데이터에 따르면 개막일 서울, 대구, 광주, 수원, 인천에서 동시에 열린 프로야구 무관중 경기 중계 시청자는 무려 216만 명에 이르렀다. 네이버로 본 5경기 평균 누적 시청자 수는 149만3483명으로 2019년 개막일(34만3291명)의 4.4배, 지난해 어린이날(16만4434명)의 9배에 달했다.

‘랜선 응원’은 물론 생생하게 야구 경기를 볼 수 있는 서비스들도 속속 나왔다. LG유플러스는 자사 프로야구 시청 앱 U+프로야구에 실시간 채팅과 게임 기능을 추가했고, SKT는 최대 12개 시점까지 볼 수 있는 ‘5GX 직관야구’ 서비스로 야구 팬들을 공략했다. KT는 자사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인 ‘시즌’을 통해 다른 구장에서 열리는 경기도 동시에 시청할 수 있게 했고, 카카오는 각 구단 팬들이 단톡방에 모여 응원을 즐길 수 있는 ‘슬기로운 야구 생활’ 서비스를 내놨다. 네이버는 구단 특화 응원 중계를 선보이고 있다.

한국 프로야구는 코로나로 인해 개막을 하지 못하고 있는 미국과 일본의 즐길거리 대안으로도 떠올랐다. 미국 24시간 스포츠 채널 ESPN은 KBO와 계약을 맺고 하루 한 경기씩 실시간 생중계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한국 야구를 시청한다. 일본의 유무선 플랫폼 SPOZONE은 일본 내 유무선 중계 권리를 확보하고, 개막전부터 하루 2경기씩 생중계하고 있다.

특히 미국 언론은 한국 야구를 집중 조명한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KBO리그가 BTS·《기생충》에 이어 미국에 도착했다며,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주목받는 프로야구 리그가 됐다고 소개했다. 또 한국 선수들의 쇼맨십이 메이저리그 팬들의 이목을 끄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단연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배트 플립’, 이른바 ‘빠던’이다. 타자가 홈런을 친 후 방망이를 던지는 세리머니인 배트 플립은 미국에서는 상대 투수를 자극한다고 여겨지면서 금기시돼 있다. 구단별 응원가, 마스코트들이 춤을 추는 모습도 흥미로운 요소로 미국 팬들을 사로잡고 있다.

언택트 시대에 가장 약진한 OTT는 단연 넷플릭스였다. 특히 《킹덤》 시즌2는 세계적으로 인기를 모았다. ⓒ 넷플릭스
언택트 시대에 가장 약진한 OTT는 단연 넷플릭스였다. 특히 《킹덤》 시즌2는 세계적으로 인기를 모았다. ⓒ 넷플릭스

방구석 1열 보장하는 OTT

넷플릭스, 독보적으로 달렸다

‘방구석 관람’을 가능하게 하는 OTT의 약진이 언택트 시대에 두드러지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극장들이 된서리를 맞으면서, 온라인을 통해 영화와 드라마 등 각종 영상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OTT가 호황이다. 이 중 가장 눈에 띄는 곳은 넷플릭스다. 넷플릭스의 올 1분기 매출은 지난해 1분기보다 약 28% 증가한 57억6769만 달러(약 7조798억원)로 추산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27.6% 늘었다. 1분기 글로벌 유료 가입자 수는 전망치의 2배에 달하는 1577만 명에 달했다. 넷플릭스의 전 세계 가입자는 1억8286만 명에 이른다.

넷플릭스뿐 아니라 왓챠플레이, 국내 IPTV업계 1~3위인 KT·SK브로드밴드·LG유플러스도 코로나 특수를 누렸다. 특히 IPTV를 통해 넷플릭스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LG유플러스는 1분기 영업이익 증가를 발표하면서 “모바일·IPTV·초고속인터넷 가입자가 늘고, 실내 활동 증가에 따른 언택트 사업의 성장이 실적 호조를 견인했다”고 분석했다.

특히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 시즌2는 세계적으로 인기몰이를 했다. 참신한 소재, 세밀한 좀비 묘사 등 완성도뿐 아니라 역병이 전국으로 퍼져 좀비가 양산되는 과정이 코로나19로 혼란에 빠진 현 상황과 비슷하다는 점도 주목됐다. 《킹덤》은 ‘오늘 한국의 톱 콘텐츠’ 1위에 오를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최근에는 극장 상영이 어려워진 영화 《사냥의 시간》을 넷플릭스가 구매하면서 이슈가 되기도 했다. 이 영화의 해외배급을 맡은 다른 회사가 이미 체결된 해외배급과 어긋난다며 문제를 제기했으나 갈등은 봉합됐고, 4월23일부터 《사냥의 시간》을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서 볼 수 있게 됐다.

한편 넷플릭스의 한국 내 인터넷 트래픽 점유율이 폭등하면서, SK브로드밴드를 중심으로 인터넷망 운영 사업자들이 인터넷망 사용료를 지불할 것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한국의 인터넷 통신사들에 인터넷망 사용료에 해당하는 비용을 지불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 4월 이와 관련해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한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최근 국회가 넷플릭스와 구글 같은 글로벌 콘텐츠 사업자들에게 서비스 품질 유지를 위해 필요한 기술적 조치를 의무화하도록 하는 법률 개정안을 의결하면서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 업체들의 망 이용료 논란이 어떻게 해결될지 관심이 주목되고 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페이스북을 통해 온라인 공연을 선보였다. ⓒ 조성진 페이스북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페이스북을 통해 온라인 공연을 선보였다. ⓒ 조성진 페이스북

클래식·국악·오페라의 온라인 진입

새로운 팬층 만들어냈다

아이돌그룹의 콘서트뿐만이 아니다. 뮤지컬과 클래식 등 공연 전반의 디지털화도 시작됐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 소속 일부 가수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으로 무관중 공연을 생중계했고, 독일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공연이 무관중 온라인 중계로 진행되기도 했다. 유튜브로 공개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25주년 기념 공연 실황은 유튜브 조회 수 1000만을 넘겼다. 클래식 라이브 플랫폼도 해외에서 속속 등장하고 있다.

클래식 역시 온라인으로 들어왔다. 클래식계의 아이돌이라 불리는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무관중 온라인 공연을 진행했다. 5월7일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30분가량 콘서트를 진행한 것이다. 사전에 무관객으로 촬영한 영상을 페이스북 라이브 기능을 활용해 송출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새 앨범 ‘방랑자(The Wanderer)’에 수록된 슈베르트의 방랑자 환상곡 2악장과 리스트의 피아노 소나타 일부를 연주한 라이브 방송은 많은 클래식 팬이 시청했다. 피아니스트 이루마는 5월9일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통해 새 미니앨범 타이틀 곡 《Room With A View》와 《Sunset Bird》 등 주요 수록곡을 선보이고 한국어와 영어로 토크 세션을 진행한 바 있다. 많은 국내 팬과 해외 팬이 라이브 댓글을 통해 이루마와 소통했다.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 국립국악원 등도 온라인 공연을 내놓았다. 국립무용단은 2015년 초연 이후 ‘한국 춤 신드롬’을 일으킨 공연 《향연》을 유튜브를 통해 온라인 상영했고, 국립국악원은 5월 한 달간 매주 금요일 오후 8시 금요공감 무대를 국악원 네이버TV와 유튜브를 통해 무관객 온라인 공연으로 선보이기로 했다. 세종문화회관은 5월16일 ‘오월에 부치는 편지’라는 표제의 무관중 음악회를 네이버 TV를 통해 생중계했다.

언택트 시대. 클래식, 발레, 국악 등 공연의 온라인 진입은 해당 분야를 잘 모르거나, 관심은 있었지만 선뜻 다가설 수 없었던 예비 관객들을 가볍게 끌어모으는 역할도 했다. 오프라인에서는 관객이 한정적이었지만,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새로운 관객층이 확장된 것이다. 지난 3월 예술의전당 유튜브 채널을 통해 중계된 유니버설 발레단의 《심청》 공연 당시 채팅창에는 “처음 본 발레의 매력에 빠졌다”는 관객들의 반응들이 나왔고, 조성진의 피아노 공연을 온라인으로 처음 들은 관객들은 “뒤늦게나마 조성진의 연주를 들어볼 수 있어 정말 다행”이라고 댓글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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