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연 논란] 기부금 모집은 쉽게, 사후 관리는 철저히
  • 조해수 기자 (chs900@sisajournal.com)
  • 승인 2020.05.18 10:00
  • 호수 1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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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화된 기부금품법 정비 시급…기부문화 활성화와 투명성 제고 ‘두 마리 토끼’ 잡아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후원금 사용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면서, 공익법인의 회계 투명성을 제고할 수 있는 방안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현재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기부금품법)’이 존재하지만 사실상 사문화한 상태다. 시민단체 내부에서는 기부문화 확산을 위해 기부금 모금에 대해서는 자율성을 허용하되, 기부금의 사용처는 엄격한 관리·감독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 할머니는 언론을 통해 “지난 30여 년간 진실을 밝히기 위한 투쟁 과정에서 나타났던 사업 방식의 오류나 잘못을 극복하기 위한 과정이 필요하다”면서 정의연의 책임 있는 집행 과정과 투명한 공개를 촉구했다.

이에 발맞춰 행정안전부(행안부)는 기부금 모집과 지출내역 등이 담긴 출납부 제출을 정의연에 요구했다. 이에 대한 근거가 되는 법률이 기부금품법이다. 기부금품법 제4조에 따르면, 1000만원 이상 10억원 이하의 기부금품을 모집하려면 모집·사용계획서 등을 작성해 지방자치단체장에게 등록해야 하며, 10억원을 초과하는 경우 행안부 장관에게 등록해야 한다. 즉, 행안부는 정의연이 계획서를 벗어나 기부금을 사용한 사례가 없는지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만약 정의연이 이를 위반했다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을 수 있다.

2016년 11월20일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에서 열린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26주년 후원의 밤 행사에 윤미향 정대협 대표, 김복동·안점순·길원옥 할머니(왼쪽부터)가 참석했다. ⓒ연합뉴스
2016년 11월20일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에서 열린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26주년 후원의 밤 행사에 윤미향 정대협 대표, 김복동·안점순·길원옥 할머니(왼쪽부터)가 참석했다. ⓒ연합뉴스

주먹구구식 회계…“오류 극복해야”

국세청도 나섰다. 국세청은 “정의연이 지난 4월 공시한 결산 서류에서 일부 오류를 발견했다”면서 “(이에 따라) 7월 수정 후 재공시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100만원 이상의 지출인 경우, 사용처를 구체적으로 적고 세부 금액을 적어야 한다. 그러나 정의연은 피해자 지원 사업 수혜자를 99명·999명 등으로 기재했고, 한 주점에서 단 하루 만에 3300여만원을 지출했다고 기록한 오류도 드러났다.

기부금품법이 존재하지만 이를 준수하는 단체는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정의연은 2017년부터 기부금품법에 따라 사전 등록을 해 왔다. 그러나 정의연의 전신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2016년 44억원대 기부금품법 위반 혐의로 고발당하기도 했다.

당시 정의로운시민행동은 “정대협은 2003~16년 행정자치부 및 서울시 어디에도 기부금품 모집등록을 하지 않고 44억4913만1522원의 기부금을 무등록 불법 모금했다”면서 “사단법인으로 등록된 사실이 부끄러울 정도로 정대협의 운영자금 수입지출 회계내역은 부정확하고 신빙성이 결여돼 있다”고 밝혔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김영우 미래통합당 의원에 따르면, 2012년 8명이던 기부금품 위반 인원은 2017년 60명으로 7배 증가했다. 이를 보여주듯, 기부금품법 위반 사례는 현재도 계속 나오고 있다. 사법시험준비생모임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옹호 단체인 개싸움국민운동본부(개국본)를 기부금품법 위반 및 사기 혐의로 고발했다. 개국본이 4억원 상당의 보이스피싱을 당한 사실을 알면서도 후원금이 제대로 사용됐다고 속여 거액의 후원금을 계속 모집했다는 것이다.

전광훈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은 지난해 10월3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보수단체 집회 등에서 등록 없이 기부금을 모금한 혐의로 개신교 시민단체 평화나무에 의해 고발됐다. 종교단체가 예배 시간에 신도들에게 헌금을 모집해 종교활동에 쓰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문재인 하야 광화문 100만 투쟁대회’라는 이름의 정치 집회에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모금한 것은 기부금품법 위반이라는 것이다.

 

국세청으로 기부금 관리 일원화

유튜브와 SNS가 활성화되면서 기부금이 악용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무기징역이 확정된 ‘어금니 아빠’ 이영학씨가 대표적이다. 이씨는 2005년부터 딸의 수술비 명목으로 12억8000여만원의 기부금을 모았지만, 딸의 치료비로 쓰인 것은 1억6000여만원에 불과했다. 수년간 인터넷과 언론을 통해 공개적으로 모금이 진행됐지만 관계부처의 관리·감독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시민단체에서는 법령 해석의 모호성, 등록·변경 절차의 어려움, 중복 행정 등을 이유로 기부금품법이 오히려 기부문화 활성화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기부문화 활성화를 국정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기부금 모금은 쉽게, 사후 관리는 철저히 하는 방향의 개선 방안을 내놨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2021년부터 지정기부금단체 지정 및 사후 관리를 국세청으로 일원화한 것이다. 기존에는 공익법인이 해당 주무관청에 설립 신청을 하면 주무관청이 기획재정부에 추천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개정 후에는 모든 공익법인은 설립 허가 신청을 국세청에 내야 한다.

사후 관리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절차도 간소화된다. 기존에는 기부금 단체가 주무관청에 의무이행 여부를 보고하고, 주무관청이 이를 점검해 국세청에 통보했지만 그 과정에서 주무관청의 전문성 등의 문제가 불거졌다. 이에 내년부터는 기부금단체가 주무관청을 통하지 않고 국세청에 바로 보고해 국세청 한 곳에서 의무이행 여부를 감시할 수 있게 했다.

지정기부금단체의 지정 취소 절차도 국세청에서 바로 통보해 행정적 낭비를 줄이도록 했다. 또한 ‘직전 2년간 고유목적사업 지출내역이 없는 경우’를 지정기부금단체 지정 취소 사유에 추가해 적용하도록 규정했다. 이보다 앞서 올해 초부터 의무공시 대상 공익법인을 확대 적용했다. 기존에는 자산 5억원 또는 연간 수입금액 3억원 이상의 공익법인만 결산서류 등을 공시해야 하는 대상이었지만, 모든 공익법인으로 대상이 확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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