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이제 대한민국이 세계 표준국가란 자부심 가져야”
  • 감명국 기자 (kham@sisajournal.com)
  • 승인 2020.05.18 14:00
  • 호수 1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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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원순 서울시장 “지지율 변화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IMF(국제통화기금)는 ‘코로나19’ 이후의 세상에 대해 “향후 소득 불평등 추세가 더욱더 가팔라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과거 사스·신종플루·메르스 사태 때도 바이러스 대유행을 겪으며 소득 불평등 현상이 더 심해졌는데, 그보다 훨씬 더 강력한 코로나19는 저소득층에게 좀 더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안겨줄 것으로 전망한 것이다.

그래서일까. 5월12일 이태원발(發) 확진자 증가 추세로 어수선한 와중에도 시사저널의 인터뷰에 응한 박원순 서울시장 또한 소득 불균형 문제를 유난히 강조하는 모습이었다. 4·15 총선 이후 20대 대선으로 초점이 맞춰지는 정치 지형에서 여당의 주요 대선주자 중 한 명으로 관심을 받는 박 시장이지만, 지금 그의 머릿속은 온통 ‘포스트 코로나’에 맞춰진 듯했다. 인터뷰 처음부터 ‘전 국민 고용보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시사저널 이종현
ⓒ시사저널 이종현

코로나19 때문에 모든 게 바뀌고 있다. 서울시장의 모습도 역시 많이 바뀌었을 듯하다.

“그렇다. 나도 언택트(Untact)하고 있는 게 많다. 시청 직원들끼리는 만나지만 외부 행사나 면담은 줄어들 수밖에 없고…. 사상 유례가 없었던 이번 사태로 특히 저소득층 시민들이 받고 있는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안 그래도 엊그제(10일) 대통령이 취임 3주년 특별기자회견에서 ‘전 국민 고용보험’의 도입 필요성을 언급한 데 대해 시장이 바로 다음 날 페이스북에 ‘대통령의 결단에 박수를 보낸다’는 글을 올리면서 공감을 나타냈더라.

“‘포스트 코로나’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에 대해 전 세계 정치 지도자들이나 일반 시민들도 관심이 많은데, (대통령의 언급은) 거기에 굉장히 맞는 올바른 선택이자 방향 설정이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위기나 재난을 경험하면서 사회적 격차나 양극화가 더욱 심화되는 경향이 있다. 실제 우리는 지난 IMF 사태 때 대량 해고나 구조조정 때문에 많은 사람이 직장을 잃고 노동의 유연화에 따라 비정규직이 극도로 확대됐던 경험이 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도 그럴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역시 직장을 잃거나 소득이 감소하는 것은 취약한 계층들일 수밖에 없다. 이럴 때 고용보험의 전 국민화, 즉 모든 국민에게 고용보험 제도를 확대하는 것이 격차를 줄이는 데 굉장히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시장 집무실에 설치된 도시현황판을 보며 5월12일 현재의 서울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박원순 서울시장이 시장 집무실에 설치된 도시현황판을 보며 5월12일 현재의 서울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복지는 낭비가 아닌, ‘미래 투자’다”

취약한 계층이라 함은.

“우리 주변에 좋은 일자리를 가진 사람은 고용보험 등 4대 보험이 다 되어 있다. 그런데 흔히 말하는 특수고용노동자, 플랫폼노동자, 영세 자영업자 등은 지금 거의 안 되고 있다. 사회복지 측면에서 OECD 국가 중 거의 하위권에 속하는 대한민국에서 오히려 이 기회에 전 국민 고용보험제도가 시행된다면 참으로 좋겠다는 생각이다. 여러 가지 재정적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이럴 때 함께 가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은 점진적·단계별 추진을 말했는데.

“속도와 대상에서 약간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고 본다. 대통령께서 충분히 재정 상황이나 국민 여론 등을 고민하셨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중대한 국민적 결단은 이런 비상시기에 내려지지 않으면 평상시에는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예를 들어 영국이 복지국가 체제를 정비한 건 2차 세계대전 직후 굉장히 어려울 때였다. 국가재정도 당연히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베버리지 보고서에 따라 요람에서 무덤까지 생애주기에 걸친 복지체제를 완성하지 않았나. 우리도 이런 기회에 이뤄놓지 않으면 앞으로는 더 어려울 것으로 본다. 지금의 반쪽짜리 고용보험을 온전한, 완성된 고용보험으로 전면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앞서 언급했지만, 일각에서 우려하는 목소리는 역시 재정적 문제 때문일 것으로 본다. 거기에 대해 정치권에서 대안을 제시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그게 발상의 전환이라고 생각한다. 복지는 흔히 낭비라는 생각을 가진 이가 많지만, 실제로는 반대다.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에 이미 복지국가를 완성한 나라들이 있다. 스웨덴·핀란드 등 주로 북유럽 국가들이다. 모두에게 안전한 시스템을 만들어주니까 국민들이 과감한 도전과 혁신을 이루는 것이다. 오히려 그에 기초해 경제성장이 이뤄지고 성장의 배분이 복지로 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낭비가 아니라 국민에 대한 투자, 사람에 대한 투자,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본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과감하게 결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은 임금 중심의 고용보험 체제였다면 이제는 소득 중심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 이렇게 되면 자연히 자영업자들을 포괄할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 좋은 일자리를 가진 이들은 우산을 쓰고 있는데, 특수고용노동자라든지 플랫폼노동자, 영세 자영업자들은 완전히 장대비를 맞고 있는 격이다. 당연히 그 우산을 다 같이 써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재정에 대한 우려를 말하는데, 서울시는 작년부터 자영업자의 고용보험 납부금을 30%까지 지원하고 있고, 전국 최초로 ‘상병 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자영업자들이 가게 때문에 병원을 가지 못하는 상황에 대비해 최대 2주간 누군가를 고용할 수 있게 비용을 지원하는 것이다. 이렇듯 사각지대에 있던 계층을 안전망 체제로 들어오게 하는 것만큼 중요한 국가적 과제는 없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강연에서 ‘한국이 표준국가가 돼야 한다’는 말을 했다. 어떤 의미인가.

“지금 코로나 사태에서 이른바 ‘K방역’이 세계 표준이 되고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미 우리가 세계적 표준이 된 것이 많다. K팝·K드라마·K뷰티·K푸드 등에서. 이런 말도 있지 않나. ‘대한민국이 선진국인 것은 대한민국 국민만 모른다’라고. 어느샌가 우리 자신이 이미 선진국이 되어 있는 거다. 그런 국민적 자신감을 가지고 우리가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세계 표준이다, 이렇게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사실 오래전부터 이 문제를 고민해 왔다.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민주화, 그 이후의 사회는 어떤 방향과 비전을 가져야 하는가에 대해. 일부에서는 선진화라고 하는데, 그보다는 ‘세계의 표준’이 맞다고 본다. 국민들에게 엄청난 자부심을 주는 것이고, 산업화·민주화 이후에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너무나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최근 이태원 클럽발 확진자 증가 때문에 다시 긴장을 하게 되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생활방역으로 너무 빨리 전환한 게 아닌가 하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들은 경제활동도 해야 하고, 스스로 방역도 해야 하는 그 중간 지점에서 힘든 상황이 되고 있는데.

“서울시를 포함해 중앙정부도 코로나19 이후에도 팬데믹은 계속 올 수밖에 없다고 예고하고 있다. 특히 가을이 되면 3차 웨이브가 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만 우리 국민들의 삶이 이렇게 지속적으로 고립화될 순 없잖은가. 말하자면 생활방역이라는 자체가 방역을 포기한 게 아니라 한편에서는 방역에 집중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시민들의 삶과 경제활동을 어느 정도 보장하면서 사회를 유지되도록 하겠다는 거니까, 나는 앞으로 그런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본다. 다만 이번 이태원 클럽 사태를 통해 이젠 방역과 동시에 삶도 함께 가는 공존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앞으로 공존이 가능하도록 거기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성찰, 체제와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

뉴욕이나 도쿄 같은 대도시들에 비하면 그래도 서울은 상당히 잘 대처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앞으로 서울도 숱한 고비를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어떤 대비를 하고 있나.

“감염병을 대하는 기본원칙과 자세는 너무나 단순하다고 생각한다. 크게 말하면 투명성이다. 선별진료소를 통해 누구나 와서 무료로 검사를 받을 수 있게 하는 것, 확진자가 나오면 확진자 동선을 빠른 시간 내에 파악해 모든 접촉자를 자가격리시키는 것,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공개하는 것, 이것들만 잘 지키면 된다. 다만 이번 이태원 클럽 사태는 여러 가지 면에서 거기에 갔던 사람들을 특정하기가 쉽지 않은 측면이 있었다. 그렇지만 어제까지만 해도자발적으로 검사하는 숫자가 적었는데, 서울시에서 좀 더 강력한 대응 방침을 밝혀서인지 오늘은 검사에 응한 숫자가 두 배로 늘었다고 한다. 결국 방역에서의 최종 승리는 국민의 의식 수준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대한민국 국민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 의식 수준이 높다.”

유럽 등 해외에서는 확진자의 동선을 공개하고 공유하는 것 등이 지나친 인권침해 아니냐는 의견도 있는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개인 프라이버시를 침해한다거나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재난 시기에 신속성, 효율성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지자체의 역할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된 듯하다.

“코로나19 과정을 거치면서 국가의 귀환, 정치의 소환, 지자체의 발견 이 3가지가 주목됐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국가가 제 기능으로 돌아왔고, 정치가 그 역할을 하도록 요구받고 있다는 것이다. 지자체의 발견이라는 것은 지자체가 역시 역할을 잘하고 있다는 평가일 것이다. 지자체가 잘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가까이에 현장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4·15 총선이 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총선에서 나타난 민심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이번 선거 결과에 담긴 국민의 명령은 분명하다. 대통령을 중심으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국회가 힘을 합쳐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고 코로나 이후를 제대로 대비하라는 것 아닐까. 국민의 압도적 선택을 받은 민주당이 중심이 되어 21대 국회를 일하는 국회로 만들어 가리라 기대한다. 나도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심기일전해 개혁과제 완성에 함께하겠다.”

이번 총선에서 당내 다른 대선후보 경쟁자들에 비해 시장 측근들의 원내 입성이 가장 많이 이뤄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나와 서울시에서 비전을 공유하면서 손발을 맞춰 일해 온 분이 다수 당선되면서 그런 평가가 나오는 것 같다. 그러나 계파 구분은 구시대의 정치 문법이다. 지금 민주당의 정체성은 원팀이다.”

최근 대선후보 선호도 여론조사를 보면 박 시장 지지율이 오랫동안 정체된 느낌이다.

“2011년 당시 5%의 지지율로 시작했지만, 지금 최초의 3선 서울시장이 됐다. 서울시장 재임 동안에도 수없는 지지율 변화가 있었지만 거기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좌고우면하지 않고 내게 주어진 일을 하겠다.”

코로나 대응 등과 관련해서도 불가피하게 이재명 경기지사와 곧잘 비교 대상이 되곤 한다. 이 지사의 과감함과 박 시장의 신중함 등….

“나도 과감할 때가 있다(웃음). 이재명 지사님과 나는 비교나 경쟁상대가 아니라 민주당이라는 원팀으로 대한민국 발전을 위해 함께 가는 사이다. 특히 서울과 경기도는 공동생활권이나 마찬가지다. 이번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이 지사님과 긴밀하게 협조하고 있다. 서울과 경기가 거의 비슷한 상황에서 유사하게 대처하고 있는데, 내가 상대적으로 더 신중해 보이는 건 아무래도 농사꾼의 아들이라 그럴지도 모르겠다. 농사꾼은 요행을 부리는 법이 없지 않나. 성심껏 밭을 갈고 씨 뿌리고 물을 줘서 정직한 결실을 거두는 데 익숙하다.”

최근 일부 언론에서 시장이 단행한 비서실장과 보좌관 등 서울시 인사에 대해 대선 준비용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시 비서실 멤버는 지금까지 쭉 순환돼 왔다. 서울시정의 끊임없는 혁신을 위해선 새로운 실험과 시도가 계속돼야 하기 때문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서울의 비전을 함께 설계할 각 분야 전문가들을 심사숙고해 영입했다.”

전문가와 석학들은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시대가 나뉠 거라고 전망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서울시의 모습은 어떠할지 궁금하다.

“서울시가 세계 도시들의 표준이 되겠다는 엄청난 야심을 갖고 있다. 전자정부 분야에서 7회 연속 서울이 압도적 1위로 나타났다. 사실 서울시민만 모르는, 이미 서울시는 세계 표준도시가 되고 있고 우리가 조금만 더 노력하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방역도 그러했지만 의료진이나 공직자나 이런 분들의 분투·열정·희생이 있었지만 최종의 승리의 원인은 결국 국민들이라고 생각한다. 시민들의 인식수준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시장에 취임하면서 이미 시민이 시장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시민들이 스스로 행정에 참여하고 예산을 만들고 다양한 참여루트를 보장하고 참여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고 각종 참여적, 주도적 역할을 만들어왔다. 한마디로 말하면 시민지방정부를 만들어왔다고 생각한다. 그게 결국은 방역에서도 성공할 수 있고 앞으로 미래표준도시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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