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고용 한파…빚더미에 내몰린 울산 청년들”
  • 부산경남취재본부 박치현 기자 (sisa518@sisajournal.com)
  • 승인 2020.05.18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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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취업자, 고용률 48개월 연속 감소 추세…대출에 의존하는 ‘벼랑끝’ 청년들
울산 20대 청년 대출금, 연체금 전국 17개 시 도중 최고

울산 청년들이 코로나 취업 한파를 겪고 있다. 울산지역 20대의 대출과 연체금이 다른 연령대보다 급증하고 있다. 실직과 생활고가 20대 청년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 셈이다.

울산 효문공단 중소기업에 다니던 27살 A씨는 지난 2월 일자리를 잃었다. 코로나19 여파로 경영난을 겪던 회사가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첫 직장의 부푼 꿈도 5개월 만에 끝이 났다. A씨는 당장 전세 대출금 연체가 걱정이다.

25살 취업준비생 B씨는 빚 독촉에 시달리고 있다. 몇 달 전 급하게 돈이 필요해 대부업체에서 500만원을 빌렸다. 매달 일정 금액씩 갚아 나가야 하지만 취업은 고사하고 아르바이트도 구하지 못해 한숨만 쉬고 있다. B씨는 요즘 대부업체로부터 상환 압박을 받고 있다. 모르는 전화번호는 받지 않는 습관도 생겼다.


코로나발 고용 쇼크, 울산 고용률 48개월 연속 추락

코로나19가 울산 경제를 흔들고 있다. 한국 최대의 공업도시 울산은 일자리가 많은 만큼 실직자도 많다. 울산지역 취업자와 고용률이 큰 폭으로 하락하고 있다. 제조업 경기침체에 코로나발 고용쇼크가 더해져 48개월 연속 감소 추세다.

직원을 뽑는 기업은 없고 공장 문을 닫거나 직원을 내보내는 기업이 늘어나 울산은 코로나 고용 한파를 심하게 겪고 있다. 동남지방통계청 자료를 보면, 3월 울산 취업자 수는 55만2000명이다. 전년대비 1만7000명(3.0%) 줄었다. 고용률도 57.2%로, 전년 동월 대비 1.6%p 하락했다. 1년 3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울산 온산공단 기업들은 코로나19 대응 생존전략 수립에 들어갔다ⓒ울산시
울산 온산공단 기업들은 코로나19 대응 생존전략 수립에 들어갔다ⓒ울산시

울산 20대 청년대출, 연체금 전국17개 시 도중 최고

반면 울산지역 20대의 신용 대출금과 연체금은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가장 높게 나타났다. 나라살림연구소가 코리아크레딧뷰(KCB)로부터 제출받은 개인 대출 현황 데이터를 바탕으로 현황 분석을 한 결과다.

코로나 여파로 단기 일자리까지 사라지고, 신규 채용마저 사실상 중단돼 빚더미에 내몰린 울산지역 20대들은 코로나의 매서운 한파를 체감하고 있다. 올해 4월 울산지역 20대의 대출액은 1인당 667만원으로 나타났다. 700만원에 육박하는 대출금은 20대들에게는 큰 돈이다. 그러나 원금조차 갚을 길이 막막해 연체금은 계속 쌓여가고 있다. 대출 연체금은 179만원으로, 한 달 전보다 10만원 증가했다. 그리고 5월에는 돈을 빌리는 20대가 더 늘어날 것으로 분석됐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올해 4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15~29세 취업자는 2009년 1월 이후 가장 크게 감소했다. 고용률 감소폭도 청년층이 가장 컸다. 이 같은 고용 악화는 연말까지 지속될 것으로 분석됐다.

20대들은 생활비가 없어 돈을 빌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울산 남구에 사는 24살 C씨는 요즘 취업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직장을 구하는 게 누구보다 절박하다. 막노동을 하면서 가족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아버지의 건강이 나빠져 장남인 C씨가 당장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C씨는 “매일 채용 사이트에 들어가 보지만 뽑는 회사가 없고 아르바이트도 구하기 어렵다. 생계목적으로 500만원을 신용대출 받았지만 석 달 째 이자도 못내고 있다”며 “일자리가 없으니 대출금을 갚지 못하고 있는데 주변에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친구들이 의외로 많다”고 했다.

대학교 3학년인 22살 C씨는 올해 1학기 학자금을 대출받았다. 작년까지는 아르바이트로 번 돈과 집에서 주는 돈을 보태 등록금을 냈지만, 올해는 아버지의 실직에 아르바이트 자리도 나지 않아 은행 문을 두드렸다. 어렵게 돈은 빌렸지만 갚을 방법이 막막하다.  

나라살림연구소 관계자는 “다른 연령대에 비해 학자금 대출뿐 아니라 코로나19 여파로 채용이 늦어지고 직장, 아르바이트 등에서 해고되는 사례가 많아짐에 따라 생계비 목적 대출이 증가했다고 볼 수 있다”며 “취업이 늦어지고 아르바이트 등에서 해고되는 사례가 늘면서 20대가 소액 신용대출 상환 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분석했다.

 

올해 2분기 이후 고용 충격 더 악화, 위기에 내몰리는 20대 청년들

청년층의 고용 충격이 올해 2분기 이후 더 악화될 것으로 예측됐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보고서를 통해 “코로나19가 지난 3월 중순 이후 유럽과 미국 등 전 세계로 확산한 데 따른 영향은 아직 고용 지표에 반영되지 않았다. 올해 2분기 이후 청년층 고용 충격이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KDI 한요셉 연구위원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와 유사한 충격을 받는다면 청년층 고용률은 1%포인트, 취업자 수는 10만 명 감소할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을 내놨다.

대규모 실직과 고용률 하락은 생계형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울산에서 일어났다. 울산의 조선업체 하청 근로자인 김모씨는 회사 폐업으로 지난 2018년 실직하자 새마을금고에서 1억1000만원을 빼앗아 달아났다가 검거됐다. 김씨는 빚진 돈과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범행을 했다고 자백했다.

실직자 김모씨가 새마을금고에서 1억1천만원을 빼앗아 달아났다가 검거됐다ⓒ울산동부경찰서
실직자 김모씨가 새마을금고에서 1억1천만원을 빼앗아 달아났다가 검거됐다ⓒ울산동부경찰서

역시 울산 조선소 하청업체를 다니다 2018년 실직한 이모씨는 가정집을 돌며 12차례에 걸쳐  현금과 귀금속 등 200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쳤다가 경찰에 체포됐다. 이씨는 훔친 돈을 생활비에 쓴 것으로 밝혀졌다. 

급전이 필요한 20대를 노리는 불법대출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특히 상당수 무허가 사채업자는 SNS(소셜미디어)에서 ‘신용등급 관계없이 누구나 대출 가능’ ‘급전대출·즉시대출·소액대출’ 등의 문구를 걸어놓고 급전이 필요한 청년들을 유혹한다. 

실제 카카오톡 검색창에 ‘급전’ 또는 ‘급전대출’을 입력하면 대학생과 취준생, 무직자 등을 대상으로 한 공개 그룹 채팅창이 30개 이상 뜬다. 트위터에서도 ‘급전대출’ 관련 게시물이 100여 건 검색된다.

울산 온산공단 제지회사 계약직이었던 29살 E씨는 지난 1월 계약기간이 끝나 일자리를 잃었다. E씨는 이자가 비싼 사채(‘급전’)를 빌려 원룸 임대료와 생활비를 겨우 충당하고 있다. E씨는 “실직 후 3개월 동안 열심히 직장을 구해봤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신용불량자 신세를 면할 수 없게 됐다”며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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