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시민에게 총부리를 겨눌 수 없다 [최보기의 책보기]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thebex@hanmail.net)
  • 승인 2020.05.18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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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하 평전》ㅣ이재의 지음ㅣ정한책방 펴냄ㅣ340쪽ㅣ1만8000원

고(故) 안병하는 1928년 강원도 양양에서 태어났다. 중학교를 일본에서 마쳤고 해방되던 해에 서울 광신상고에 편입했다. 김종필, 김형욱, 이희성 등과 육군사관학교 8기로 입학해 1949년 21세 때 전방부대 소위로 임관, 6·25 전쟁을 치렀다. 1951년 춘천전투, 음성전투의 공으로 화랑무공훈장을 받았고 1계급 특진했다. 2015년 전쟁기념사업회는 안병하를 “8월의 호국인물”로 선정했다.

1962년 34세 때 육군 중령으로 예편, 총경으로 경찰에 특채돼 부산 중부경찰서장으로 첫 근무를 시작했다. 6년 후 서귀포 침투 무장간첩체포 육상작전을 지휘해 화랑무공훈장 등 5개의 훈장과 중앙정부보장 표창을 받았다. 43세 때 경무관으로 승진했고 1979년 2월 제37대 전라남도 경찰국장으로 부임했다. 박정희가 10·26에 김재규의 권총에 맞아 죽기 8개월 전이었다.

1979년 12·12 사태로 전두환을 위시한 신군부가 등장했다. 대학생들을 비롯한 시민들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전국에서 일어났고, 신군부는 1980년 5월17일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이날 제 7공수부대 33대대, 35대대가 광주 전남대와 조선대에 투입됐다. 공수부대원들에게 민주화를 요구하는 광주시민들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무자비하게 죽여야 할 적이었다. 그들의 박달나무 곤봉에 청년들의 머리가 깨졌고, 시퍼런 대검에 임산부의 젖가슴이 갈라졌고, 조준해 발사한 총알이 저수지에서 놀던 어린이들 심장을 관통했다. 어떤 아이는 도망치다 벗겨진 검정 고무신을 주우려고 되돌아오다 총알을 맞았다.

안병하 전남경찰국장은 휘하 경찰들에게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적으로 보호하라고 지시했고, 경찰의 무장이나 시민들의 무기탈취로 벌어질 내전상황을 막기 위해 경찰이 가지고 있던 모든 무기를 안전지대로 옮기게 했다. 이희성 계엄사령관이 안병하 경찰청장에게 무력발포를 지시했지만 “경찰이 시민에게 총부리를 겨눌 수 없다”며 발포를 거부했다. 5·18 항쟁 동안 광주시민들은 경찰을 신뢰했고, 경찰을 시민들을 보호하려 노력했다. 5월 17일 제 7공수부대가 광주시민들을 상대로 야만의 살육을 벌일 때 경찰들은 거리의 청년들을 향해 “너희들 이러다 공수부대한테 걸리면 다 죽는다. 얼른 집으로 가라”고 울먹이며 소리를 질러댔다.

5월26일 계엄사 합수부로 압송된 안병하는 8일간 혹독한 고문을 당했고, 파면 당한 채 6월13일 집으로 돌아왔으나 극심한 고문후유증에 시달렸다. 5월27일 새벽 장갑차와 헬기를 앞세우고 전남도청에 진입한 공수부대의 화공으로 최후의 시민군들은 푸른 5월의 종달새가 돼 순정한 대한민국의 하늘로 올라갔다. 안병하는 고문후유증과 합병증으로 60세이던 1988년 10월 10일 숨을 거두었다. 안병하의 지시로 경찰의 무기를 목포 앞 섬으로 옮겼다가 신군부에 체포됐던 고(故) 이준규 목포경찰서장이 고문후유증으로 사망한 지 3년 지난 해였다.

신군부 세력의 위세에 눌려 오랫동안 묻혀있던 안병하의 역사가 주목을 받게 된 것은 2017년 촛불혁명이 성공하면서였다. 2017년 11월 안병하는 1980년 6월1일 해직일 시점으로 치안감에 추서됐고, 경찰청으로부터 “올해의 경찰 영웅” 제1호로 선정됐다. 경찰 인재개발원의 안병하홀 입구에 걸린 고인의 동판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다.

“소신 있는 용기와 신념으로 국민의 생명과 자유, 권리를 보호하고 경찰의 명예를 지켜낸 참다운 시민의 공복이자 민주경찰의 표상 안병하”

2020년 총선에서 주권자인 국민들은 더불어민주당에 180석이 넘는 압승을 안겨주었다. 정치평론가와 역사학자들은 대한민국의 시대정신이 박정희 군부세력의 5·16정신에서 5·18 광주 정신으로 바뀌면서 시대의 주류가 완전히 교체됐다고 평가한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 40주년인 2020년 5월18일, 광주의 옛 전남도청 앞 분수대에서 열린 기념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여야 정치 지도자들은 “5·18의 역사적 평가와 진실규명에 협력할 것”이라 한 목소리를 냈다.

자랑스러운 선조, 부끄러운 선조 모두 후손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일제경찰 앞잡이로 독립군에게 가혹한 고문을 하고, 해방 후 독립군 의열단장 약산 김원봉을 빨갱이로 몰아 박해했던 노덕술과 그 후손들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박기서의 정의봉에 죽었던 백범 김구 암살범 안두희도 그렇다. 묘마저 없는 매국노 이완용의 증손자 이윤형은 재산을 처분해 캐나다로 도망갔고, 나머지 후손들 역시 흔적이 드러나지 않는다.

시간이 때로는 사람의 마음보다 더디 흘러 눈에 보이지 않을지라도 길고 긴 업보의 그물은 죄악의 대가를 놓치는 법이 없다. 역사의 눈으로 보면 훤히 보이는 섭리다. 5·18 광주와 역사에 죄를 지었던 자들이 유념할 바 회개하고, 반성하고,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떠나라. 다름 아닌 당신들의 후손을 위해. 《안병하 평전》을 대한민국 모든 경찰과 군인의 필독서로 추천한다.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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