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자이언츠에게 강팀의 향기가 나는 이유
  • 이상평 야구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5.22 18:00
  • 호수 1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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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스 이탈 속에도 탄탄한 팀 전략 갖춰…부산 팬들 “가을야구 가즈아!”

코로나19로 전 세계 프로 스포츠들이 의도치 않게 중단됐다. 이런 상황 속에서 개막한 KBO(한국프로야구)가 전 세계 야구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현재까지 리그 최고의 이슈는 단연코 롯데 자이언츠의 초반 상승세다. 롯데가 예상 밖의 성적을 거두자 수년간 잠잠했던 롯데의 팬들이 엄청난 화력으로 다양한 온라인 커뮤니티를 점령하고 있다. KBO리그 최고 인기 팀 중 하나로 꼽히는 롯데는 ‘구도(球都)’라고 불리는 부산에 위치하며 1982년 원년부터 팬들의 뜨거운 성원과 함께해 왔다. 그러나 2001년부터 ‘8-8-8-8-5-7-7위’를 연속으로 기록하며 야구팬들 사이에서는 ‘비밀번호’라고 불리는 암흑기를 맞이했다. 당시 KBO가 8구단 체제였음을 고려한다면 심각한 암흑기였다고 할 수 있다.

5월13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두산- 롯데 경기에서 9회말 롯데 민병헌의 끝내기 홈런으로 승리한 롯데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5월13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두산- 롯데 경기에서 9회말 롯데 민병헌의 끝내기 홈런으로 승리한 롯데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로이스터-양승호 이후 찾아온 첫 황금기

그러나 2008년 제리 로이스터 감독이 KBO 최초로 외국인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롯데는 순식간에 달라졌다. ‘노피어’ 정신을 앞세우며 단번에 3위로 올라서며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고 화끈한 공격야구로 꾸준히 가을야구에 진출했다. 양승호 감독으로 교체된 2011년에는 탄탄한 불펜까지 더해지며 2위에 올라서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맞이한 황금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이후 롯데는 다시 기나긴 암흑기에 빠져들었다. 2017년 잠시 3위에 오르며 부활의 기지개를 켜는 듯 싶었지만 2018, 2019 시즌에 다시 부진에 빠지며 암흑기를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2019년에는 0.340의 승률을 기록하며 10개 구단 체제에서 단일 시즌 역대 최저 승률을 기록했고, ‘103 폭투’라는 상상도 못 할 기록을 만들어내는 등 창단 이래 최악의 시즌을 보냈다.

그랬던 롯데는 지난 시즌 말 팀의 체질 개선을 선언하며 성민규 단장을 선임했고 오프 시즌 여러 파격적인 행보들을 보여주며 팬들의 기대를 모으기 시작했다. 1군은 물론 2군에도 적극적 투자가 이어졌다. 기본적인 운동시설부터 트랙맨, 랩소도 같은 고가의 분석 장비 도입은 물론이고 식사, 숙소와 같은 기본 환경까지 전부 개선했다.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데이터 R&D팀을 신설, 국내외 전문가들을 수혈했으며 1군에는 허문회 감독, 2군에는 래리 서튼 감독을 선임했다. 이들뿐만 아니라 기존 코치들과의 재계약을 포기하고 국내외의 다양한 전문가를 코치로 영입하는 움직임도 보였다.

이런 움직임들과 지난겨울 이어진 착실한 전력보강 덕분일까, 롯데는 뒤늦게 열린 팀 간 연습경기부터 질주를 시작했다. 연습경기를 1위로 마무리하면서 달라진 듯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팬들은 항상 시범경기 때만 잘해 왔던 롯데의 별명인 ‘봄데’를 언급하며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시즌이 개막한 이후에도 롯데의 질주는 이어졌다. KT와의 개막 3연전을 스윕하며 시즌을 시작했고, 이어진 SK와의 3연전에서도 우천 취소된 한 경기를 제외하고 2승을 챙기며 2593일 만에 개막 5연승에 성공했다. 그리고 이 경기 결과로 선두에 오르며 2227일 만에 단독 선두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두산에 1승 2패, 한화에 1승 2패로 2연속 루징 시리즈를 기록했고, 최근에는 4연패에 빠져 주춤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야구 경기를 보다 보면 ‘분위기’라는 것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 참으로 신기하게도 뭔가가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에 맞춰 그 게임이 좌지우지되는 것을 자주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강팀들의 경기를 살펴보면 상대 팀에 이런 분위기를 쉽게 내주지 않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강팀들은 어떻게 이 분위기를 공통으로 향유할 수 있었을까. 답은 바로 탄탄한 기본기와 뛰어난 집중력이다. 이를 통해 수비 시간은 짧게, 공격 시간은 길게 유지하면서 경기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이러한 선순환이 발생하면서 경기를 주도하게 되는 것이다. 타자들이 상대 투수의 공을 끈질기게 커트하면서 버티고 착실한 수비를 보여주는 등 작은 플레이 하나하나가 쌓이고 그로 인해 상대 팀의 집중력이 흔들려 무너지거나 분위기를 내주는 경우를 강팀들의 경기에서는 자주 찾아볼 수 있다. 기본적이지만 사소해 간과할 수 있는 하나하나가 쌓여 차이를 만들어낸다.

 

성민규 단장, 첨단 훈련 시스템 도입

아직 20경기도 치르지 않은 상황에서 다소 성급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롯데는 개막 이후 분명히 강팀들이 향유해 왔던 스타일의 경기들을 해 왔다. 좋은 결과를 거머쥐었던 KT, SK와의 시리즈뿐만 아니라 주춤했던 두산, 한화와의 시리즈에서도 롯데는 분명히 강팀의 향기를 풍겼다.

롯데는 이 기간 상대 팀이 실책이나 애매한 플레이를 하면 이를 놓치지 않고 득점으로 연결했고, 수비 상황에서도 집중하면서 어이없는 실책도 기록하지 않았다. 진 경기에서도 쉽게 지지 않았고, 끝까지 따라붙으면서 상대 팀을 끝까지 괴롭혔다. 경기 전부터 열세라고 평가받던 경기도 절대 쉽게 내주지 않았으며 경기 중 전혀 예상치 못한 변수가 터져 분위기를 넘겨줘도 악착같이 따라붙었다.

더 중요한 점은 롯데가 기록한 이 성과가 100% 전력에서 나온 결과가 아니라는 점이다. 에이스의 역할을 기대하고 영입한 외국인 투수 애드리안 샘슨이 부친의 위독한 병세로 급하게 미국에 다녀온 뒤 자가격리를 하느라 전력에서 이탈한 상황에서 경기를 치러왔다. 롯데가 5월18일까지 기록한 4패 중 2경기는 원래대로였다면 샘슨이 등판했어야 하는 경기였다. 에이스 투수 한 명의 존재가 팀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을 고려할 때 샘슨 없이 롯데가 이뤄낸 성과는 충분히 유의미해 보인다.

롯데는 샘슨의 이탈이라는 예상 밖 변수에도 거침없이 질주했고 강팀들에서만 느낄 수 있던 플레이들을 보여주며 에이스의 부재라는 크나큰 파도를 하나 넘어섰다.

그러나 잘나가던 거인 군단은 타선에서 좋은 역할을 하던 정훈이 부상으로 이탈했고, 샘슨의 대체 선발로 나섰던 유망주 이승헌이 호투 중 타구에 머리를 강타당하는 등 부상 악령이라는 크나큰 변수에 다시 한번 봉착했다. 팀에 힘든 시기가 찾아온 만큼 강팀으로 나아가는 또 다른 시험대에 올라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KBO리그 최고의 인기 팀 중 하나인 롯데는 어느 정도의 성적만 올려줘도 엄청난 관중을 동원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팀이다. 그러나 지금 팬들이 롯데에 열광하는 이유는 그 성적뿐만 아니라 그들이 아주 오랜만에 풍기고 있는 강팀의 향기 때문일 것이다. 과연 롯데는 부상이라는 또 다른 시련을 이겨내고 강팀으로 올라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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