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송이 장미를 그대에게 [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 노혜경 시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5.23 17:00
  • 호수 1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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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서 봉하까지, 이용수에서 윤미향까지

지난 몇 년간 5월18일에서 5월23일까지는 고 노무현 대통령을 사랑하던 이들에게는 일종의 고난주간이었다. 이 시기엔 일상의 바쁜 일들이 내리누르는 압력을 견디며 역사와 민족과 사회를 고민하기로 나는 십여 년 결정해 둔 터다. 마음껏 애도할 시간이 나에게도 필요하니까.

이번 고난주간엔 인권운동가 이용수의 등장이 마음을 흔든다. 편을 이야기하려니 좀 이상하긴 하지만, 크게 보아 같은 편인 윤미향과 이용수를 갈라치기 해 놓고, 윤미향을 때려잡는 매우 치기가 진행 중이다.

결과는 어떻게 될까. 위안부 운동에서 윤미향만 싹 도려내고 운동 그 자체는 관점과 동력을 재정비해 여전히 이어갈 수 있을까. 이어간다 해도 대중과의 접점이 약화된, 어쩌면 학자들만의 운동이 되어 버리지는 않을까. 이런 염려를 하는 이유는 그만큼 위안부 운동에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몫이 컸고, 이제 대부분 90대 노인이 된 위안부 피해자들이 다 돌아가신 다음엔 누가 싸울 것인가를 생각해 볼 때 윤미향이 먼저 떠오르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윤미향의 크고 작은 문제가 내 눈에도 보이지만, 목욕물 버리다가 아기까지 버리는 일을 너무 많이 보아서 그런가, 나는 너무 조심스럽다.

2019년 5월23일 고 노무현 대통령의 추모식이 봉하 대통령 묘역에서 열렸다. ⓒ시사저널 포토
2019년 5월23일 고 노무현 대통령의 추모식이 봉하 대통령 묘역에서 열렸다. ⓒ시사저널 포토

화해와 치유 시작되는 5월이길

‘윤미향 깨기’가 진행되는 동안 세 가지 상반된 힘을 발견한다. 1990년대 고노 담화가 발표된 뒤 일본에서 무시무시하게 불어닥친 백래시가 형태를 달리해 한국 사회를 습격 중이 아닐까 하는 의심. 위안부 운동 그 자체를 부정하는 역사 수정주의자들의 득세와 점점 심해지는 일본 사회의 여성혐오가 우리 사회에도 상륙하는 걸까? 기회를 틈타 위안부를 능멸하는 발언들이 머리를 드는 것을 보는 고통. 다른 한편, 일반 국민하고는 아무 상관없는 1980년대 대학 다닌 사람들끼리의, 도덕성을 내세운 NL-PD(민족자주 계열과 민중민주 계열) 어쩌구 싸움. 거기에 “달은 못 보고 손가락만 보는” 메신저들의 가담. 그 사이에서 깨춤을 추는 나.

분별하고 단죄하는 마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이 엄습해서, 애써 마음에 노래 하나를 심었다.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백만 송이 백만 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갈 수 있다네.”

2003년 5월17일 밤 광주에서 나는 짧은 강연을 했다. 사람들이 흔히 광주 코뮌이라고 부르는 5월 광주의 근본 동력은 바로 ‘사랑’이었다는 한 줄이 주제다. 뒤풀이 장소로 이동하는 중에 누군가가 다가왔다. 그는 곧 울음이 터질 듯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나는 그저 내가 살려고 그랬던 것인데, 사랑이라니 그 말 믿어도 될까요.” 내가 뭐라고 대답할 수 있었겠나. 그 사람의 손을 덥썩 잡기는 했는데 금세 말을 못 하고, 내 눈에서도 그야말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겨우 좋은 말 좀 하기는 했지만, 내가 그분의 마음에 스며 들어갔고 그분의 마음이 내게 밀어닥쳤던 그 눈물이 답이었다. “사랑이 아니면 뭐라 할 거예요”라며 나는 울었고, “사랑 맞네요, 맞아요” 하며 그도 울었다.

늘 봉하에 가서 “왜 돌아가셨어요” 하고 원망만 하는 내가 싫어서 그날이 와도 안 간 지 오래다. 올해는 심지어 추도식도 온라인이다. 고난주간의 끝이 부활이듯, 이번 5월23일은 말의 의미 그대로 화해와 치유가 시작되는 그런 날이었으면 좋겠다. 조만간 봉하에 가면 낮은 무덤 앞에서 말하련다. 사랑으로 이 모든 고난을 이겨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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