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1깡’ 현상, 조롱을 찬사로 바꾸다
  • 하재근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5.23 10:00
  • 호수 1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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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조롱을 피하는 방법, ‘밈’ 현상에서 맘껏 뛰놀다

가수 비가 오랜만에 다시 트렌드의 중심에 섰다. 비의 노래인 《깡》이 화제를 불러왔기 때문이다. 바로 ‘밈’ 현상이다. 《깡》은 비가 2017년에 발표한 곡인데 당시엔 인기를 얻지 못하고 사장되다시피 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인터넷에서 폭발적인 화제를 일으키더니 MBC 《놀면 뭐하니》에서까지 조명받기에 이르렀다. 뒤늦게 노래가 뜨고, 최신곡을 내지도 않은 비는 다시 ‘핫’한 인물이 됐다.

‘밈(Meme)’은 저명한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1976년 《이기적 유전자》에서 처음 선보인 개념이다. 모방을 뜻하는 그리스어 ‘미메메(mimeme)’와 유전자를 뜻하는 ‘진(Gene)’에서 따온 말이다. 도킨스는 생물학적 특징이 유전자를 통해 이어지듯이 문화도 어떤 매개체를 통해 전달되는데, 그게 바로 밈이라고 했다. 밈은 음악, 사상, 패션, 광고 등 폭넓은 분야에서 나타날 수 있으며 밈을 통해 문화가 뇌에서 뇌로 전달된다. 한마디로 문화적 유전자라고 할 수 있다.

요즘 어려운 말이나 외국어를 쓰는 게 유행이다. 그런 배경에서 누리꾼들이 해외에서 사용되는 밈이라는 신조어를 들여왔다. 인터넷 유행을 밈이라고 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짤방(사진), 동영상, 놀이 등 인터넷 유행은 다 밈으로 불린다. 인터넷 유행은 원래부터 있었지만 밈이라고 부르니 뭔가 새로운 현상 같고, 왠지 심오해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매체들이 일제히 밈을 언급하면서 유행하게 됐다.

밈이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유행하게 된 데도 비가 영향을 미쳤다. 《놀면 뭐하니》에서 《깡》이 밈이 됐다며 밈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이다. 이 방송을 통해 인터넷 등에서 암약하던 밈이 양지로 나왔다. 그래서 비와 《깡》, 밈이 서로 연결되며 화제를 모은 것이다. 비는 《깡》의 밈을 통해 부활했고, 밈은 비를 통해 대중적 유행어가 됐다.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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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1깡’ 유행어 낳으며 조롱당했던 비

사실 《깡》의 밈은 원래 비에게 부정적이었다. 한마디로 비를 조롱하는 놀이였다. 누리꾼들에게 비는 샌드백이었다. 너도나도 때리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인터넷 욕받이였다. 비가 어떤 작품을 내놔도 부정적인 반응 일색이었고, 비 관련 기사엔 악플이 쌓였다. 2017년 《깡》의 실패엔 그런 분위기도 영향을 미쳤다. 비가 으스대는 분위기의 힙합을 시도했는데 사람들은 비가 으스댄다며 비웃기만 했다.

으스대는 건 힙합의 일반적인 스타일이다. 다른 힙합 가수들이 부와 성공을 과시할 때는 찬탄을 보냈던 사람들이 비가 과시하자 비웃기 시작했다. 그런데 비는 대한민국 어떤 힙합 가수도 따라갈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성공을 이룬 사람이다. 비의 과시야말로 진짜 성공한 자의 과시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유독 비한테만은 사람들의 시선이 냉랭했다.

그래서 《깡》 뮤직비디오로 몰려가 조롱하는 것이 유행이 됐다. 이런 국민적 조롱 분위기에서 ‘UBD’가 탄생했다. UBD는 엄복동의 영어 약자다. 흥행대작으로 기대를 모은 비 주연의 《자전차왕 엄복동》이 17만 명 동원이라는 처참한 실패를 겪자 누리꾼들이 이를 통쾌해하며 앞으로 17만을 1UBD로 정하자고 했다. 워낙 비 조롱이 광범위하게 퍼지자 나랏일 하는 사람이 선을 넘기까지 했다. 통계청 유튜브 관리자가 《깡》 뮤직비디오를 찾아 “통계청에서 깡 조사 나왔습니다. 1일 10시 기준 비 《깡》 오피셜 뮤직비디오 조회 수 685만9592회, 3만9831UBD입니다”라는 댓글을 단 것이다. 이건 너무하다는 지적이 일었고 결국 통계청이 사과했다.

비가 이렇게 조롱의 대상이 된 건 비의 성공이 애매했기 때문이다. 한때 우리 매체들이 비를 월드스타라고 떠받들었다. 비는 월드투어도 감행했다. 비가 엄청나게 성공한 건 맞지만 월드스타, 월드투어는 과대선전이라고 사람들이 느꼈다. 그래서 거부감이 일던 차에 진짜 월드스타들이 나타났다. 신(新)한류 전성기가 온 것이다. 특히 방탄소년단 공연은 팝스타급 월드투어였다.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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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함과 실력으로 이미지 전환시켜

이것이 구(舊)월드스타 비와 대비됐고, 사람들이 비를 조롱하러 《깡》 뮤직비디오로 몰려가기 시작했다. 《깡》이 표적이 된 것은 인상적인 비디오 콘텐츠이면서, 노래 가사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과시적인 내용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비는 놀라운 퍼포먼스를 과격하게 선보였는데 이것 역시 과시로 받아들여져 조롱 열기에 기름을 끼얹었다. ‘1일1깡’ ‘1일3깡’ 등 중독 증상과 더불어 ‘깡’ 재현 영상, ‘깡’ 챌린지, ‘깡’ 리액션 영상이 나타나고 ‘깡’을 즐기는 대중이 ‘깡팸’이라고 스스로를 규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조롱 밈이 크게 번지자 통계청 관계자까지 무분별하게 가세한 것이다. 그런데 이토록 대중이 ‘깡’에 몰입하는 사이에 점점 더 비가 친근해지는 경향이 나타났다.

그때 유산슬 신드롬을 만들었던 《놀면 뭐하니》가 비를 출연시켰다. 유재석은 비 앞에서 ‘깡’을 언급하길 조심스러워했지만 비는 자기도 ‘1일3깡’을 하고 있다며 쿨하게 말했다. 김태희도 ‘깡’ 현상을 좋아한다고 언급했다. 인터넷에서 비를 조롱하는 콘텐츠로 유통되는 비에 대한 건의사항 ‘시무 20조’를 스스로 언급하며 일부는 받아들이겠다고도 했다. 이 쿨한 ‘대인배’적인 태도가 한순간에 비의 이미지를 호감으로 반전시켰다.

비의 실력도 이미지 반전에 영향을 미쳤다. 비는 《놀면 뭐하니》에서 자신의 히트곡들과 다른 1990년대 히트곡들의 안무까지 쉼 없이 보여줬다. 그야말로 최고의 퍼포먼스였다. 사람들은 비의 열정과 실력을 이제야 다시 인식하게 됐다. 활동을 쉬고 있는 시기인데도 비의 자기관리는 한 점 흐트러짐이 없었다. 비의 실력이 노력의 결과라는 점이 새삼 느껴졌다.

과거 비가 이룬 성공도 자신의 땀방울로 한 계단 한 계단 걸어 올라가 성취한 것이었다. 이걸 간과하고 사람들은 비를 보면 허세, 거짓, 과대포장만을 떠올렸다. 그래서 《깡》과 같은 놀라운 퍼포먼스를 보면서도 비웃기에만 바빴다. 《놀면 뭐하니》에서 보인 비의 실력과 땀이 그의 진면목을 뒤늦게 인식시켰다. 그래서 조롱이 ‘리스펙’으로 변했다. 가짜, 허세, 포장 이미지가 진짜, 노력, 실력 이미지로 바뀐 것이다.

김영철의 ‘4딸라’, 김응수의 ‘타짜’ 곽철용, 양준일 인기 등이 모두 인터넷 밈 현상이 신드롬으로 발전한 사례들이다. 과거 콘텐츠라도 언제든 대중이 밈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그때 당사자가 준비만 돼 있다면 트렌드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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