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그 많던 원유는 다 어디로 갔을까
  • 김동환 대안금융경제연구소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5.27 16:00
  • 호수 159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코로나19가 아직도 전 세계를 괴롭히고 있다. 하지만 금융시장은 코로나19 이전 가격의 회복을 시도하고 있거나 이미 넘어섰다. 경제와 자산 가격의 괴리 현상이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여러 가지 자산 가격 중에 이번 코로나 위기에 가장 취약한 것은 단연 국제유가다. 전 세계가 국경을 닫아걸었고 대다수 사업장이 폐쇄되면서 석유 수요가 급감했다. 코로나19가 완화돼 경제적 활동이 정상화되기까지 글로벌 저유가는 기정사실처럼 보였다.

국제유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에 따른 수요 위축 우려로 4월20일 장중 한때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기준으로 배럴당 15달러 밑으로 내려 약 21년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뉴욕상업거래소에서 WTI 5월물 가격은 이날 오전(이하 한국시간) 약세를 이어가다 10시 9분께 배럴당 14.47달러까지 내렸다. 이는 1999년 3월 이후 20년 11개월 만의 최저 수준이다. 4월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연합인포맥스에 설치된 스크린에 서부 텍사스산 원유 가격이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국제유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에 따른 수요 위축 우려로 4월20일 장중 한때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기준으로 배럴당 15달러 밑으로 내려 약 21년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뉴욕상업거래소에서 WTI 5월물 가격은 이날 오전(이하 한국시간) 약세를 이어가다 10시 9분께 배럴당 14.47달러까지 내렸다. 이는 1999년 3월 이후 20년 11개월 만의 최저 수준이다. 4월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연합인포맥스에 설치된 스크린에 서부 텍사스산 원유 가격이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급기야 지난달 미국 선물시장에서 거래되는 국제유가 선물 가격이 종가 기준으로 사상 처음 배럴당 마이너스 37달러까지 폭락했다. 원유의 특성상 생산을 갑자기 줄일 수 없는 데다 대다수 나라, 특히 미국의 석유 비축 시설이 동이 나서 더 이상 보관할 곳이 없다는 게 국제유가의 비이성적 하락세의 가장 큰 이유였다. 바꿔 얘기하자면 석유를 운반하고 보관하는 비용이 석유의 효용보다 배럴당 37달러씩 더 들어간다고 봤던 것이다.

필자가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5월20일) 국제유가는 배럴당 33달러를 넘어가고 있다. 꼭 한 달 만에 마이너스 37달러가 플러스 33달러로 올랐으니 정말 저점에 국제유가 선물을 산 사람은 배럴당 70달러씩 수익이 났을 것이고, 선물 거래의 특징상 비교적 큰 레버리지를 썼을 것을 감안하면 그 수익률은 감히 계산하기도 힘들다. 반대로 당시에 비축 시설 부족이라는 소식에 놀라 국제유가 선물을 매도한 사람은 막대한 손실을 입고 회복 불가의 상황에 처해 있을 것이다. 물론 지난 한 달 동안 글로벌 팬데믹이 다소 완화됐고, 미국을 비롯한 서유럽 국가들의 부분적인 경제활동 재개가 원유 수요를 어느 정도 회복시킨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한 달 만의 배럴당 70달러 폭등을 설명할 수는 없다. 없다던 석유 저장 시설이 갑자기 생긴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럼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우리가 매일 접하게 되는 국제유가는 사실 선물이라는 투자상품의 거래 가격이다. 그것도 매달 만기가 돌아오는 기한이 정해진 파생상품의 가격이다. 이 파생금융상품을 사고팔면서 이익을 챙기려는 투기적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시장이라는 뜻이다.

금융상품의 거래 가격은 공포와 탐욕 사이에서 결정된다. 극도의 공포가 장악한 시장에서는 비정상적인 가격 하락에도 매도에 나서게 되고, 반대로 극도의 탐욕이 지배하는 시장에서는 비이성적인 가격 상승에도 매수에 나서게 된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번 유가의 급등락을 보면서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을 알리고 분석하는 언론의 태도다. 물론 열독률과 시청률이 중요하지만 돌이켜보면 많은 신문과 방송이 마이너스 유가를 하나의 추세가 될 것처럼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쏟아냈다. 글로벌 경제의 비관론이 그 방증이었다. 비단 유가뿐만이 아니다. 지난 3월 중순 폭락하는 주가를 전하며 글로벌 금융위기나 IMF 외환위기 시절의 시장 붕괴를 연상케 하는 기사와 보도가 차고 넘쳤다.

과도하게 쏠려서 균형을 잃거나 왜곡될 우려가 있는 정보를 우리는 소음이라고 한다. 이 소음은 단순히 우리의 귀를 성가시게 하는 정도를 넘어 국가와 기업 그리고 개인의 의사 결정에 심대한 악영향을 준다. 물론 정보와 소음을 가려낼 최종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다만 우리가 겪은 경제적 위기의 이면에는 항상 왜곡된 정보 유통과 잘못된 의사 결정이 있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경제는 결국 먹고사는 문제다. 여타의 사건·사고에 대한 뉴스와 다르다. 그래서 한 번 더 돌아보게 된다. 모쪼록 함의를 갖춘 정보가 의도를 가진 소음을 압도하기를 소망한다. 유튜브와 팟캐스트를 통해 경제문제를 다루고 있는 필자 스스로를 경계하는 말이기도 하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