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자살 리포트] “포스트 코로나 시대 진짜 문제는 자살률”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20.05.25 10:00
  • 호수 1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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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기선완 한국자살예방협회 회장 “은퇴 후 자존감 떨어진 중년男 자살로 내몰려”

“자살은 여러 사회문제의 최종 결과일 뿐이다.”

기선완 한국자살예방협회 회장(가톨릭관동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에게 “우리나라에서 자살 문제가 심각한 이유가 뭐냐”고 묻자 이 같은 답이 돌아왔다. 자살이라는 결과를 살펴보려면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두루 짚어봐야 한다는 얘기다. 기 회장은 “사회의 모순과 문제점들이 해결되지 않다 보니 자살률도 내려가지 않고 있다”며 “정부가 자살 문제를 잘 파악하고 해결할 수 있다면 국가 발전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 회장은 코로나19가 확산한 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살률이 급등할 수 있다며, 그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기 회장은 “코로나19 초기에는 사회적 거리 두기 때문에 대인 갈등이 줄어 충동적 자살률은 감소할 수 있다”며 “그러나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 개인적 불안과 사회적 대혼란이 겹치면서 자살률이 크게 올라갈 가능성도 있다”고 진단했다. 5월15일 서울 중구 한국자살예방협회 사무소에서 기 회장을 만나 한국의 자살 문제와 해법을 짚었다.

ⓒ시사저널 임준선
ⓒ시사저널 임준선

“갈수록 빨라지는 성장 속도, 취약계층에겐 독”

한국의 자살 문제, 왜 뿌리 뽑지 못하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자살과 관련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다. 자살은 여러 사회문제의 최종 결과일 뿐이다. 자살률을 낮추려면 자살의 연결고리를 끊어줘야 한다. 그래서 자살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예를 들어보자. 자살하는 인구의 대부분이 노인이다. 그런데 노인은 왜 자살할까. 빈곤 문제와 독거노인 문제, 여기에 만성질환까지 겹치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다. 중년 남성들은 사회적인 관계가 오로지 일과 관련된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은퇴 후 자존감이 떨어진다. 그래서 성인 남성의 자살률이 여성보다 더 높은 것이다. 이렇게 자살도 연령별, 성별에 따라 원인이 다르다.”

노인 자살 문제를 짚었다. 이 역시 쉽게 해결되지 않는 모양새다.

“우리 사회의 가장 약한 연결고리가 소외된 노인이다. 그래도 최근 노인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특히 맹독성 농약인 그라목손(Gramoxone) 생산과 판매를 중단한 것은 정말 잘한 결정이다. 다만 자살 수단을 관리하는 것 외에 다른 것들은 한 게 없다.”

청소년 자살 문제도 심각한데.

“최근 10대 자살도 문제지만 10대의 자해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핵가족이 늘어나면서 부모의 과잉보호는 늘고 형제는 줄어들었다. 그렇다 보니 욕구가 충족되지 않는 상황에 맞닿으면 반응도 그만큼 빠르고 격해졌다. 결국 생명을 존중하는 문화적인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해졌다. 청소년 우울증에 대한 치료 접근성도 높여야 하는데, 아직 부족한 면이 있다.”

남학생보다 여학생의 자살 시도가 더 늘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보다 약물남용이 적은 편이다. 통상 약물남용이 많은 국가에서는 남학생이 더 많이 (자살을) 시도한다. 여학생의 경우 ‘무리 문화’의 영향을 받는다. 또래 간 외모를 비교하거나, 특정 무리에서 소외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자신이 좋아했던 연예인의 영향도 많이 받는다. 모방 자살 영향도 크다.”

노인 빈곤이나 핵가족화 문제는 우리나라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왜 타국에 비해 한국의 자살률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인가.

“우리나라의 압축 성장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다른 나라에 비해) 굉장히 빠른 속도로 경제 성장을 이루지 않았나. 그런 만큼 경쟁도 과열됐다. 사회 구성원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커진 것이다. 특히 빠른 성장 속도를 쫓아가는 사람과 쫓아가지 못하는 사람의 격차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이 취약계층을 괴롭게 만들고 있다.”

 

“자살 문제 해결하면 발전 기회…’코로나 블루’ 대비해야”

정부의 자살 예방 정책 방향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과거에 비해 나아졌다. 자살 유가족을 돕는 심리부검센터도 생기지 않았나. 물론 막 시작하는 단계로 더 광범위하고 적극적인 자살 정책이 필요하다. 다만 앞서 말한 ‘큰 덩이’의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쉽지는 않겠지만, 이 (자살) 문제를 잘 천착하면 우리나라 사회의 모순이나 문제점을 알 수 있다. 자살 문제를 잘 해결하고 파악해 낼 수 있다면 국가 발전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자살은 예방 가능한 문제인가.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 자살은 한 개인의 정신건강만의 문제가 아니다. 자살을 부른 사회공동체가 함께 책임져야 할 문제다.”

자살 예방 정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면.

“과거 핀란드는 소련이 망하면서 경제가 어려워지자 자살률이 올라갔다. 핀란드는 1987년부터 자살 사망자 전부를 심리 부검했다. ‘왜 자살했는가’를 정부가 대대적으로 살피고 대응책을 마련한 것이다. 그러자 자살률이 크게 떨어졌다. 핀란드 정부가 내세운 원칙은 7가지였다. △자살 시도자 지원과 치료 △심각한 우울증 치료 개선 △알코올 중독 문제 예방 △만성신체질환자 치료 지원 △인생 주기별 위기 지원 △젊은 사회 부적응자 지원 △신뢰와 열정이 바탕이 되는 사회 분위기 조성 등이었다. 여기에 힌트가 있지 않을까.”

최근 코로나19 확산으로 우울감을 호소하는 이도 많아졌다.

“심각한 문제다. 코로나19 초기에는 사회적 거리 두기로 대인 스트레스 등이 줄어들면서 충동 자살 등이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 문제가 달라진다. 되레 자살률이 크게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길어지면 경제위기에 봉착하는 중산층이 늘어날 것이고 ‘아노미’(사회적·개인적 불안정 상태) 현상이 생길 수 있다. 독거노인이나 장애인 등 취약계층이 도움의 손길을 얻기 어려워진다. 곧 눈앞에 닥칠 문제다. 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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