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약금 우습게 보면 큰코다친다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0.05.27 10:00
  • 호수 1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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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약금 걸고 변심하면 계약금만큼 돌려줘야

내 조건과 상황에 딱 맞고 마음에도 쏙 드는 집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다. 특히 처음 집을 구할 때 그렇다. 가진 돈은 적고, 대출도 많이 나오지 않으니 인생에서 가장 비싼 쇼핑을 하는데도 서러움이 커지기만 한다. 발품을 팔고 팔다 마음에 드는 집을 찾게 되면 생각보다 가격은 비싸기 마련이다. 공인중개사는 바로 계약하지 않으면 금방 다른 사람이 채갈 것이라며 일단 ‘가계약금’이라도 걸라고 독촉한다. 미리 ‘찜’을 하라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A씨는 1억원짜리 집에 대한 가계약금 500만원을 먼저 집주인에게 송금했다. 계약금 1000만원에 대한 잔금은 주말에 만나 치르기로 했다. 주말에 계약서를 쓰고 구체적인 계약 내용을 확정하기로 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더 좋은 조건의 집이 매물로 나왔다. 너무 성급하게 결정한 것 같아 후회가 됐다.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계약을 없던 일로 하자고 하면서 가계약금을 돌려 달라고 했다. 이 경우 가계약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까?

집주인도 계약 해지시 계약금 2배 배상해야

가계약금은 정확한 법률 용어는 아니다. 가계약금의 가(假)는 ‘임시’라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가계약이란 정식 계약 체결 전에 우선적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체결하는 경우를 뜻하는데, 가계약도 본계약의 일부다. 가계약도 계약이란 얘기다. 계약서를 쓰지 않았더라도 마찬가지다. 몇몇 예외적인 경우 이외에는 마음대로 취소하거나 해지할 수 없다. 구두 계약도 계약이다. 입증하기가 힘들 뿐 마음대로 없던 것으로 하기 어렵다.

가계약금 반환을 다투려면 우선적으로 가계약이 제대로 성립됐는지부터 살펴봐야 한다. 계약이 불성립된 경우라면 지급한 가계약금을 돌려 달라고 할 수 있다. 계약은 거래를 하고자 하는 사람이 그 거래조건을 기재한 의사표시(청약)를 하고 상대방이 조건을 수락하면 성립한다. 즉 청약은 계약을 결정할 수 있는 정도의 핵심 내용을 포함해야 한다. 한마디로 가계약의 효력은 곧 계약이 성립할 만큼 구체적·확정적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볼 수 있는지에 따라 성립 여부가 판가름 난다.

부동산 매매계약에서 중요한 내용은 매매 목적물이 무엇인지, 매매대금은 얼마인지, 대금 지급 방법·일시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이다. 이런 내용이 포함된 가계약이라면 계약은 성립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예를 들어 가계약서 작성 당시 혹은 구두로 가계약할 때 집과 매매대금 등이 특정되고 중도금 지급 방법에 대한 합의가 있었으면 그 가계약에 잔금 지급 시기가 기재되지 않았더라도 매매계약은 성립된 것으로 본다. 정식 계약서가 작성되지 않았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이런 이유로 A씨는 가계약금을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여기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A씨는 가계약금으로 500만원을 지급했지만, 계약금 총액은 1000만원으로 약정한 상황이다. 민법상 계약금은 별도의 약정이 없는 한 해약금으로 추정되는데(민법 제565조), 매수인(A씨)이 계약 해지를 하려면 ‘계약금’을 포기해야만 한다. 기준점이 ‘가계약금’이 아닌 ‘계약금’이 되는 것이다. A씨는 500만원을 더 내고 총 1000만원의 계약금을 포기해야만 계약을 해지할 수 있게 된다.

정반대의 상황은 어떨까. A씨가 가계약금을 걸었는데, 그사이 집값이 너무 뛰어 더 좋은 조건으로 집을 사겠다는 매수인이 나타나 집주인인 B씨는 A씨와의 계약을 해지하고 싶다. 이 경우도 민법 565조가 규정하고 있다. 집주인이 일방적으로 매매계약을 취소하려면 계약금의 배액(2배)을 제공해야만 한다. 즉 B씨는 A씨에게 계약금 1000만원에 대한 2배인 2000만원을 지급해야 하는 것이다. 별도의 조항을 넣지 않았다면 배액의 기준은 가계약금이 아닌 계약금이다.

다만 이 경우도 계약의 효력이 성립할 만큼의 구체적·확정적 내용이 가계약에 포함돼 있어야만 한다. 가령 1억원짜리 집을 사려고 하는데 가계약금을 10만원만 걸었다면, 이는 통상적으로 매수인이 이 집을 사려는 강력한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 가계약금이 전체 매매가격의 3~5%에 한참 밑도는 규모라면 그 계약을 유효하게 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론적으로 매도인과 매수인 모두 무턱대고 가계약금을 지급하거나 받는 것은 차후 문제를 키울 수 있는 만큼 좀 더 신중한 자세가 필요하다. 매수인은 부동산의 구체적 사양과 상태를 확인하기도 전에 가계약금을 지급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특히 매도인이 아닌 공인중개사 계좌로 지급하는 것은 결코 해서는 안 될 행동이다. 급박한 사정으로 가계약금을 지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상대방에게 양해를 구하고 대화를 녹음해 두면 좋다. 매도인도 가계약금을 함부로 받지 않겠다는 뜻을 공인중개사에게 분명히 밝히고 이를 녹음해 두는 것이 골치 아픈 일을 피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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