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데까지 간다?’…대형 건설사들 민낯 드러낸 반포3주구
  • 길해성 시사저널e. 기자 (gil@sisajournal-e.com)
  • 승인 2020.06.03 14:00
  • 호수 1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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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사 선정 앞두고 비방·불법·고소 난무…한남3구역 재개발에도 악영향 우려

강남의 한 재건축 단지 시공사 선정을 앞두고 국내 대형 건설사들의 민낯이 여실히 드러났다. 강남에서도 알짜로 불리는 서울 서초구 반포동 ‘반포주공1단지 3주구’(반포3주구) 재건축 사업장 얘기다. 반포3주구는 사업비만 8087억원에 달하는 만큼 수주 가뭄에 시달리던 건설업계의 관심을 받아왔다. 무엇보다 반포의 중심에 위치한 만큼 브랜드 홍보 효과가 적지 않을 것으로 건설사들은 기대해 왔다.

입찰에 참여한 업체는 시공능력평가 1위와 5위인 삼성물산과 대우건설이다. 하지만 수주가 진행되며 양측은 적지 않은 잡음을 냈다. 삼성물산은 현재 스타조합장 한모씨를 앞세워 대우건설을 비방하는 등 대리 홍보를 펼쳤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한씨가 반포3주구 조합원에게 ‘반포3주구 시공사로 대우건설이 돼선 안 된다’는 취지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는데, 결국은 삼성물산과 공모했다는 것이 대우건설의 주장이다. 대우건설은 최근 삼성물산과 한씨를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시사저널 최준필
ⓒ시사저널 최준필

삼성물산과 대우건설 간 진흙탕 싸움 우려

삼성물산은 조합원들에게 홍보물을 우편으로 보내는 과정에서도 ‘꼼수’가 적발돼 눈총을 받았다. 조합은 두 회사의 우편물에 넣을 홍보물을 3개로 제한했지만 삼성물산이 6개 홍보물을 발송하려다 들통난 것이다. 특히 삼성물산의 홍보물 중에는 신반포15차 재건축 해지총회 책자가 들어 있어 논란이 됐다. 신반포15차에서 시공사였던 대우건설은 공사비 등의 문제로 시공사 지위를 해지당한 바 있다. 결국 대우건설의 강력한 항의로 삼성물산 직원 10여 명이 그 자리에서 우편물을 재포장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대우건설을 향한 시선도 곱지만은 않다. 대우건설은 OS요원(외주 홍보직원) 활동으로 빈축을 샀다. 100여 명의 OS요원을 통해 불법 홍보활동을 진행해 지자체로부터 경고조치를 받은 것이다. 홍보대행사를 동원해 일부 언론사에 30만~100만원의 협찬 조건으로 시공사 선정에 유리한 기사를 청탁한 사실도 알려져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아울러 일부 OS요원이 조합원들만 있는 카카오톡 단체채팅방에서 조합원 행세를 하며 삼성물산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는 의혹이 제기돼 곤욕을 치렀다.

두 건설사의 진흙탕 싸움이 우려되는 가장 큰 이유는 반포3주구가 서울시가 지정한 ‘서울시 클린 수주 시범사업장 1호’이기 때문이다. 정해진 기간까지는 조합원 개별 홍보, 허위과장, 부정행위 등이 제한된다. 서울시와 서초구, 조합이 전 과정에서 협력해 공정하고 투명한 ‘클린 사업장’ 모범사례를 만들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양사가 버젓이 상호 비방과 불법 홍보를 멈추지 않으면서 반포3주구를 클린 사업장으로 만들겠다던 서울시의 목표도 수포로 돌아간 모습이다. 업계에선 두 건설사의 과열 경쟁이 향후 진행될 정비사업 수주전에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며 우려감을 나타내고 있다.

그럼에도 두 건설사가 비방·불법 홍보를 멈추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반포3주구 사업장이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어서다. 5년 만에 도시정비사업 시장에 뛰어든 삼성물산은 반포3주구를 통해 ‘반포 재건축 강자’ 타이틀을 되찾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만약 이번 수주에 실패할 경우 ‘강남에서 래미안이 한물갔다’는 오명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대우건설 역시 수주에 성공하면 강남권 입지를 확고히 함은 물론 향후 다른 수주전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 이는 수수 실적 개선으로 이어져 매각을 위한 기업 가치 제고에도 도움이 될 전망이다.

이 때문에 두 건설사의 최고경영자(CEO)들 역시 수주전 지원에 팔을 걷어붙였다. 지난 5월19일 열린 반포3주구 시공사 1차 합동설명회에 김형 대우건설 사장과 이영호 삼성물산 건설부문 사장이 참석했을 정도다. 통상 시공사 선정 총회(2차 설명회)에 사장들이 참석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1차 설명회에 등장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대우건설의 경우 대주주인 산업은행 자회사 KDB인베스트먼트의 이대현 대표까지 홍보 영상에 출연시켰다. 삼성물산 못지않은 든든한 대주주가 있다는 것을 피력하기 위해서였다.

반포3주구 반포아파트 재건축 사업을 위한 홍보관. 왼쪽부터 삼성물산·대우건설 ⓒ시사저널 최준필
반포3주구 반포아파트 재건축 사업을 위한 홍보관. 왼쪽부터 삼성물산·대우건설 ⓒ시사저널 최준필

CEO들까지 나서 반포3주구 지원사격

두 회사의 신경전은 홍보관에서도 이어졌다. 삼성물산과 대우건설은 지난 5월20일부터 홍보관을 열고, 본격적인 조합원 표심 잡기에 나섰다. 두 홍보관 규모는 150㎡로 종래 타 정비사업 홍보관에 비해 큰 규모다. 하지만 서로 크고 화려하게 짓기 위해 관할 자치구에 가설건축물 축조 허가를 위한 신고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서초구청이 공동주택관리법 위반으로 원상복구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두 회사는 원상복구 없이 홍보관을 열어 논란을 불렀다.

전문가들은 건설사들의 ‘계약만 따고 보자’식 과열 경쟁이 사업 지연은 물론 조합원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정부의 규제로 정비사업 규모가 줄어들면서 당분간 수익성이 높은 사업은 보기 힘들 수 있다”며 “남은 사업장에서 수주를 따내기 위한 건설사들의 과열 경쟁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건설사들의 절박한 심정은 이해하지만 무리한 소송이나 각종 불법행위는 사업에 차질을 줄 수 있고, 조합원들의 알 권리는 물론 공정한 선택권을 방해할 수 있다”고 우려감을 나타냈다.

업계에서는 반포3주구에서 일어난 과열 경쟁 여파가 다음 달 시공사 선정을 앞둔 용산구 ‘한남3구역’ 재개발 사업장에도 번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한남3주구의 과열 경쟁은 시공사 선정일이 다가올수록 더욱 심해질 것”이라며 “서울시나 관할 구청에서 사건이 벌어지고 조사에 들어갈 게 아니라 처음부터 클린 수주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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