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향 논란, 조국 이슈보다 무거운 이유 [배종찬의 민심풍향계]
  •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6.02 08:00
  • 호수 1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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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조국 사태’보다 여권 지지층의 부정적 기류 확산 속도 빨라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당선인이 정국의 한복판에 서 있다. 정의기억연대(정의연)와 그 전신인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의 기부금과 지원금 회계 착오가 논란의 출발이었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실존 인물인 이용수 할머니는 5월7일 첫 기자회견을 통해 정의연의 시민 기부금과 정부 지원금이 할머니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고, 윤 당선인이 국회에 진출한 데 대해 배신감을 토로했다.

윤 당선인은 지난 30년 동안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시민운동을 해 온 대표적인 인물이다. 더불어시민당에서 윤 당선인을 비례대표 후보로 공천한 이유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봉사하고 활동해 온 지난 시절에 대한 기여를 인정해서였다. 그러나 이용수 할머니는 5월25일 2차 기자회견을 통해 윤 당선인의 그동안 활동이 부적절했다며 감정에 북받쳐 소회를 토해 냈다. 정신대와 위안부가 다르고 심미자 할머니와 김복동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들이 윤 당선인의 사리사욕에 이용당했다고 주장했다. 무엇이 진실일까. 

윤 당선인과 관련된 의혹은 ‘돈’과 ‘도덕성’이다. 모든 것이 단지 의혹일 뿐이라면 윤 당선인은 공연한 압박과 오해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국민 여론은 삽시간에 나빠졌다. 의혹이 불거진 시점이 지난 5월7일인데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국민 다수는 윤 당선인의 사퇴를 바라고 있다. 심지어 ‘지지층’ ‘중도층’ ‘속도’로 본다면 지난해 정치판을 뜨겁게 달구었던 조국 전 장관 이슈보다 더 무거워 보인다.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당선인 ⓒ시사저널 박은숙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당선인 ⓒ시사저널 박은숙

與 핵심 지지층 30대·호남 “윤미향 사퇴해야”  

윤 당선인 이슈가 매우 폭발성이 큰 첫 번째 이유는 ‘지지층’이다. 총선에서 압승한 민주당은 자신감에 차 있다. 패배 수습과 비대위 출범으로 어수선한 미래통합당과 확연한 차이다. “국회 상임위원장 18석을 모두 가질 수도 있다”는 민주당 지도부 발언이 괜한 엄포용으로만 들리지 않는다. 그런데 총선 직후 불거진 주요 인물들의 논란은 지지층을 흔들고 있다. 물론 당장 선거를 앞둔 시점은 아니기 때문에 치명적이지 않다고 생각할지라도 결코 간단하지가 않다. 보수정당의 선거 참패가 한순간에 찾아오지 않은 것처럼 지지층의 이탈 역시 하루아침에 발생하지 않는다.

총선 직후 오거돈 전 부산시장은 여직원을 강제 성추행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중이다. 지탄을 받아 마땅한 혐의로 임기를 절반도 채우지 못하고 사퇴한 책임이 가볍지 않다. 양정숙 당선인은 아직 시시비비를 가리는 중이지만 차명 부동산 거래 혐의로 더불어시민당에서 제명당했다. 윤 당선인 논란은 오 전 시장과 양 당선인 논란보다 파장이 훨씬 더 크다.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의 의뢰를 받아 이용수 할머니의 2차 기자회견 다음 날인 5월26일 실시한 조사(자세한 개요는 그래프에 표시)에서 ‘윤미향 당선인 사퇴 여부’를 물어본 결과, 사퇴해야 한다는 의견이 10명 중 7명이나 된다.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의 핵심 지지층인 30대에선 전체 의견보다 더 높을 정도다. 30대에서 ‘사퇴해야 한다’는 75.1%, ‘사퇴할 필요가 없다’는 15.5%로 나타났다(그림①). 지난해 조국 전 장관 거취에 대해서도 핵심 지지층에서 이처럼 사퇴 요구가 높게 나온 적은 없었다. 민주당 지도부에서 윤 당선인과 관련한 논란에 대해 ‘사실 규명’을 강조하지만 핵심 지지층에선 ‘기대’를 찾아보기 어려운 모양새다.

30대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문 대통령과 민주당의 핵심 지지층은 ‘호남’이다. 호남은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의 확고한 텃밭으로 다시 돌아왔다. 4년 전인 2016년 총선에서 한때 맹주 자리를 국민의당에 내줬으나, 지난 2017년 대통령선거부터 호남은 대통령의 핵심 지역 기반으로 어떤 이슈에도 요지부동이다. 지난해 조 전 장관 사퇴 논란에 흔들릴 때도 호남 지역만큼은 강력한 우군이 되어 주었다. 그런데 윤 당선인에 대한 여론은 전혀 다르다. 아직 윤 당선인과 정의연의 구체적인 해명이 5월27일 현재까지 나오지 않았지만, 부정적인 기류가 역력하다. 윤 당선인의 사퇴 여부를 물어본 결과 ‘사퇴해야 한다’는 응답이 55.8%로 절반을 넘었다(그림②). 대통령과 여당의 핵심 지역 기반인 호남이지만 윤 당선인의 손을 들어주지는 않는다.

‘조국’ 때 고심하던 중도층, 이번엔 즉각 반응  

윤미향 당선인 논란을 조국 전 장관 이슈보다 무겁게 보는 두 번째 이유는 ‘중도층’ 때문이다. 지난해 조 전 장관이 청와대 민정수석을 거쳐 법무장관으로 임명되는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국민이 중도층이었다. 왜냐하면 조국 이슈는 철저하게 진영 간 대결 구도로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조국 수호’를 외치는 지지층들은 서초동 검찰청사 앞으로 몰려가 조 전 장관이 부당하게 수사받고 있음을 강조했다. 반면에 ‘조국 사퇴’를 부르짖는 보수층들은 광화문에 모여 ‘윤석열 검찰’에 힘을 실었다.

그런데 윤 당선인 논란은 조 전 장관 이슈와 뚜렷하게 차이가 있다. 논란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중도층은 윤 당선인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리얼미터 조사에서 중도층은 10명 중 7명 정도가 ‘사퇴해야’ 한다는 의견이다(그림③). 조 전 장관에 대해선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던 중도층이지만 윤 당선인에 대해선 논란이 부각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부터 부정적 의견이 매우 많은 것이다.

윤 당선인 논란이 매우 무겁게 다가오는 또 하나의 이유는 ‘속도’ 때문이다. 지난해 국민 여론을 양분한 조국 이슈는 3개월 이상의 논란이었다. 그만큼 양 진영이 철저하게 결집한 이슈였고, 대통령의 고심은 깊고 길었다. 중도층이 이탈하는 데만 3~4개월의 시간이 지나야 했다. 그렇지만 윤 당선인과 관련한 논란은 보름여 만에 여론이 이미 부정적으로 흘러가고 있다. 물론 윤 당선인과 정의연이 어떤 해명을 내놓느냐에 따라 향후 여론은 또 바뀔 수 있다.

하지만 제대로 인사 검증을 못한 채 비례대표 공천을 주었고, 여론이 들끓는 속도에 비해 신속하게 조치하지 못한 당의 책임은 오랫동안 남게 된다. 특히 중도층의 이탈은 무섭다. 민주당이 윤 당선인 논란 관련 여론의 추이를 더 살펴보는 여유를 부리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높은 대통령 지지율과 견고한 정당 지지율로 이 논란이 큰 타격을 주지 못할 것이라는 자신감 때문이다. 그렇지만 윤 당선인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는 ‘속도’를 본다면 우려되는 대목이다.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여당의 경쟁자인 통합당은 김종인 카드를 빼들었다. 보수정당의 체질 개선과 당선 가능한 대선후보를 육성하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총선에서 참패한 정당의 변신이다. 선거에선 대승을 거두었지만 민주당의 최근 모습은 지지율에 부정적이다. 윤 당선인 논란 해결의 열쇠는 민주당이 쥐고 있다. 게다가 논란에 대한 국민 여론은 이미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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