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권 공원’에 목마른 부산 시민 갈증 해결될까 [김지나의 문화로 도시읽기]
  • 김지나 도시문화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5.29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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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0만 인구 도시에 부산시민공원 단 하나 뿐
‘100만 평 공원 운동’ 속도 더뎌

부산은 공원이 부족한 도시다. 2018년 기준으로, 인구 1000명당 도시공원 면적이 광역지자체 중에서 뒤에서 세 번째였다. 바다를 끼고 있는 우리나라 최대 항구도시란 명성 이면에, 열악한 녹색 복지의 현실이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했을 때, 서울에 있는 공원들을 일부러 찾아다닌 적이 있다. 특별히 공원에 대한 학문적인 호기심이나 탐구심 같은 게 있어서는 아니었다. 아직은 서울의 이방인이었던 필자에게 푸르게 펼쳐져 있는 공원들은 생경하면서도 매력적인 풍경이었다. 그만큼 ‘공원’이란 장소는 부산에서 경험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문화나 다름없었다.

부산시민공원 전경. 2006년까지 하야리아 미군기지로 사용되다 공원으로 조성된 부산의 유일한 대형 도심공원이다.ⓒ부산시설공단 제공
부산시민공원 전경. 2006년까지 하야리아 미군기지로 사용되다 공원으로 조성된 부산의 유일한 대형 도심공원이다.ⓒ부산시설공단 제공

부산시민공원 100년 만에 돌아왔지만…

실제로 부산에서는 2014년 개장한 부산시민공원을 제외하면 대규모 녹지공간을 찾기 어렵다. 산지가 많은 지형 탓이다. 도심 한복판의 너른 평지는 오랜 세월 외국 군대가 점유해버렸다. 다행스럽게도, 부산시민공원은 미군이 떠난 자리가 소중한 그린 스페이스로 남게 된 사례다. 잘 알려져 있듯 부산시민공원은 하야리아부대가 주둔했던 미군기지였고, 그 이전에는 일본이 경마장과 군사기지로 사용했었다. 부산시민들이 부지 반환을 위해 수년간 애를 쓴 결과, 약 100년 만에 시민의 품으로 무사히 돌아온 것이다.

부산시는 이곳 전체를 공원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미군이 철수하기도 전에 ‘근린공원’으로 결정 고시를 했다. 이 정도 규모의 공원을 도심에 만들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본 것이다. 세계적인 조경가 제임스 코너에게 설계를 맡긴 것도 그만큼 ‘잘 만들어야 한다’는 의지가 반영된 결정으로 보인다.

하지만 도심 공원에 대한 부산 시민들의 갈증은 아직 충족되지 않았다. 인구 340만 이상의 거대한 대도시가 부산시민공원 하나로 만족 될 리가 없었다. 그리고 이런 녹색의 완충지는 도시가 발전할수록 더 필요해지는 법이다.

강서구의 ‘둔치도’란 작은 섬에서는 2000년대 초반부터 공원 만들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일명 ‘100만 평 공원 만들기 운동’이다. 부산에 녹지가 부족하다는 생각에서 시작됐지만, 무분별한 도시 개발을 경계하는 ‘녹색 저지선’을 긋는 일이기도 했다. 섬 바로 옆에는 ‘렛츠런 파크 부산 경남’이 들어섰고 신항, 산업단지 등 각종 개발 계획들이 착착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서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인접한 강동동 일대에 에코델타시티 조성이 한창이어서, 둔치도 주변은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그에 비해 섬 안은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상관이 없다는 듯, 고즈넉한 풍경이 펼쳐졌다. 이런 게 도시공원의 매력이다. 우리는 도시의 편리함을 쉽게 포기 못 하지만, 그만큼 자연을 그리워하면서 산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둔치도에 있는 한 무인카페는 화창한 봄 날씨를 즐기러 나온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다만 이 넓은 섬 부지를 두고 좁은 카페에 복작복작 모여있는 모양새가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2016년 3월, 일명 ‘국가도시공원법’이 통과되면서 대규모 도시공원을 조성할 때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대형공원을 만들고 유지하는 데는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 때문에 지자체가 감당하기 어려운 예산의 일부를 국가가 분담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 배경에는 100만 평 공원 만들기 운동을 펼치고 있는 부산 시민단체의 역할도 컸다. 덕분에 둔치도에 ‘국가도시공원’이 실현되는 것도 이제 시간 문제인 듯 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공원 만들기 운동이 펼쳐지고 있는 강서구의 둔치도. 대부분 논밭으로 이용되고 있다. ⓒ김지나
2000년대 초반부터 공원 만들기 운동이 펼쳐지고 있는 강서구의 둔치도. 대부분 논밭으로 이용되고 있다. ⓒ김지나

공원 조성 안 되고 논밭으로 머물고 있는 '둔치도'

이미 100만 평 공원 운동이 시작된 초반부터 시민들은 회비를 모으고 대출을 받아 둔치도 땅 일부를 사기도 했다. 그리고 공원으로 만들어달라고 부산시에 무상으로 기증했다. 또 자연환경국민신탁에 ‘자연환경자산’으로 맡겨, 함부로 개발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조치도 취했다. 하지만 어찌 된 상황인지 현재 둔치도의 대부분은 논밭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시민단체의 강력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토지 소유권 문제로 순탄치 않은 상황이었다.

2018년 발표된 부산발전연구원의 조사 결과에도 나타나듯이, 부산 시민들은 일상 속에서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생활권 공원’에 대한 목마름이 있다. 해안가 주변은 관광지와 상업 공간에 양보했고, 풍부한 산지는 주거지로 가득 찼다. 부산시민공원을 만들었을 때의 추진력이 왜 둔치도에서는 발휘되지 못하는 것일까. 시민과 전문가들의 목소리에 조금 더 귀 기울이는 부산시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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