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버린 미국…‘방화·약탈’ 유혈사태 전역으로 확산
  • 이혜영 객원기자 (applekroop@naver.com)
  • 승인 2020.06.01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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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개 도시로 시위 확산·15개주 방위군 소집…“52년만의 동시통금령”
총격 사건 잇따르며 최소 4명 사망·1600여 명 체포
트럼프, 시위대에 초강경대응 시사 “안티파 테러조직 지정”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소방관들이 30일(현지 시각)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에 항의하는 시위 도중 약탈과 방화를 당한 점포의 불을 끄고 있다. ⓒ 연합뉴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소방관들이 30일(현지 시각)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에 항의하는 시위 도중 약탈과 방화를 당한 점포의 불을 끄고 있다. ⓒ 연합뉴스

백인 경찰의 강압적 체포 과정에서 사망한 조지 플로이드 사건에 항의하는 폭력 시위가 미국 전역으로 번지고 있다. 미국 곳곳에서 방화와 약탈, 폭동이 일어났고 유혈 사태로 인한 사상자도 속출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시위 주도 세력을 '테러조직'으로 규정하며 초강경대응을 시사했다. 인종차별과 이념 대결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이번 사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출구를 찾지 못한 미국에 더 큰 혼란을 안길 전망이다. 

31일(현지 시각) AP통신과 CNN방송 등에 따르면, 조지 플로이드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는 미국 75개 도시로 번졌다. 대부분 평화적으로 진행됐지만 일각서 약탈과 방화를 동반한 충돌이 벌어졌다. 총격 사건까지 잇따르며 현재까지 최소 4명이 숨졌다. 체포된 시위대는 1600명을 넘었다. 폭력 시위가 확산하자 20여 개 도시는 야간 통행금지령을 발동했고, 수도 워싱턴DC와 캘리포니아주 등 15개 주(州)에 5000여 명의 주 방위군이 투입됐다.

뉴욕타임스(NYT)는 "전국의 많은 지방 행정당국이 동시에 통금령을 내린 것은 1968년 마틴 루서 킹 목사 암살 사건 이후 처음"이라고 보도했다. NYT는 "코로나19 봉쇄조치와 경제 둔화, 대규모 실직사태 이후 (미국인들이) 플로이드 사건과 관련해 불평등에 대한 고통을 분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위는 전날 워싱턴DC를 비롯해 서부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부터 동부의 뉴욕에 이르기까지 전국 주요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워싱턴DC에서는 시위대와 백악관을 지키는 비밀경호국(SS) 직원이 충돌했고, 백악관 외곽에 방위군이 배치됐다. 백악관 인근의 연방정부 건물인 보훈처는 시위대에 의해 손상됐고, 산산조각 난 유리창 파편이 인도를 뒤덮었다. 

미국의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의 가혹 행위로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27일(현지 시각) 시위대가 대형마트 타깃(Target) 매장에 난입해 망치로 금전 등록기를 부수고 물건을 약탈하고 있다. ⓒ 연합뉴스
미국의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의 가혹 행위로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27일(현지 시각) 시위대가 대형마트 타깃(Target) 매장에 난입해 망치로 금전 등록기를 부수고 물건을 약탈하고 있다. ⓒ 연합뉴스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시작한 약탈과 방화는 서부로도 번졌다. 시위대는 고급상점이 밀집한 LA 멜로즈·페어팩스 애비뉴와 베벌리 힐스 일대 상가를 약탈하고 불을 질렀다. 대형마트 체인 타깃(Target)은 시위대의 약탈이 잇따르자 미네소타 등 13개 주 175개 매장을 일시적으로 폐쇄했다.

뉴욕에서는 수천 명의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하면서 33명의 경찰관이 다치고 345명이 체포됐다. 월가와 뉴욕증권거래소가 위치한 로어맨해튼 지역에서는 상점 10여 곳이 약탈당했다. 플로리다주에서는 경찰관이 시위 현장에서 목에 칼을 찔려 병원으로 긴급 후송됐고,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에서는 시위 도중 총격 사건이 발생해 1명이 사망하고 3명이 다쳤다.

지난 26일 미니애폴리스에서 첫 항의시위가 발생한 뒤로 현재까지 모두 4명이 총격 사건 등으로 사망했다고 NYT는 전했다.

백인 우월주의를 상징해온 남부연합 기념물도 시위대의 공격 대상이 됐다. 남북전쟁 당시 옛 남부연합 수도였던 버지니아 리치먼드와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에서는 시위대가 남부연합 기념 동상 등을 훼손하고 "영혼의 대량학살" "반역자"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낙서를 남겼다.

시위가 악화일로를 걷자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 "(미국은) 안티파를 테러 조직으로 지정할 것"이라고 선포하며 강경대응을 예고했다. '안티파'는 극우 파시스트에 반대하는 극좌파를 가리키는 용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와 함께 "주 방위군이 지난밤 미니애폴리스에 도착하자마자 즉각적으로 한 훌륭한 일에 대해 축하를 전한다"며 "안티파가 이끄는 무정부주의자들이 신속하게 진압됐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민주당 인사가 이끄는 시와 주(州)들은 지난밤 미니애폴리스에서 이뤄진 급진좌파 무정부주의자들에 대한 완전한 진압을 살펴봐야 한다. 주 방위군은 훌륭한 일을 했다"며 다른 주들도 너무 늦기 전에 주 방위군을 투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이 소요 사태를 진정시키기는 커녕 이념대결 구도를 강화해 오히려 국론 분열을 심화시킨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앞서 지난 25일 미니애폴리스에서는 백인 경찰이 흑인 남성인 조지 플로이드의 목을 무릎으로 찍어눌러 플로이드를 사망케 한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플로이드는 비무장 상태였으며, '숨을 쉴 수 없다'고 경찰에 간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경찰이 플로이드를 강압적으로 제압하고 사망에 이르게 한 전 과정이 담긴 영상이 공개되면서 미국 사회는 들끓었고 분노한 시민들은 닷새 넘게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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