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눈물의 씨앗이 아니랍니다 [최보기의 책보기]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thebex@hanmail.net)
  • 승인 2020.06.01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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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도 발명이 되나요?》ㅣ김형민 지음ㅣ어마마마 펴냄ㅣ332쪽ㅣ1만5000원

청춘 시절 내가 꿈 꾸었던 사랑은 ‘운명 같은 사랑’이었다. 운명처럼 만나는 여인과 결혼을 할 것이라는 꿈이었다. 그러나 현실의 사랑은 소설처럼 드라마틱하지 않아 ‘도입,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의 과정이 막걸리처럼 흐릿했다. 나는 로미오가 아니었고, 아내는 줄리엣이 아니어서 그랬을까. 목숨까지 거는 사랑도 아무에게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아닌 듯하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을 필두로 《견우와 직녀》, 《낙랑공주와 호동왕자》,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 《춘향이와 이몽룡》을 지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을 실은 《타이타닉》에 이르기까지 심금을 울리는 운명의 ‘러브 스토리’들은 너무 많아 오히려 진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 불을 찾아 날아드는 불나비처럼 사랑을 찾아 답이 없는 미로에 몸을 던진다.

그러하다. 사랑은 답이 없다. 사랑은 발견할 수도 없고, 발명할 수도 없다. 사랑이 만들어지고, 유지되고, 끝나는 것의 섬세한 과정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서 사랑은 인간의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모든 사랑은 그저 닥치면 닥치는 대로 견디어야 할 ‘운명’일 뿐이다. 그러니 내 청춘의 사랑도 결국은 ‘운명 같은 사랑’이었구나! 이러한 결론을 《사랑도 발명이 되나요?》라고 묻는 저자 김형민의 질문에 답으로 갈음한다.

도처에 묻혀있는 운명 같은 사랑이라면 숙명여고에서 50년 전속 사진사로 일했던 ‘개미 아저씨’의 러브 스토리도 빠질 수 없다. 숙명여고 졸업생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교내 명사였던 그는 독신이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실은 아내가 있는 유부남이었다. 그는 북한에서 결혼하고 채 1년이 안 되어 아내를 남겨놓고 38선을 넘어 남으로 왔다가 생이별을 당하고 말았다. 북에 있는 아내에게 미안해서 그는 50년 넘는 세월을 사고무친으로 견디고 있었던 것이다. 2004년 그는 결국 세상을 떠났는데 죽기 전에 북한의 아내 소식을 들었는지, 끝내 못 들었는지 궁금해하지 말자. 저토록 숭고한 사랑에 대한 예의가 아니므로.

‘산하의 오역’ 등 역사 이야기를 주로 쓰는 저자 김형민이 개미 아저씨의 일편단심 사랑처럼 동서고금의 역사에 스며있는 ‘운명적 사랑’에 현미경을 들이댄 책이 《사랑도 발명이 되나요?》다. 하늘 아래 첫 역, 승부역 바위에 새겨진 세 평짜리 러브 스토리, 사랑보다 자유를 택했던 이사도라 던컨, 체르노빌의 원자로도 막지 못했던 루드밀라의 사랑, 화가 박수근과 김복순의 천생연분, 화학적 사랑의 대명사 라부아지에 부부, 심훈 소설 《상록수》의 실제 인물 최용신과 김학준의 상상초월 순애보, 미세스 심프슨을 위해 왕관을 벗어 던졌던 영국의 에드워드 8세, 민주화 운동권 사랑 이야기라면 빠질 수 없는 ‘김병곤과 박문숙, 죽음을 넘어선 사랑과 용기’….

발견도 운명도 아닌 사랑, 둘 만의 특별한 창조가 아니면 존재불가한 사랑 이야기 30개를 담았다. 읽고 나면 유주현 불멸의 수필 ‘탈고 안 될 전설’이 산골짜기 초롱불처럼 멀리서 깜박인다.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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