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살 광주 백운고가 철거에 시민들 “시원섭섭”
  • 호남취재본부 정성환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0.06.04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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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백운고가도로의 마지막 날 풍경
‘안녕 백운고가’…광주시, 4일 철거 기념식
1989년 개통 후 도심 연결 다리 역할

지난 1989년 11월 건설돼 31년 동안 광주 남구의 관문 역할을 하며 지역민과 애환을 함께 한 ‘백운 고가차도’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오는 7월부터 시작될 본격적인 철거공사를 앞두고 ‘백운고가 철거 기념식’이 4일 오후 3시부터 현장에서 열렸다. 기념식에는 이용섭 시장과 김동찬 광주시의회 의장, 윤영덕·이병훈 국회의원, 장휘국 광주시교육감, 김병내 남구청장, 남구 주민자치위원회, 시민 등이 참석했다. 광주시는 이날 백운고가의 철거를 앞두고 시민들에게 고가도로를 개방했다. 

“새길을 위하여” 광주 남구 주월동 ‘백운고가 차도’ ⓒ독자 엄해정씨 제공
“새길을 위하여” 광주 남구 주월동 ‘백운고가 차도’ ⓒ독자 엄해정씨 제공

‘백운고가’ 마지막 모습보며…광주의 새로운 길 염원

철거 기념식 소식을 들은 시민과 운수업체 직원, 시 산하기관 직원 등이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기 위해 식전 한 시간 전부터 찾아와 고가도로는 차량대신 인파로 붐볐다. 삼삼오오 모인 시민들은 저마다 휴대전화 카메라로 고가 모습을 담는 등 마지막 추억을 남기며 아쉬움을 달랬다. 지나가던 운전자들도 잠시 멈추고 그 모습을 지켜봤다. 

‘아듀, 백운고가!! 새로운 길을 위하여’라는 주제로 열린 철거 기념식에서 시민들은 테이프컷팅과 함께 백운고가의 마지막 길을 걸었다. 새로운 길을 염원하는 문재평 서예가의 ‘새길을 열다’라는 글을 따라 걸으면서 안전한 철거와 새로운 길을 위한 기대로 장미꽃잎을 뿌리는 퍼포먼스와 함께 ‘희망의 메시지’를 남기는 시간을 가졌다. 

올 들어 가장 무더운 날씨였지만 시민들의 모습에선 무더위보다 시원섭섭함이 더 크게 느껴졌다. 한 시민은 “백운고가도로가 없어진다고 하니까 많이 아쉽고, 이 자리가 좋은 공간으로 재탄생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백운광장 주변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이 아무개(45)씨는 “시원섭섭하다”며 “푸른길과 연계해 먹거리와 공연이 어우러진 공간 조성을 위한 다양한 논의가 민간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남구 백운동에서 오랫동안 거주한 한 주민은 “지난 10여년 동안 수많은 정치인과 시장들이 찾아와 철거약속을 해놓고 그때마다 빈말에 그쳐 이번에도 믿기지 않았는데, 오늘 막상 철거식을 하는 걸 보니 감회가 새롭다”며 “아쉽지만 철거로 인해 도로 주변의 상점은 많이 좋아지고 광주 최대 교통요충지로서 백운광장의 옛 영화를 되찾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성숙한 시민의식…“불편, 더 나은 미래위해 감당해야할 몫”

이용섭 광주시장과 참석 내빈들이 4일 오후 남구 주월동 백운고가차도에서 열린 백운고가 철거 기념식에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광주시
이용섭 광주시장과 참석 내빈들이 4일 오후 남구 주월동 백운고가차도에서 열린 백운고가 철거 기념식에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광주시

철거 아쉬움 속에 성숙한 시민의식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백운고가 옆에서 사업장을 운영하고 있는 엄해정(53)씨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백운고가가 그동안 시민의 교통로로 든든한 버팀목이 돼 줘 고마웠다”며 “고마워~ 잘가~”라고 심경을 토로했다. 임 대표는 그러면서 “철거공사와 도시재생뉴딜사업, 지하철 공사 등이 겹쳐 심한 교통체증이 예상되는 만큼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우회도로 이용에 동참 등 탁월한 시민의식이 필요하다”면서 “당장 겪게 될 불편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썼다. 

반면 백운고가 철거를 바라보는 결이 다른 지적도 나왔다. 백운고가가 생길 때부터 줄곧 봐왔다는 김종욱(63)씨는 “백운고가 건설 당시부터 반대했다”며 “건물구조물은 100년을 생각해서 건설해야 하는데 불과 30여년 만에 수명을 다하는 모습을 훗날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고 꼬집었다.

광주시의 행사 기획력 부재에 대한 질타도 있었다. 한 시민은 “평일 낮 폭염 속에 관 주도의 동원청중으로 식장을 채우며 기념식을 여는 바람에 주말 저녁시간에 시민들이 대거 참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허무하게 날려버렸다”고 혀를 찼다. 

실제 2014년 서울 서대문구 아현고가도로 철거의 경우 기념식에 이어 김덕수 사물놀이패의 길놀이가 열렸다. 70여 개의 희망깃발 행렬을 따라 폭 15m, 길이 940m의 아현고가에서 부터 이대역을 지나 연세로까지 걸었다. 서대문구, 마포구, 중구 주민들이 각기 피켓과 희망깃발을 들고 나와 참여했다. 

도보 걷기의 중간 부분에는 아현고가의 옛 사진을 모아놓은 전시회가 열렸다. 시공 당시 사진이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또한 추억의 놀이 부스전을 마련해 제기차기, 팽이돌리기 등도 직접 참여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추억 쌓기의 한판 놀이터가 된 것이다. 

 

이용섭 시장 “시민과 함께 만드는 새로운 희망 길 되길”

문재평 서예가의 ‘새길을 열다’라는 글을 따라 걷기 ⓒ시사저널 정성환
문재평 서예가의 ‘새길을 열다’라는 글을 따라 도보 걷기 ⓒ시사저널 정성환

이용섭 광주시장은 기념식 축사에서 “백운고가는 광주의 사통팔달로 연결되는 다리 역할을 했지만 한편으로는 도시미관을 해치고 주변 상권 성장을 가로막는다는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됐다”며 “도시철도 2호선 건설사업으로 고가를 철거하고 지하차도 등 교통 인프라와 시스템을 완전히 바꾸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됐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번 철거와 광주시가 추진 중인 대규모 도시재생 뉴딜사업으로 죽어가는 도심을 살려내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며 “시민과 함께 만들어갈 새로운 길이 광주를 대한민국의 미래로 우뚝 세워내는 희망의 길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단상에 오른 윤영덕 광주남구갑 국회의원은 “오늘 주제인 ‘새로운 길을 위하여’가 멋지다”며 “이제 백운광장은 자동차 중심의 도로에서 사람 중심의 도로로 그 기능을 달리하게 될 것이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마이크를 잡은 김병내 남구청장은 “백운동 도시재생뉴딜사업과 지하철 역세권 활성화를 통해 광주시민이면 누구나,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찾고 싶도록 백운광장의 옛 영화를 반드시 되찾아오겠다”면서 “(힘내도록 응원의) 박수 한번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건설 초기 백운고가도로는 길이 385.8m, 폭 15.5m로 백운동부터 주월동까지 도심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며 시민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백운고가가 지나는 백운광장도 한때 목포, 무안, 나주 등 서부권의 교통요충지로 영화를 누렸다. 

그러나 건설 당시 경전선 철도 영향으로 경사와 곡선이 심하게 시공돼 잦은 교통사고와 교통체증이 발생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백운 교차로 주변 백운광장은 2018년 기준 하루 평균 14만 2956대의 차가 통행해 광주에서 12번째로 교통량이 많았다. 이 가운데 5만 3163대는 고가차도를 이용했다. 또 도심 미관을 해치고 주변 상권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원인으로 지목돼 인근 주민들의 철거 요구가 컸다.

광주시는 오는 11월까지 고가차도 구조물을 철거하고, 2023년까지 도시철도와 지하차도를 건설할 계획이다. 시는 이달 중에 차단막 설치와 공사 중 시민이 이용할 추가 차로 확보, 나무 이식, 지장물 이설을 마무리하고 내달 초부터 본격 철거에 들어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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