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길 게 따로 있지…” 양산시의 다이옥산 은폐 논란
  • 부산경남취재본부 박치현 기자 (sisa518@sisajournal.com)
  • 승인 2020.06.05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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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부터 10여 차례 다이옥산 검출
2017년 5개월 연속…수도꼭지에서도 나와
양산시 “극히 미량, 인체 영향 미비” 해명

양산시가 최근 공개한 2020년 5월 수돗물 수질검사 결과표에 범어정수장에서만 1,4-다이옥산이 검출된 것으로 나와 있다. 하지만 다른 정수장에서도 이미 다이옥산이 검출된 사실이 추가로 밝혀졌다. 양산시가 축소와 은폐 의혹 논란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양산시는 수돗물 수질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매달 범어·신도시·웅상정수장과 수자원공사가 관리하는 양산정수장, 그리고 가정수도꼭지를 대상으로 수돗물 수질검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양산시는 ‘5월 수돗물 수질분석 검사’ 결과 범어정수장에서만 1,4-다이옥산 3㎍/L가 검출되고 나머지는 모두 불검출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5월 4일 신도시정수장에서 23㎍/L, 범어정수장에서 6㎍/L 검출된 사실은 빠졌다. 가장 낮은 농도의 정수장만 살짝 언급한 것이다.

다이옥산이 검출된 양산 신도시정수장ⓒ양산시
다이옥산이 검출된 양산 신도시정수장ⓒ양산시

양산시의 변명은 궁색하다. "4일 다이옥산이 검출된 시료는 그날 채취해 검사한 것이 아니라 4일 채취해 보존하고 있던 것을 6일 검사한 것이라 정확도 등에서 다소 논란이 있을 수 있어 발표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양산 신도시 아파트에 사는 A(47세 주부)씨는 “시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고의로 누락시켰다고 본다. 시민의 건강을 외면하고 다이옥산 검출 사실을 은폐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정보공개청구를 할 것이고, 결과에 따라 책임자의 엄중 처벌을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부산시의 경우 상수도사업본부에서 매일 각 정수장 수질검사 결과를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 여기에는 1,4-다이옥산도 포함돼 있다. 양산시는 뒤늦게 1,4-다이옥산 모니터링 결과를 홈페이지를 매일 공개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2013년부터 10여 차례 다이옥산 검출 사실 은폐

양산시의 다이옥산 은폐 의혹은 이번만이 아니다. 시사저널 취재 결과 양산 정수장에서는 과거에도 1,4-다이옥산이 수차례 검출된 사실이 확인됐다. 2019년 3월에도 범어정수장에서 1,4-다이옥산 1㎍/L가 검출된 것으로 드러났다. 2017년에는 2월부터 6월까지 5개월 연속으로 집중 검출됐다. 2월에는 신도시정수장에서 1㎍/L, 3월과 4월에는 범어·신도시·웅상정수장과 가정수도꼭지에서 다이옥산이 1㎍/L 검출됐다. 5월에는 범어정수장에서, 6월에는 신도시정수장에서 다이옥산이 나왔다. 또 2016년 5월에는 범어정수장에서 비교적 높은 5㎍/L가 검출되기도 했다. 2016년 1월에는 가정수도꼭지에서 다이옥산 1㎍/L가 나왔으나 시민들은 아무도 몰랐다. 2015년 3월에도 범어와 신도시정수장에서 각각 1㎍/L와 2㎍/L가 검출됐고, 6월에도 두 정수장에서 각각 1㎍/L의 다이옥산이 확인됐다.

마시는 수돗물에서도 다이옥산이 나왔고 특히 2017년에는 5개월 연속으로 검출됐지만 그동안 양산시는 유출 경로조차 확인하지 않았으며, 발표도 하지 않았다. 다행히 국내 먹는 물 기준치(50㎍/L)에는 못 미치는 수치였지만 식수에서 다이옥산이 수시로 검출됐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양산시 관계자는 "1㎍/L이면 정량한계(어떤 성분의 정량분석이 가능한 최소한의 농도)를 간신히 넘은 극히 미량의 수치다. 그 미만은 측정장비에서 1,4-다이옥산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운 수치기 때문에 국제적인 기준에 따라 불검출로 처리한다"면서 "그만큼 미량이라 당시에도 딱히 문제되지 않았던 것으로 본다. 미량의 다이옥산은 환경에 따라 검출될 수도 있다"고 해명했다. 다이옥산의 심각성을 모르는 궁색한 변명이다.

같은 원수를 쓰고, 같은 정수방법인데도 부산 정수장은 괜찮고 양산 정수장(신도시정수장, 범어정수장)에서만 다이옥산이 검출됐다. 이에 양산시 관계자는 "같은 시설과 방법을 사용하는데 왜 차이가 났는지 부산시를 현장 벤치마킹해 더 좋은 방법이 있는지 파악해보겠다"고 했다.

 

전문성 부족과 안일한 행정이 문제 키워

수처리 전문가인 이병호 박사(前 울산대 교수)는 “국내 정수 시스템은 우수하지만 식수 원수인 낙동강 물에 각종 유해물질이 들어 있는데도 수질관리는 엉망이다. 행정의 전문성 부족이 핵심이다. 다이옥산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감추면 감출수록 문제는 더 커질 것이다. 다이옥산의 유해성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환경보호청(USEPA)은 1,4-다이옥산을 발암추정 의심물질로 지정하고 있다. 의학계에서는 간암 발생이 우려되는 물질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는 간암 사망률이 높고, 특히 물이 안좋은 낙동강 주변 부산 경남에 간암 사망률이 높다고 지적하는 의학논문도 있다. 다이옥산은 기준치 이하라도 안심할 수 없다. 어쩌다 마시는 음료수와 달리 수돗물은 매일 먹는다. 기준치 이하의 다이옥산이라도 식수에 들어 있으면 사정은 달라진다.  아무리 낮은 농도라도 수돗물을 통해 매일 인체에 흡수되면 고농도의 다이옥산 형태로 축적된다. 그래서 미국연방정부 환경보호청(USEPA)은 1,4-다이옥산 기준치를 3.5㎍/L(ppb)로 강화했다. 우리나라 수돗물의 1,4-다이옥산 기준치 50㎍/L(ppb)보다 14배나 엄격하다.

부산 울산 양산지역에 상수원수를 공급하는 물금취수장 ⓒ수자원공사
부산 울산 양산지역에 상수원수를 공급하는 물금취수장 ⓒ수자원공사

우리나라의 1,4-다이옥산 발생 공장 폐수 배출 기준치는 4,000㎍/L이다. 하지만 낙동강 상수원에 직접 배출하는 하수처리장의 방류수 기준치는 아예 없다. 상수원 안전이 실종된 상태다. 수돗물 안전의 본질은 다이옥산과 같은 미량유해물질을 얼마나 제거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와 함께 행정의 투명한 수질분석 자료 공개도 수반돼야 한다.

다이옥산은 다양한 형태로 식수원을 오염시킨다. 2009년 대구 다이옥산 사태는 낙동강이 진원지였다. 그래서 이번 양산신도시 정수장의 다이옥산 유입 경로도 낙동강을 주목했다. 하지만 예기치 않은 곳에서 문제가 생겼다. 양산의 산막공단 기업체에서 방류한 다이옥산이 하수처리장을 통해 양산천에 방류되고 이것이 역류하면서 정수장으로 들어왔다. 과거에도 이러한 경로로 오랫동안 다이옥산이 정수장으로 들어왔을 가능성이 높다. 합동조사단도 이를 염두에 둔 듯 다이옥산 유출의 고의성 여부와 유출시기에 대해 조사 중이다.

이번 다이옥산 사태는 행정의 단속부재와 은폐에서 비롯됐다. 다이옥산 배출업체에 대한 합동단속이 시작되자 양산하수처리장 인근 다이옥산 농도는 크게 떨어졌다. 지난달 30일 기준 양산하수처리장 방류수의 다이옥산 농도는 3094㎍/L였지만, 2일에는 46㎍/L로 조사됐다. 양산천 하류 호포대교에서는 지난달 30일 1553㎍/L가 검출됐지만, 2일에는 349㎍/L까지 떨어졌다. 숨기려다 일을 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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