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전략’ 통했다…法, 이재용 부회장 구속영장 기각
  • 이민우 기자 (mwlee@sisajournal.com)
  • 승인 2020.06.09 05:3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재용 수사에 제동 건 법원…"피의자 책임 유무, 재판 과정서 결정해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9일 구속 위기에서 벗어났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자본시장법 위반(부정거래 및 시세조종 행위) 혐의, 외부감사법 위반 혐의로 전날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은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다. 이 부회장은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 직후 구치소에서 나와 자택으로 향했다.

원정숙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2시쯤 자본시장법 위반(부정거래 및 시세조종 행위) 혐의, 외부감사법 위반 혐의로 청구된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원 부장판사는 "기본적 사실관계는 소명됐고, 검찰은 그간의 수사를 통해 이미 상당 정도의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며 "불구속재판의 원칙에 반해 피의자들을 구속할 필요성 및 상당성에 관해서는 소명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장기간의 수사로 증거가 대부분 수집돼 증거인멸 우려가 없고 유수의 글로벌기업 총수로서 도주 우려도 없어 구속 사유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이 부회장 측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으로 보인다.

특히 통상 구속영장 기각 때 언급되는 "범죄는 소명된다"는 식의 언급도 없었다. 대신 원 부장판사는 "이 사건의 중요성에 비추어 피의자들의 책임 유무 및 그 정도는 재판 과정에서 충분한 공방과 심리를 거쳐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향후 법정에서 공방을 거쳐 사실관계를 확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법원의 결정에 따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대기하던 이 부회장은 이날 오전 2시40분쯤 서울구치소에서 풀려났다. 이 부회장은 취재진이 기각 영장에 대한 소감을 묻자 "늦게까지 고생하셨습니다"라고 짧게 답한뒤 대기하고 있던 승용차를 타고 현장을 떠났다. 

이 부회장은 서울구치소 앞에 대기하고 있던 검은색 차량을 타고 떠난 뒤 서울 한남동 자택으로 이동했다. 자택에서 휴식을 취한 뒤 서초사옥이나 수원 본사 등 집무실에 출근해 업무에 복귀할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9일 오전 2시43분쯤 경기도 의왕 서울구치소에서 걸어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한숨 돌린 삼성 "최악은 면했다"

삼성은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일단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며 크게 안도하는 모습이다. 삼성은 구속영장 기각 이후 "불구속 상태에서 진실을 가릴 수 있게 돼 천만다행"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이재용 부회장이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고 검찰의 혐의 내용에 대해서도 다툼의 여지가 있는 만큼 당연한 결과"라고도 평가했다.

앞서 삼성은 이 부회장의 영장실질심사를 하루 앞둔 7일 '대언론 호소문'을 통해 "장기간에 걸친 검찰 수사로 인해 정상적인 경영이 위축돼 있고 코로나19 사태와 미·중 간 무역분쟁으로 대외적인 불확실성까지 심화되고 있다"며 "삼성이 한국 경제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밝혔다. 

검찰이 최근 삼성 관련 사건을 모두 특수2부에 배당하면서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 행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 시사저널 최준필·시사저널 고성준
ⓒ 시사저널 최준필·시사저널 고성준

체면 구긴 윤석열 검찰 "법원 결정 아쉽다"

전격 구속영장 청구까지 이뤄졌던 검찰 수사에는 제동이 걸렸다. 지난 1년 8개월동안 삼성그룹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을 수사한 뒤 '구속영장청구'라는 초강수를 둔 검찰로서는 뼈아픈 결과를 받아든 셈이다.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구속영장청구서 분량만 150쪽, 함께 제출한 수사기록만 20만 쪽에 달했지만, 끝내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앞서 검찰은 지난달 26일과 29일 이 부회장을 두 차례에 걸쳐 대면조사 한 뒤 구속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이 결국 이 부회장의 삼성 경영권 승계작업을 위해 벌어졌는데, 그룹 내 1인자로 최종결정권을 가진 이 부회장이 몰랐거나 보고받지 않았을 리 없다고 결론을 낸 것이다.

구속수사 방침은 지휘 체계 보고와 대검찰청 보고를 거쳤고, 이후 윤석열 검찰총장이 전날 최종 승인하면서 최종 결정이 이뤄졌다. 윤 총장이 최종 결단을 내리면서 구속영장 청구가 전격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전해진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구속영장 기각 이후 "본 사안의 중대성, 지금까지 확보된 증거자료 등에 비추어 법원의 결정을 아쉽게 받아들인다"며 "영장재판 결과와 무관하게 검찰은 법과 원칙에 따라 향후 수사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