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센 놈 ‘고대 바이러스’가 온다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6.17 15:00
  • 호수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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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난화로 빙하 녹으면서 잇따라 노출… 상상 못 한 바이러스 공격받게 될지도

중국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순식간에 전 세계로 확산돼 세계보건기구(WHO)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했다. 2000년대 들어 바이러스 전염병으로 WHO가 비상사태까지 선포한 경우는 있지만 이처럼 지구촌을 휩쓸지는 않았다. 사망자도 폭발적으로 증가해 현재까지 전 세계 코로나19 확진자는 약 700만 명, 사망자는 40만 명에 이른다. 신종 바이러스의 공격으로 전 세계가 위험에 빠진 것이다.

한반도, 안전지대 아니다

현대의학이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우리는 바이러스의 공격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오히려 미지의 바이러스들이 인류를 위협하는 모양새다. 특히 빙하에서 잠자고 있는 ‘고대 바이러스’는 잠재적 위험군에 속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빙하가 녹으면서 이 바이러스들이 잇따라 노출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월 미국과 중국 공동 연구진은 티베트 굴리야 빙하에서 오랫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바이러스 그룹을 발견했다. 5년 전 티베트 고원의 두꺼운 빙하를 50m 정도 깊게 뚫고 표본을 채취했는데, 연구 과정에서 1만5000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보이는 ‘고대 바이러스’의 존재가 확인된 것이다. 

이 바이러스들은 빙하기 때 만년설에 갇혀버린 것으로 추정됐다. 바이러스의 경우 최장 10만 년까지 무생물 상태로 빙하 속에서 동면이 가능하며 기온이 다시 따뜻해지면 활동을 재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진은 빙상 코어(빙하에서 추출한 얼음 조각) 샘플 두 개를 분석하고 미생물학 기법을 이용해 빙하 얼음에 남아 있는 유전정보를 기록했다. 그 결과 33가지 바이러스 유전정보를 발견했다. 이 중 28개는 지금까지 발견된 적이 없는 전혀 새로운 것이었다.

앞서 2015년에는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 연구팀이 시베리아 영구동토층에서 잠자던 3만 년 전 바이러스를 발견했다. 연구진은 ‘몰리바이러스 시베리쿰’이라고 명명했다. 이 바이러스는 크기가 0.6μm(1μm는 100만 분의 1m)로 ‘자이언트 바이러스’로 불릴 만큼 크고 유전자도 500개나 됐다. 에이즈바이러스(HIV)가 9개의 유전자만을 가지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많은 숫자다.

바이러스가 발견된 장소는 석유나 기타 광물자원이 풍부해 향후 인간의 접근이 많이 이뤄질 가능성이 큰 곳이었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의 장미셸 클라베리는 “보호 수단을 강구하지 않은 채로 해당 지역에 상업적 진출을 시도했다가는 우리가 멸종했다고 믿었던 바이러스가 부활하는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과학자들은 영구동토층에 많이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바이러스들이 빙하가 녹으면서 자연스럽게 유출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클라베리는 “아주 약간의 바이러스 입자만으로도 전염병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바이러스들을 부활시키기에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 지난 2016년 여름, 러시아 시베리아 지역에서 탄저병이 발생해 주민들이 공포에 떨었다. 당시 러시아 중북부 야말로네네츠 자치구에서 12세 목동이 탄저병으로 숨졌다. 탄저균이 발견된 지역에서는 순록 2300여 마리가 떼죽음을 당했고, 주민 8명이 탄저균에 감염됐다. 러시아에서 탄저균이 발견된 것은 1941년 이후 75년 만이었다. 처음에는 러시아 당국에서도 테러나 적국의 의도적인 실험에 따른 것으로 보고 수사에 나섰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지구 온난화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해 여름 야말로네네츠 지역은 35도를 오르내리는 이상 고온 현상을 보였다. 이때 영구동토층이 녹아 동물 사체 속에 숨어 있던 탄저균이 활동을 시작하면서 병이 퍼졌다는 것이다. 탄저균은 얼어붙은 사람이나 동물 사체에서 수백 년 동안 생존할 수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베리아의 탄저병 사태는 언제든지 재현될 수도 있는 것이다.

2013년에 우리나라 극지연구소팀이 남극 빙하 속에서 30만 년 전 박테리아를 추출해 배양했더니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 2014년 뉴질랜드 캔터베리대학 연구팀은 700년 된 캐나다 순록의 배설물에서 고대 바이러스를 소생시켜 고대 바이러스에 의한 전염병 확산이 이론적으로 가능하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고대 바이러스가 부활할 경우 한반도도 안전지대는 아니다. 남정호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선임연구위원은 한반도도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어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2018년 7월4일 ‘기후변화와 해수면 상승, 그리고 연안 재해’라는 주제로 열린 심포지엄에서 “지구 온난화로 빙하가 녹아내리는 현상이 가속화하는 경우 새로운 고대 바이러스가 지속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며 “만약 고대 바이러스가 활성화된다면 현대과학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무서운 전염병 등을 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북극의 빙하가 녹아내리면서 새로 드러나는 바이러스가 해류나 선박에 붙어 국내로 들어올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 수도

지금까지 연구 결과를 보면 온난화로 인해 전 세계의 빙하가 수십만 년 동안 내포하고 있던 미생물과 바이러스들이 밖으로 유출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과학자들은 빙하가 녹아 고대 바이러스들이 면역력이 없는 인간 사회와 접촉하는 것을 최악의 시나리오로 본다.

빙하라는 ‘갇힌 시스템’ 안에 있던 고대 바이러스들은 지구 온도가 오르면 언제든지 인류와 접촉할 수 있다. 고대 바이러스로 인해 새로운 전염병이 유행하면 면역력이 없는 인간에게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과거 50만 년 동안 지구의 기후 변화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지구 평균 기온이 1.5도 이상 상승하면 동토가 빠르게 녹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산업화가 진행된 1880년 이후 이미 0.8도 이상 증가했으며 이 같은 추세라면 2100년까지 약 3~5도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과 같이 지구  온난화가 가속화되면 인류는 상상하지 못한 바이러스의 공격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보던 일이 현실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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