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화내기 전, 자신을 먼저 돌아보라
  • 이나미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6.23 14:00
  • 호수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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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부모의 심리와 치료

우선 피해 아동에게는 아동학대의 책임이 전혀 없다. 중증의 질병을 앓고 있는 자녀들을 진심으로 돌보고 사랑하는 존경받을 부모들이 세상에는 참 많다. 무엇이든 도화지처럼 빨아들이는 아이들은 양육자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성장하므로, 아동에게 문제를 돌리는 변명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

아동학대를 아직 사람들마다 다르게 정의하고 있기에 자신이 가해자이면서도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도 큰 문제다. 아직 많은 사람이 체벌이 필요하다고 부끄럼 없이 말하지만, 아이에게 매를 대지 않아도 얼마든지 벌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어떤 종류건 신체적 폭행은 일단 학대라고 해도 무방하다.

정신적 학대 역시 조심해야 한다. “너같이 못난 것이 왜 태어나 가지고” “네가 해 봤자 뭘 할 수 있다고 설치니” “차라리 나가버리든 죽어버려라” 같은 폭언은 머리나 뺨을 맞는 것 이상으로 자존감에 깊은 상처를 줄 수 있다. 아이들을 부정적으로 대하기 시작하면 아이들은 점점 더 부모 말을 듣지 않고, 부모들은 이 때문에 “열 받아서” 더 폭언과 폭행의 수위를 높이게 된다.

아동의 인권이 보호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아 아동학대나 살해가 아직도 전 세계적으로 보고되고 있다. 돈 보스코 성인, 페스탈로치, 방정환 선생같이 아동의 인권을 보호하려고 했던 이들이 없었다면 지금도 아이들의 상황은 끔찍했을 수 있다.

그렇다면 “매를 아끼면 아이를 망친다”라든가, “사랑의 회초리”류의 말을 쓰며 가해자가 되는 이들의 심리는 무엇일까. 첫째, 자신의 경험이다. 가해자들은 대부분 폭력을 당한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콤플렉스를 죄 없는 아이들에게 푼다. 폭력의 수직적 전파다. 가해자들은 실제로 법정에서 자기가 피해자가 되었던 경험들을 변호를 위해 내놓는다. 그러나 모든 폭력의 희생자들이 가해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상처를 누군가에게 받았다면, 그 상처를 푸는 것은 자신이지 아이가 맞아가며 풀어줄 일은 아니다.

왜 아이를 학대할까

때로는 아주 정상적인 부모들에게도 이른바 육아 스트레스를 극복하지 못하고 아이를 방임하거나 잘못 돌보게 되는 순간들이 있을 수 있다. 아무 도움도 받지 못하고 육아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도 없이 아이만 돌보라고 한다면 정신이 건강할 수 없다. 부모도 나름 자기 생활과 인간관계가 있어야 육아로 인한 피로나 좌절감을 극복할 수 있다. 전업주부들에게도 국가가 보육 돌보미를 제공하고 몇 시간만이라도 육아 부담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게 도와주는 이유다.

경제적인 악조건도 크다. 좁고 비위생적인 공간에 갇혀 지낸다면 어른들도 우울해지는데, 한창 활동량이 많고 다양한 자극을 받아야 하는 어린아이가 부모와 하루 종일 단칸방에서만 지내야 한다면 행복할 수 없다. 어른들은 우울과 짜증을 말로 표현할 수 있지만, 아이들은 그저 자거나 먹는 것을 거부하고 울기만 하니 더욱 육아가 힘들어지게 된다. 맞벌이일 경우 힘든 직업 전선에서 시달리다 휴식할 여유 없이 육아와 가사에 노출될 때 감당하지 못하는 부모들도 많다.

경제적으로나 성장 과정에 문제가 없는데도 알게 모르게 아동학대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배우자와의 갈등, 다른 가족에 대한 분노 등을 아이에게 투사하는 경우다. “꼭 너 할머니 닮아 못됐구나” “하는 짓마다 어째 에미 닮아 미련하니” 하는 식이다. 무의식적으로 아이들을 스스로와 동일시해, 자신을 닮은 아이는 편애하고 그렇지 않은 아이는 미워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재혼가정이 많은 요즘, 복잡한 자신의 정신적 문제를 죄 없이 상처 입은 아이들에게 쏟아넣는 이도 적지 않다. 반대로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는 심한 부담감이 육아를 방해하기도 한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비싼 과외공부가 아니라 정상적인 부모의 성실하고 따뜻한 태도이지 양동이처럼 쏟아붓는 과외나 학원의 홍수가 아니다.

부모가 제대로 살고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이면, 아이는 타고난 자질 안에서 그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다. 아이는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부모를 보면 삐뚤어지게 되고, 자신에게서 갈등이 시작되었다는 점을 모르는 부모는 아이 탓만 하면서 아이를 괴물로 바라보다가 마침내 아이를 괴물로 만든다. 사실은 자신이 진짜 괴물인데 말이다.

그렇다면 아동학대를 예방하고 치료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완벽하게 부모가 될 준비를 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 아니므로 모두 차근차근 성장해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말하는 젊은이의 마음에는 육아에 대한 공포와 불안이 있다.

 

‘나답게’보다 ‘우리 함께’

그럼에도 아이를 가진 젊은 부모들이 지치거나 압도될 때 주변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도와주어야 한다. 본인들도 국가가 제공하는 여러 제도를 숙지하고 평소에 부모나 친지들과도 관계를 잘 유지하는 것이 좋다. 한 아이를 돌보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온 마을 사람들에게 아이의 부모가 잘해주어야 한다는 뜻도 된다.

출산율이 높은 나라는 대부분 대가족제도가 유지되면서 육아 부담을 함께 나눈다. 조부모에게 잘하는 부모의 효와 인간애를 배우고, 또 조부모는 손주를 돌보면서 젊은 자녀들이 사회에서 더 자기실현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 ‘나답게’ 사는 것만 고집하기보다는 ‘우리 함께’ 사는 방법을 잘 풀어나갈 때 공동체는 더 많이 발전한다.

아이에게 감정에 따라 무엇을 명령하거나 강요하지 말고, 차분한 상태에서 아이 말을 더 듣고 이해하고, 원하는 것과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인지 묻고 또 물어야 한다. 일단 아이가 말을 시작하면, 아이가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질 수 있도록 상벌을 확고하고 일관되게 하되 지나치지는 말아야 한다. ‘동그라미 속에서 반성하기’ ‘좋아하는 물건 잠시 못 쓰기’ ‘먹고 싶거나 갖고 싶은 것 참기’처럼 벌을 주는 방법은 무척 다양하다.

아이에게 화내기 전, 먼저 인격으로서의 자신은 어떤 사람인지, 아이에게 하는 행동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지 진지하게 돌아보는 습관을 가진다면 아동학대는 예방할 수 있다. 학대 피해자는 본인의 잠재적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불행한 인생을 살 확률이 높다. 어린 시절 학대받았음에도 큰 성취를 이루는 이들이 평범한 장삼이사가 아니라 위인이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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