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훈 한미글로벌 회장의 50년 경험 녹여낸 경영 에세이
  • 조철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6.21 11:00
  • 호수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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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빨리빨리’ 하려면 ‘프리콘’이 필수다”

“프리콘은 시공 전에 시공 과정을 시뮬레이션해 보는 일로, 건물을 설계도상에서 미리 지어보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프리콘은 건설 프로젝트 초기 기획·설계 단계에서 원가와 공기, 품질, 안전에 관한 사항을 검증하고 관리함으로써 프로젝트 목표의 달성 가능성을 높이고 시공 과정의 변경 가능성이나 오류 발생을 미리 차단하려는 노력이다.”

건설사업관리(PM) 전문기업 한미글로벌을 설립해 24년간 성장시켜 전 세계 58개국에 진출, 글로벌 10위권에 입성시킨 김종훈 회장이 2500여 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경험에서 추출해 낸 성공 공식을 정리해 《프리콘》으로 엮어냈다. 이 책은 국내 건설산업의 발전을 바라고 도모하는 모든 이들에게 내미는 응원과 독려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프로젝트 의사 결정에서 가치는 최우선 고려 사항이지만, 비용 절감 또한 당연히 매우 중요한 요소다. 전체 건설 프로젝트 생애 주기에서 초기 3단계에 해당하는 기획, 설계, 조달에서는 프로젝트 목표 수립, 설계도면 작성, 발주 관련 업무를 수행하며 시공을 준비하는 사전 활동을 한다. 이 단계의 의사 결정에 따라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기회나 영향력이 매우 크지만, 시간이 지나 프로젝트가 시공 단계로 접어들면 기회가 급격히 감소하며, 시간이 지날수록 계획이나 설계가 중도 변경될 경우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시공 이전 단계 비용은 15%지만, 프로젝트 전체 비용 중 90%에 영향력을 미친다.”

김 회장은 원가, 일정, 품질 관련 제반 사항을 시공 전에 사전 검증하는 활동, 즉 프리콘이 프로젝트 성과를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이유라고 설명한다.

《프리콘 - 시작부터 완벽에 다가서는 일》 김종훈 지음│엠아이디 펴냄│376쪽│2만원 ⓒ엠아이디 출판사 제공
《프리콘 - 시작부터 완벽에 다가서는 일》 김종훈 지음│엠아이디 펴냄│376쪽│2만원 ⓒ엠아이디 출판사 제공

“최저가 함정에서 벗어나 가치에 집중해야”

“시공 과정이 하드웨어라면 프리콘 단계는 소프트웨어라 할 수 있다. 즉 프리콘을 제대로 한다는 건 건설의 소프트웨어를 잘 구축한다는 뜻이다. 대개는 건설사업에서 소프트웨어 구축의 필요성이나 중요성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고, 구축 비용 또한 인색하다. 저가 발주가 건설사업을 잘하는 것이라는 함정에 빠져 프로젝트 성공에서 점점 멀어진다. 건설사업은 시공보다 프리콘이 핵심이라는 인식 전환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건설 프로젝트를 추진하려는 발주자가 참고할 만한 자료나 책자가 거의 없다는 점도 성공을 어렵게 만든다. 간단한 전자제품에도 매뉴얼이 필수적인데, 거액의 자금이 투입되는 건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아무런 지침서도 없이 운에 기대 관행처럼 일을 추진하는 건 큰 문제다.”

최근 벌어진 이천 물류센터 화재 참사 사고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김 회장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건설 프로젝트가 성공하는가?’로 늘 향해 있었다. 현장 일선에서 실무 책임자들이 몸소 느끼는 건설의 핵심 성공 요인을 구체화하고자 했던 그는 설문조사를 통해 도출한 45가지 핵심 성공 요인들을 종합하고 자신의 경험과 관점을 녹여 다섯 가지 유형으로 정리해 제시한다. 다섯 가지 유형을 요약하면, 발주자가 프로젝트를 정확히 이해하고 의사 결정을 신속하고 명확히 내리기, 초기 단계에 분야별 전문가가 투입된 프리콘 활동, 설계 변경을 예방하는 완성도 높고 경쟁력 있는 설계, 적재적소에 투입된 우수 인력 간의 유기적인 협력 관계 구축, 지속적인 모니터링에 의한 프로젝트 관리 등이다.

“눈앞의 숫자에 급급하면 최저가 기준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인 듯 보이지만 한 번 지으면 50년, 100년을 가는 건축물이라면 가격보다 품질이나 가치에 더 집중해야 마땅하다. 좋은 회사, 좋은 팀, 좋은 사람이 좋은 성과를 낸다는 지극히 간단한 원리에 충실해야 프로젝트 성공에 이를 수 있다. 싼 가격 기준으로 업체를 선정한 다수 프로젝트가, 결과적으로 비용은 비용대로 기간은 기간대로 늘어나면서 예정대로 진행되지 않는 문제를 낳는다.”

 

“잘못된 프로젝트 결과는 발주자의 거울이다”

우리나라 사람의 DNA에는 ‘빨리빨리’가 기본 장착된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국내 건설에서 미국이나 일본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 회장은 빨리 지으면 부실하다는 잘못된 인식, 습관처럼 고착된 ‘1층 짓는 데 1개월+α’라는 관행화된 인식을 이제는 깨려고 시도해야 할 때라고 역설한다. 시공 중에 발생할 수 있는 공사기간 지연 요인을 미리 분석해 선제적으로 대처하는 일, 즉 프리콘이 중요한 이유다.

“건축은 그 시대의 산물이고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건축은 발주자의 수준을 넘어서기 힘들다는 말이 상식처럼 받아들여지고, 발주자의 중요성이 점점 더 강조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영국에서 건설 혁신 노력을 시작할 때 혁신의 대상으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주체가 발주자였고, 발주자들이 모여 워크숍을 할 때 내걸었던 구호는 ‘잘못된 프로젝트 결과는 우리 발주자의 거울이다’였다.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대단히 크다 하겠다.”

1949년 경남 거창에서 태어난 김 회장은 사회복지법인 ‘따뜻한 동행’ 이사장, 한국공학한림원 원로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행복한 구성원이 탁월한 회사를 만든다고 믿고 있는 ‘행복경영 전도사’로 15년째 대한민국 100대 CEO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책의 마지막 장에서 건설업의 현재 트렌드와 미래 전망을 했는데, 모든 건설인과 관계자에게 건네는 당부와도 같이 읽힌다.

“기후 변화와 자원 부족, 도시 인프라의 한계 등으로 이미 유엔에서도 ‘지속 가능한 개발 목표’를 발표한 바 있다. 특히 건설업은 지구 환경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만큼,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고민은 미래의 건설이 가장 주목해야 할 필수 요소다. 제로 에너지 빌딩 등 에너지 성능 최적화, 건축물 수명 증대, 건물 운영 효율화, 환경 영향이나 시공 후 운영비용을 고려한 자재 선정, 스마트 시티와 연계한 도시 차원의 지속 가능성 등을 함께 고민하고 실천해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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