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선 전 남·북·미 화상 정상회담으로 돌파구 마련해야”
  • 감명국 기자 (kham@sisajournal.com)
  • 승인 2020.06.22 10:00
  • 호수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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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고유환 통일연구원장 “김정은, 핵보유국 지위 굳히기 위한 강경책일 수도”

너무 지나친 비교일까. 6월16일 개성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건물이 폭파로 무너지는 광경은 마치 2001년 뉴욕의 쌍둥이 빌딩이 여객기 충돌로 무너져 내리는 ‘9·11 테러’를 연상케 했다. 그만큼 우리 국민들에게는 TV 화면에 비치는 그 광경이 크나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을 지지하고 남북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하던 진보적 성향의 국내 북한 전문가들도 일제히 북한을 향해 “선을 넘었다”며 강하게 비난했다.

고유환 통일연구원장 역시 북한의 강경 일변도에 우려를 표명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 정부의 뼈아픈 반성이 필요함을 지적했다. 6월18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고 원장은 “지금의 한반도 위기를 풀기 위해서는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노딜’ 상황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면서 “2018년 9월 남북이 합의한 ‘평양 공동선언’의 그 굉장하고 거창한 합의문을 어렵사리 만들어놓고 과연 지난 2년 동안 그것을 이행하기 위해 우리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사저널 최준필
ⓒ시사저널 최준필

북한이 오늘(18일)은 “더 강력한 추가 조치”를 경고하고 나섰다. 점점 강경일변도로 치닫는 느낌인데.

“북한 내부적으로 뭔가 심상치 않은 변화가 있다고 본다. 지금까지 북한에서 최고지도자가 서명한 합의는 절대적인 권위를 갖는 것이었다. 그 합의사항을 폭파한다는 것은 심각한 자기부정일 뿐만 아니라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최근 북한은 ‘국가담론’을 강화하면서 상대적으로 ‘민족통일담론’이 약화되고 있다. 게다가 김여정 제1부부장은 최근 담화에서 ‘국풍’이란 용어를 쓰고 있다.”

북한이 국가체계를 강조하고 있다고 보는 건가.

“그렇다. 과거엔 ‘우리 민족끼리’를 강조하는 등 민족 중심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대남사업을 대적사업으로 간주하는 등 남한을 민족의 범위에 두지 않고 적국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김 제1부부장을 앞세운 채 대표적인 군부 강경파인 김영철 당 중앙위 부위원장과 리선권 외무상이 주도하고 있다. 현재 김영철은 ‘대남’, 리선권은 ‘대미’ 등 사실상 대외 분야의 양쪽을 총괄하고 있다. 이게 과연 김정은-김여정 백두혈통에게 유리한 결정인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무슨 신호인지를 잘 살펴봐야 할 것으로 본다.”

김정은 위원장의 지도체제가 흔들릴 정도로 군부의 힘이 커지는 것인가.

“김정일 시대의 선군정치와 달리 김정은 시대 들어서는 당국가체제로 전환되었다. 물론 그것은 김 위원장이 군부를 확실히 장악했음을 의미한다. 지금도 이 위상엔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당과 군부를 확고히 틀어쥐면서 전략적으로 군부를 대표하는 인물을 배경으로 친동생인 김여정을 내세우는 역할 분담의 과정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이번 (폭파) 조치는 상당히 충격적이다. 단순히 내부 결속 효과를 노린 것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김영철과 리선권의 역할이 향후 더 커진다고 보는가.

“최근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거의 안 보인다. 한때 확고부동한 ‘2인자’였는데. 지난 연말에 북한이 정면돌파전을 선언하면서 북·미 관계의 장기전에 대비하기 위한 강성 인사들을 전면에 배치하는 시스템에서 최선희 제1부상과 같은 전문가들도 거의 안 보인다.”

왜 김여정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일까.

“김 위원장이 어린 나이에 집권해 역시 믿을 건 혈통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작용한 것 같다. 군부 강경세력들이 인민들의 불만을 대변해 의사를 집약하고 그 표출을 자기들 스스로 할 순 없으니까 백두혈통인 김여정을 내세워 하는 방식을 택한 것으로 봐야 한다. 그리고 김 위원장은 거기에서 빼서 선택지를 좀 넓히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김 위원장이 지금 안 나서는 게 다소 희망적이라고 볼 수도 있나.

“지난해 말 7기 5차 전원회의에서 북한이 정면돌파전을 선언할 때 남한 얘기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뒷문 열어놓기’라고 봤다. 뒷문 열어놓고 남쪽을 지켜봤는데, 6개월이 지나도록 별다른 태도 변화가 없고 계속 전단이 날아오니까 반발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남한을 ‘대적’으로 해 놓고 김여정을 총괄이라고 규정한 것은 그 위에 있는 김정은의 이름으로 향후 국면 전환이 가능하다는 것을 시사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데 미국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가 독자적으로 운신할 수 있는 폭이 너무 좁은 듯하다.

“지난해 말 북한 관련 분석을 위해 청와대에 갔다가 대통령의 뜻과 의지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때 대통령이 지난 한 해를 돌이켜보면서 너무 미국에 의존하다가 남북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놓쳐 굉장히 아쉬워했고, 관계 기관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표시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올해부터는 좀 더 적극적으로 (대북 문제를) 돌파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여러 차례 밝혔는데, 그게 실무적으로 뒷받침이 안 됐다고 하더라. 어제(17일) 청와대에서 있은 외교안보 원로 초청 오찬장에서도 대통령이 그 부분을 굉장히 아쉬워했다.”

북한이 문 대통령의 6·15 20주년 기념사에 대한 기대를 했다가 크게 실망했다는 얘기도 나오는데.

“그런데 사실 대통령으로서 그 이상 말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이미 북한은 (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겠다고 선언한 상황이고, 노동신문까지 공표했기에 안 하면 이상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전단 문제가 아니라도 북한의 계획은 이미 다 서 있었다는 의견도 있더라.”

문재인 정부의 대응은 어떻게 될까. 예전처럼 갈 순 없을 텐데.

“우리로선 상황이 추가적으로 더 악화되지 않도록 하는 관리가 최우선 과제이고, 이어서 국면 돌파의 전기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한데, 지금 당장은 냉각기가 필요하다.”

미국 대선이 그 전기가 될 수도 있을까.

“일각에선 한반도 대치 국면이 그때까지 갈 것이란 예상도 있다. 결국 정상 수준에서 풀어야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11월 미 대선 전에 남·북·미 화상 정상회담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에서 몰리고 있는 형국이니까, 대선 전략으로라도 필요하지 않을까. 자신이 한반도 문제 해결의 주연임을 보여주기 위한 차원에서라도 대선 전에 한번 나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북한이 완전히 대화의 문을 닫아버린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래서 당분간은 냉각기가 필요하다. 미 대선이 중요한 포인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게 안 되면 북한은 미국·남한과의 문을 모두 닫고 전통적인 ‘친(親)중·러’로 갈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한반도 긴장은 장기화되는 것인가.

“북한은 이미 자체 결산이 끝난 단계일 수도 있다. 북한 입장에서는 중국이 점점 힘이 커지니 중국에 편승해 그냥 남북 대치 국면으로 가는 게 낫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경제문제도 핵만 인정받으며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자칫 ‘신냉전 구도’의 수렁에 빠질 우려가 있다. 김정은 위원장으로선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굳히기 위해 지금과 같은 강경책을 펴는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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