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쿨미투 ‘용화여고’ 전직 교사 재판…“의도적 추행 없었다” 혐의 부인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0.06.23 15:5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론화 2년 2개월 만에 첫 재판 열려
피해자 “가해자 잘못 깨닫길…끝까지 싸울 것”

2018년 전국적으로 퍼진 '스쿨미투'의 발화점이 된 서울 용화여고에서 과거 제자들을 추행한 혐의로 불구속기소 된 전직 교사가 첫 재판에서 혐의 일부를 부인했다. 23일 오전 서울북부지법원에서 열린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공판에서 전직 교사 A씨는 “신체 접촉이 있었을 순 있지만 일부러 만진 적은 없다”며 의도적 추행이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A씨는 2011년 3월부터 이듬해 10월까지 생활지도부실 등 교내에서 강제로 신체 일부를 만지는 등 제자 5명을 추행한 혐의를 받아왔다. 이 사건은 6년여가 흐른 지난 2018년 3월, 졸업생들로 중심이 된 ‘용화여고 성폭력 뿌리 뽑기 위원회’에서 SNS를 통해 폭로하면서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당시 졸업생들은 SNS 설문조사를 실시해 교사들의 성폭력 폭로에 불을 붙였으며, 이에 재학생들 역시 학교 창문에 스쿨미투에 동참한다는 포스트잇을 붙이며 더욱 주목을 받게 됐다.

이후 2018년 4월 검찰이 뒤늦게 수사를 시작했지만, 같은 해 12월 A씨에 대해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혐의없음 처분을 내렸다. 그러자 이듬해 2월 ‘노원 스쿨미투를 지지하는 시민모임’ 등 시민단체에서 진정서를 내고 보완 수사를 요청했고, 그 결과 검찰은 지난 5월에서야 A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6월23일 서울 북부지법 앞에서 열린 용화여고 스쿨미투 기자회견 ⓒ정치하는엄마들
6월23일 서울 북부지법 앞에서 열린 용화여고 스쿨미투 기자회견 ⓒ정치하는엄마들

“이번 판결이 향후 스쿨미투 재판의 올바른 기준점 되길”

한국여성의전화, 정치하는엄마들 등 용화여고 사건을 꾸준히 주시하고 피해자들과 목소리를 함께 해온 단체들은 이날 재판이 열리기 전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스쿨미투에 제대로 응답하라”며 가해자의 엄벌을 촉구했다. 이들은 “피해당사자와 시민들의 분노와 용기가 가해자를 교실에서 경찰서로, 검찰청으로, 그리고 이제 법정에까지 세웠다”며 “이제는 법원이 응답할 차례”라고 외쳤다.

이날 재판을 방청한 최경숙 노원 스쿨미투를 지지하는 시민모임 활동가는 재판이 끝난 후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A씨는 30년 교직 생활을 하는 동안 신체접촉이 있었을 순 있지만 의도성은 없었다고 한결같이 주장하는데, 거꾸로 그 30년 동안 얼마나 많은 피해자가 있었겠나. 실제 2차 피해가 걱정돼 진술을 포기하는 피해자 중 정도가 더 심한 분들도 있다”며 “이들의 상처를 조금이나마 다독일 수 있는 판결이 반드시 내려져야 한다”고 말했다. 최 활동가는 비슷한 시기 스쿨미투가 터졌던 충북여중 가해 교사가 지난 2월 1심 재판에서 징역 3년형을 받은 사례를 들며 “용화여고 사건은 최소한 이보다 더한 형을 받아야 한다”고도 전했다.

그러면서 “미투 초반에 학교와 교육청, 그리고 경찰이 조금 더 의지를 갖고 사태를 살펴봐 줬으면 이렇게 오랜 시간 피해자들이 힘들지 않아도 됐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계속 남는다”며 “이번 용화여고 교사 판결이 향후 여러 미투 재판의 올바른 기준점이 돼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강조했다.

2018년 용화여고 졸업생들의 미투 폭로가 터지자 재학생들은 포스트잇으로 학교 창문에 '#WITH YOU' '#ME TOO' 등의 문구를 만들어 '스쿨 미투'에 함께 목소리를 냈다. ⓒ용화여고 'with you' 페이스북
2018년 용화여고 졸업생들의 미투 폭로가 터지자 재학생들은 포스트잇으로 학교 창문에 '#WITH YOU' '#ME TOO' 등의 문구를 만들어 '스쿨 미투'에 함께 목소리를 냈다. ⓒ용화여고 'with you' 페이스북

피해 고소인 "A씨가 스스로 잘못 깨닫길 바랐다"

재판 후 A씨를 고소한 피해자는 시민단체를 통해 공개한 발언문을 통해 “나는 이 일을 통해 무언가 이익을 얻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다. 열여덟의 나는 그(A씨)가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며 스스로 잘못을 깨닫길 바랐다. 그러나 그는 교직에서 억지로 물러났고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나 같은 사람들이 부모님의 반대 없이 당당하게 법정에 서서 진술할 수 있는 날이 오길, 아니 애초에 이런 식의 재판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는 우리가 갈 수 있는 곳까지 계속해서 가 볼 것”이라는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A씨에 대한 다음 재판은 7월21일 오후 열릴 예정이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