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살 때 부모님께 빌린 돈…〇〇〇 없인 증여세 못 피한다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0.07.02 08:00
  • 호수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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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자식 간 금전 거래에도 차용증 필요
돈 다 갚을 때까지 연 4.6% 이자 지급해야

천륜(天倫). 하늘의 인연으로 정해져 있는 관계, 흔히 부모와 자식 같은 혈연적 관계를 이렇게 말한다. 이 천륜의 관계에서 금전적 거래가 이뤄진다면 그건 어떻게 될까? 우리 사회에는 유독 자녀가 결혼이나 독립을 할 때 부모가 한몫 떼어줘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만약 신혼집 마련을 위해 부모가 자녀에게 수억원의 돈을 빌려줬다면 그건 ‘미풍양속’에 속할까 아니면 ‘편법적인 부의 대물림’에 속하게 될까? 

가족 간 금전 거래도 세법에서 정한 기준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 예상치 못한 세금을 부담할 수 있다. 가령 신혼집 마련을 위해 부모로부터 2억원을 빌리면서 차용증을 쓰지 않고 이자를 지급하지 않았다면 과세 당국으로부터 약 3000만원의 증여세를 추징당할 가능성이 크다. 자녀가 부모에게 빌린 돈이며, 나중에 집을 팔면 갚을 계획이라고 설명해도, 빌렸다고 볼 만한 충분한 증거가 없으면 과세 당국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실제로 지난해 이런 일이 적지 않게 발생했다. 20대 중반인 직장인 A씨는 지난해 8월 서울에 있는 시가 10억원대 아파트를 구매했다. 자금의 80% 정도를 어머니에게 빌려 마련했다. 구청에 제출한 자금조달계획서에는 어머니에게 빌린 이 금액을 ‘차입금’으로 신고했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는 작년 10월 전수조사 과정에서 이런 사실을 발견했고 문제를 제기했다. 사실상의 증여인데 증여세를 피할 목적으로 차입금으로 신고했다고 판단하고 국세청에 통보했다. 

ⓒ일러스트 김세중
ⓒ일러스트 김세중

객관적 증거 없으면 ‘증여 추정’

우리 과세 당국은 가족 간 금전 거래에 ‘증여 추정’이라는 규정을 적용한다. 증여가 아니라는 객관적 증빙 자료가 없다면 증여로 보고 세금을 추징한다는 뜻이다. 편법적인 부의 대물림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국가의 의지다. 증여세를 피하기 위해서는 가족 간 금전 거래에서도 차용증을 작성하고 실제 이자를 지급해야 한다. 

단 과세 당국은 가족 간에는 10년 단위로 증여세를 일정 부분 면제한다. 부부간 증여는 6억원까지, 성인 자녀는 5000만원, 미성년 자녀는 2000만원까지는 증여세를 물지 않는다. 형제나 친족은 1000만원까지 증여세가 없다. 즉 이만큼의 증여만 ‘미풍양속’으로 본다는 얘기다. 

차용증이 뭘까? 통상적으로는 ‘금전소비대차계약서’를 차용증이라고 한다. 금전소비대차계약서에는 차용하는 금액과 이자율, 이자 지급 기일, 변제 기일 등이 기본사항으로 들어간다. 당연히 가족 간의 차용증에도 이런 사항이 명시돼야 한다. 물론 차용증에서 지급하기로 약속한 원금과 이자를 정해진 날짜에 실제로 지급해야 한다. 차용증에 공증을 받는다면 그 금전 거래가 사실임을 인정받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공증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과세 당국은 공증 여부를 갖고 거래의 진위 여부를 따지지는 않는다. 공증 여부보다 중요한 것은 차용증대로 이자 지급을 제대로 했는지, 대출금을 실제 상환했는지 등의 여부다. 

이자를 지급할 때는 현금이 아닌 계좌이체를 통해 명확한 기록을 남겨둬야 추후 객관성을 인정받아 증여세 부과를 피할 수 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세법에서 정한 법정 이자율인 4.6%에 해당하는 이자를 지급해야 추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최근 신용대출도 3%대 금리로 받을 수 있는 만큼 4.6%라는 금리는 꽤 비싸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이에 이자를 낮춰 내면 과세 당국은 덜 낸 이자를 증여에 포함시킨다. 

다만 여기서도 약간의 융통성이 발휘된다. 과세 당국은 덜 낸 이자의 총합이 연간 1000만원 이하라면 증여세 대상에서 제외해 주고 있다. 1년 기준으로 4.6%로 계산한 이자가 1000만원이 되려면 대여한 원금은 대략 2억1740만원 정도 된다. 즉 부모로부터 2억원 정도의 자금을 무상으로 빌리면 세법에서 규정하는 이자와 실제 지급한 이자의 차액이 1000만원에 미달하기 때문에 이자를 지급하지 않아도 과세 당국은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물론 아예 이자 거래가 없으면 당연히 증여로 간주될 수 있으니 소액이라도 돈을 빌려준 가족에게 이자를 주는 것이 좋다. 

덜 낸 이자 연 1000만원 이하면 ‘증여세 제외’

부모 소유의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경우는 어떨까. 무상 담보 제공 때 증여로 보는 금액을 계산하는 방법은 ‘대출 금액×(연 4.6%-실제 대출 이자율)’이다. 이 금액이 1000만원을 넘지 않으면 과세 당국은 증여로 보지 않는다. 가령 은행에서 연 3.5%로 10억원의 대출을 받는 경우라면, ‘10억원×(4.6%-3.5%)’로 1100만원이 나와 증여세 과세 대상이 된다. 하지만 부모와 자녀 간 증여 공제액인 5000만원을 초과하지 않아 실제로는 세금을 납부하지 않는다. 

최근 많이 이뤄지는 가족 간 부동산 매매 역시 과세 당국은 이를 증여로 추정한다. 물론 매매를 했다는 객관적 증빙을 제시한다면 증여가 아닌 매매로 인정받을 수 있다. 이때 자녀가 부동산 취득자금을 어디서 어떻게 마련했는지 증빙하는 것이 중요하다. 주변 시세에 비해 지나치게 낮은 가격에 거래하면 자녀가 혜택을 본 것으로 간주해 증여세가 부과될 수도 있다. 다만 자녀가 본 혜택(시가와 거래 금액의 차액)이 시가의 30% 이내이거나 3억원 미만일 경우 증여세를 피할 수 있다. 

과세 당국은 가족 간의 내밀한 금전 거래를 어떻게 파악해 세금을 부과할까. 기본적인 방법은 부동산 취득자금에 대한 출처 조사다. 주택을 취득한 사람의 연령과 직업, 소득 등을 따져봤을 때 자력으로 부동산을 구입했다고 보기 어려워 보이는 대상자를 골라낸다. 이때 자금 출처를 입증하지 못하면 증여세가 부과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과세 당국의 조사 과정에서 부모에게 정당하게 빌린 돈으로 아파트를 취득했고, 세법이 규정한 대로 이자 등을 지급하고 있음을 증명했다고 해도 국세청은 돈을 다 갚을 때까지 사후 확인 절차를 진행한다. 특히 국세청은 자녀가 취득자금으로 소명한 부채를 본인의 경제력으로 갚아 나가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본다. ‘하늘의 인연’ 외에도 천륜은 ‘부모 형제 사이에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라는 뜻을 갖고 있다. 사랑하는 자녀에게 부를 대물림할 때는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행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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