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협받는 대세론] ‘노무현’ 아닌 ‘문재인’ 택한 이낙연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20.06.29 10:00
  • 호수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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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당권 도전 초읽기, 친문·반대파 본격 검증대 올라

‘대세론’이란 말을 정확하게 정의하기란 어렵다. 정치권에서 간혹 마케팅 용어 ‘밴드왜건 효과(Band wagon effect)’를 사용하지만 뜻이 정확하게 맞진 않는다. 미국 서부 개척 시대에 선두에 서 행렬을 이끈 악대차(밴드왜건)에서 따온 이 말은 ‘유행에 따라 나도 모르는 사이 자연스럽게 물건을 사는 행위’라고 보면 된다. 총선·대선 등 굵직한 선거 때마다 지지 후보와 함께 당선 예상 후보를 묻는 것은 선거판에 밴드왜건 효과가 일정 부분 존재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대세론이 만들어지기 위해선 몇 가지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은 지지율 1위 후보가 끝까지 대세론을 유지하기 위한 조건으로 △튼튼한 조직과 당내 기반 △열성 지지층 존재 △국민들에게 가장 강력하게 침투할 수 있는 이슈 선점 △지지층 통합 △시대정신 제시 등을 꼽았다. 문재인 정부 초대 총리를 역임한 이낙연 의원은 현재 여러 여론조사기관에서 실시한 차기 대통령 선호도 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한길리서치가 6월9일 발표한 여권의 차기 대선후보 조사에서 이낙연 의원은 33.3%의 지지율을 얻어 2위 이재명 경기지사(14.5%)와는 더블스코어 차이를 냈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고)

총리 재직 시절부터 이 의원은 차기 대선 준비에 나섰다. 집토끼(민주당 지지층)를 잡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고, 그런 이유로 6년 만에 다시 국회로 돌아왔다. 선수(選數)로는 5선이지만 정치권에서 그가 국회의원을 한 번 더 하기 위해 의원 배지를 달았다고 보는 이는 없다.

ⓒ시사저널 박은숙
ⓒ시사저널 박은숙

전문가 모아 정책자문그룹 만들어

총선 이후 이 의원의 대권 행보는 좀 더 적극적이다. 최근 이 의원은 각 분야별로 정책 전문가 모임을 구성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의원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대권 행보에 나선 것은 앞서 설명한 ‘대세론’ 때문이다. 호남에 지역구를 둔 한 민주당 의원은 “일반당원과 달리 국회의원은 대세론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다. 민생당 의원들이 왜 지난 총선에서 유권자들에게 노골적으로 이낙연을 대통령으로 만들겠다고 말했겠는가. 그것도 상대 당인 민주당 사람을 말이다. 그게 대세론의 힘”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게시판에 들어가 보면 이 의원의 당 대표 도전을 지지하는 글이 많다. 이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원내 인사가 당권을 잡아야 당이 제대로 돌아간다’로 정리된다. 한 권리당원은 “원외 인사였던 황교안이 당 대표로 있던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의 전신)을 봐라. 얼마나 엉망이었는가”라고 주장했다.

이 의원의 대권 전략은 한마디로 ‘문재인의 길’이다. 쉽게 말해 당 대표를 거쳐 대통령이라는 최종 목표에 골인한 문재인 대통령을 롤모델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이 의원이 ‘7개월짜리 당 대표’라는 비난을 무릅쓰고 8월 전당대회 출마를 강행하려는 것도 당권을 잡아야 대권가도의 7부 능선을 넘을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이 의원의 원로그룹에서 활동하는 한 인사는 “민주당 당직자들에게 ‘이낙연 리더십’을 보여주기에 당 대표만큼 매력적인 자리도 없다”고 설명했다.

이 의원 지지 성향인 한 민주당 의원은 “이 의원의 리더십을 본격적으로 검증하려면 그에 걸맞은 자리가 있어야 하는데 당 대표라는 자리가 제격”이라고 밝혔다.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당 대표를 거친 후 대권을 잡았다는 점도 이 의원이 당 대표 출마를 결심한 이유다.

‘87체제’ 이후 보수·진보진영은 10년을 주기로 정권을 주고받았다. 세 차례 정권 재창출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전임자와 후임자 간 보이지 않는 갈등은 언제나 있었다. 이 의원이 가장 염려하는 것도 이 부분이다. 원내에 들어온 이후 이 의원은 유력 대선주자여서 그런지 언론을 대하는 태도가 굉장히 조심스러워졌다.

이천 물류창고 화재 설화(舌禍) 이후엔 더욱더 심하다. 정의기억연대 회계 부정 사건으로 윤미향 민주당 의원의 거취가 논란이 됐을 때도 “(관련 사항을) 엄중히 보고 있다”고 말했다가 논란이 일자 다음 날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식을 설명한 것”이라고 해명할 정도로 총리 시절처럼 화법이 명쾌하지 않다. 아무래도 문 대통령 또는 친문(親文)계와 대립각을 세우기에는 아직 확실히 여권 내에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고 판단한 것 같다.

2017년 5월16일 홍영표·우원식 의원이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표 선거를 앞두고 손을 맞잡고 있다. ⓒ연합뉴스
2017년 5월16일 홍영표·우원식 의원이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표 선거를 앞두고 손을 맞잡고 있다. ⓒ연합뉴스

일부 초·재선 “왜 대권주자가 당권까지 잡으려 하나?”

대세론은 ‘정치인 이낙연’에게 ‘유력 대권주자’라는 날개를 달아줬지만 반대로 그를 위험에 빠트릴 함정이기도 하다. ‘이카루스의 날개’와 같다고 할까. 총선 직후 민주당 일각에서 비대위 전환 요구 목소리가 나온 것은 이러한 대세론이 만든 부작용이다. 이해찬 대표가 8월 전당대회 개최 원칙을 밝히면서 논란은 사그라졌지만, 특정 대권주자에게 당 인사들이 줄서기에 나섰다는 비판을 피해 나갈 순 없었다.

대권주자가 7개월짜리 당 대표 출마에 연연하는 것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도 대세론에 대한 반작용으로 봐야 한다. 개혁 성향의 86세대(80년대 학번, 60년대생) 의원 모임인 ‘더좋은미래’(더미래)가 정기모임을 가졌던 지난 6월3일. 소속 의원 한 명은 대권주자의 당권 도전을 신중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뜻을 당 지도부에 건의하자는 의견을 냈다. 과열 경쟁을 우려해서였다. 이견이 있어 합의안까지 만들진 못했지만, 이날 더미래의 이러한 움직임은 얼마 못 가 NY(이낙연 의원)계의 반발로 이어졌다.

더미래 소속 한 의원은 “내년 3월 대권주자가 당 대표 자리에서 물러나면 우리 당은 또다시 전당대회를 치러야 한다. 더군다나 한 달 뒤인 4월에는 재보선이 열린다. 부산시장을 비롯해 우리 당 소속 울산시장, 경남·경기지사의 거취가 어떻게 결론 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4월 재보선이 ‘미니 총선’이 되면 부담이 커질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민주당 전국대의원대회준비위원회가 6월23일 회의에서 당 대표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퇴할 경우에도 최고위원의 임기는 보장해 주도록 하는 당헌·당규 개정을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한 것도 이러한 당내 분란을 우려해서다. 관련 조항이 바뀌는 것은 누가 봐도 이낙연 의원에게 유리하다.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한 재선 의원실 관계자는 “워낙 민감한 내용이기에 이번 전대(전당대회) 전에 관련 규정을 바꾸긴 힘들 것”이라면서 “만약 이낙연 의원이 당 대표에 오르면 가장 먼저 이 규정부터 바꾸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2018년 4월23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한 이낙연 총리(왼쪽), 김부겸 행안부 장관(가운데)이 문재인 대통령을 뒤따르고 있다. ⓒ연합뉴스
2018년 4월23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한 이낙연 총리(왼쪽), 김부겸 행안부 장관(가운데)이 문재인 대통령을 뒤따르고 있다. ⓒ연합뉴스

김부겸 “당 대표 되면 차기 대선 안 나가”

7개월짜리 당 대표는 이 의원의 가장 아픈 부위다. 그 약점을 제대로 공략한 이가 바로 김부겸 전 의원이다. 2년 전 전당대회 때 당 대표 출마를 저울질하다 때를 놓친 김 전 의원은 이번 전대에 배수진을 쳤다. 대구 수성갑에서 재선에 실패한 김 전 의원으로선 4년간 원외 생활을 해야 하는데, 현실 정치인에게 4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더군다나 중간에 끼어 있는 대선판은 정치 지형을 송두리째 뒤흔들 변곡점이다.

지난 총선 기간 중 이미 대권 도전 의사를 밝혔기에 김 전 의원 주변이나 상당수 민주당 의원은 그가 당권을 거치지 않고 대선으로 직행할 것으로 봤다. 이낙연 의원이 홍영표·우원식 의원 등 다른 당권주자와 회동을 가지면서도 김 전 의원과의 면담 일정을 잡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이 의원과 가까운 한 인사는 “내각에 있을 때 총리(이낙연)와 장관(김부겸)으로 손발을 맞춰 두 사람 사이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김 전 의원을 무시했다기보다는 그가 대선으로 직행할 거라고 봐 별도 만남을 갖지 않은 것”이라며 두 사람 간 불화설을 부인했다.

아직 당권 도전을 공식 선언하진 않았지만, 김 전 의원은 우원식·홍영표 의원 등 다른 당권주자와 만난 자리에서 “당 대표에 오르면 2년 임기를 다 채우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당권 도전 성공’이라는 단서조항이 붙었지만, 경우에 따라 차기 대선에 나서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김 전 의원은 여권에 난공불락과 같은 TK(대구·경북)에 기반을 두고 있는 유력 정치인이다. 강성 친문계가 갈망하는 ‘비호남권 주자’로서 기본은 갖춰져 있다.

 

박원순·이재명계, 반NY 세력 구축 예상

현재 구도만 놓고 보면 김 전 의원은 이낙연 의원에게 여러 면에서 한참 밀린다. 앞서 실시한 한길리서치 조사에서 김 전 의원은 지지율이 2.2%에 불과했다. 더군다나 김 전 의원은 문재인 정부에서 행정안전부 장관으로 일해 한동안 당을 떠나 있었다. 그만큼 당내 우군이 많지 않다. 한나라당에서 의원 생활을 시작해 ‘독수리 5형제(2003년 7월 한나라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여한 이부영·김부겸·안영근·김영춘·이우재 전 의원을 지칭) 콤플렉스’도 말끔히 지우지 못했다.

당 대표 2년 임기 완주를 내세운 김 전 의원의 전략은 ‘언더독’이다. 투견판에서 아래에 깔린 개(Underdog), 다시 말해 지고 있는 개가 이기기를 바라는 동정표에 기초를 둔 전략이다. 이낙연 의원이 ‘문재인의 길’을 가고 있다면, 김 전 의원의 목표는 ‘노무현의 길’이다. 노 전 대통령은 2001년 3월 해양수산부 장관에서 물러난 뒤 그해 12월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이듬해 3월 광주 지역 경선에서 동교동계의 지지에 힘입어 당시 대세론을 형성하고 있던 이인제 후보를 누르는 대이변을 연출했다. 장관 사퇴부터 대선후보 1위까지 딱 1년 걸렸다.

참고로 김 전 의원은 1997년 노 전 대통령과 함께 깨끗한 정치자금을 마련한다는 취지로 한우고깃집 ‘하로동선’을 운영했다. 당시 가게 운영에는 김원기 전 국회의장, 유인태·원혜영 전 의원 등도 함께했다. 현재로선 이들이 김 전 의원의 정치적 우군이다. 조정식 정책위의장과 백원우 민주연구원장 직무대행(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은 김 전 의원과 함께 고(故) 제정구 의원을 정치적 스승으로 삼고 있다.

민주당 내에서 김 전 의원의 당권 도전을 예의주시하는 이유는 그가 반(反)NY계의 중심축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경기지사 등 원외 인사들은 이 의원이 당권마저 거머쥐는 것을 크게 우려한다. 이 때문에 이들이 김 전 의원을 대항마로 내세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민주당 내에 따르는 이가 많은 정세균 총리와의 연대설도 끊이지 않고 있다.

두 사람을 뺀 나머지 당권주자들의 셈법은 복잡하다. 홍영표 의원은 친문 핵심들이 모이는 ‘부엉이 모임’, 우원식 의원은 ‘민평련’과 가깝다. 하지만 민주당 당 대표 선거에는 상위 3명만 결선투표에 나설 수 있다. 4위 이하는 컷오프된다. 당초 출마를 고려했던 송영길 의원은 “이낙연 의원이 당 대표 선거에 나설 경우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혔기 때문에 혹시 모를 내년 3월 임시전당대회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이낙연 지지 놓고 친문도 의견 엇갈려

민주당 당권 경쟁의 가장 큰 변수는 당내 최대 계파인 친문계가 누구 손을 들어주느냐다. 아직까지는 대세론이 약발을 받고 있다. ‘어대낙’(어찌 됐든 대표는 이낙연)이라는 말도 그래서 나온다. 김택환 경기대 특임교수는 “현재 민주당 대선 구도에서 중도표까지 가져올 만한 경쟁력을 갖춘 후보는 이낙연 의원밖에 없다”면서 “정권이 후반기로 갈수록 정권 재창출이 중요해지기 때문에 이 의원의 구심력은 더 커질 것”이라고 봤다.

정치권에선 친문 PK(부산·경남)의 핵심인 최인호 의원이 6월1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내년에 전당대회를 다시 열어야 한다는 이유로 특정 정치인에게 전당대회에 나서지 말라는 것은 무책임한 배제”라고 밝힌 것을 의미 있게 본다. 하지만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 등 또 다른 친문계는 차기 대권을 둘러싼 당내 경쟁을 예의주시하고 있을 뿐 아직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이 의원은 6월24일 민주당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회 활동을 마무리한 만큼 조만간 본격적인 당권 도전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김 전 의원을 비롯해 다른 당권주자들도 비슷한 상황이다. 이 의원과 김 전 의원은 당초 6월 중 당권 도전을 선언할 계획이었지만, 남북관계가 급박하게 돌아가면서 발표 시기를 7월초로 미뤘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센터장은 “대선을 2년 앞두고 새롭게 등장해 성공을 거둔 이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라면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실패한 케이스다. 현재 여권에서 새로운 인물이 대권주자로 부상하기는 힘들다”면서 “이낙연 의원으로선 ‘정치 지도자 이낙연’이 갖고 있는 어젠다를 정확하게 유권자에게 어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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