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인가 노동착취인가…플랫폼을 둘러싼 불편한 진실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0.07.09 10:00
  • 호수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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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미국은 ‘혁신의 상징’ 우버를 규제했을까
관련 통계 집계조차 안 돼…노동법 파괴하는 ‘파괴적 혁신’ 논란 

“여기 도둑이 산다(A thief lives here).” 지난 6월24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우버의 최고경영자(CEO) 다라 코스로샤히 자택 앞에 등장한 플래카드 문구다.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인 건 우버의 운전기사 50여 명이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시위에 나선 우버 운전기사들이 코로나19 영향으로 주택담보대출 원리금이나 집세를 제대로 내지 못해 재정적으로 낭떠러지 끝에 위태롭게 서 있다고 전했다. 

우버 운전기사들이 자신들의 재정난을 우버 CEO에게 항의하는 것은 정당한 항의일까? 차량 공유업체인 우버는 미국에서 ‘긱 이코노미(gig economy)’의 상징이다. 긱 이코노미는 정규직을 쓰는 대신 필요에 따라 단기 임시·계약직 형태로 고용하는 방식의 경제를 뜻한다. 우리에게는 ‘플랫폼 경제’나 ‘공유경제’로 익숙한 개념이다. 한국에서는 배달·택배 노동자가 대표적인 플랫폼 노동자라고 할 수 있다. 

라이더유니온 조합원들이 서울 강남역에서 플랫폼 노동에 정당한 노동법 적용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라이더유니온 조합원들이 서울 강남역에서 플랫폼 노동에 정당한 노동법 적용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캘리포니아 주정부 “플랫폼 노동자는 노동자”

최근 미국에서는 우버와 같은 플랫폼 기업들을 규제하는 조치가 줄을 잇고 있다. 하비에르 베세라 캘리포니아주 법무부 장관은 6월24일(현지시간) “차량 공유업체 1위와 2위인 우버와 리프트가 플랫폼 노동자인 운전기사를 노동자가 아니라 ‘독립 계약자(자영업자)’로 분류하고 있는 것은 불법이니만큼 이를 즉시 멈춰야 한다”며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다. 

베세라 법무부 장관은 “우버와 리프트가 자신들의 책임과 자신들을 성공하게 만든 사람들, 즉 노동자들을 인정해야 할 때”라면서 “노동자를 독립 계약자로 잘못 분류하는 것은 사용자로서 부담해야 할 비용(최저임금·유급휴가·실업보험 보장 등)을 노동자와 납세자에게 떠넘기는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는 우버와 리프트가 각각 운전기사들을 자신들의 편의대로 분류해 지난 5년간 주 실업보험기금에 내야 할 4억1300만 달러(약 5000억원)를 회피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법원의 심리는 오는 8월6일 열릴 예정이다.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이렇게 나선 배경에는 ‘AB5(Assembly Bill 5)’라고 불리는 법안이 자리한다. 고용 관련 법인 AB5는 그동안 자영업자처럼 ‘독립 계약자’ 자격으로 일해 왔던 기존 계약직·임시직 노동자가 ‘일정 조건’을 갖춘 경우 ‘정규직’으로 채용해 제대로 된 임금과 복지 혜택을 주라는 내용을 핵심으로 한다. 지난해 통과돼 올해 1월1일부터 시행됐다.  

AB5법이 말하는 ‘일정 조건’은 ‘ABC 테스트’라 불리는 세 가지 요건을 뜻한다. 독립 계약자로 인정받으려면 ①일을 할 때 사용자의 지휘·감독으로부터 자유롭고 ②직원이 회사의 핵심 업무를 수행하지 않고 ③스스로 독립적인 고객층을 갖는 등 해당 사업에서 별도의 독립된 사업·직업을 가져야만 한다. 이 세 가지 요건을 하나라도 충족하지 못하면 해당 직원은 독립 계약자가 아닌 노동자로 분류되며, 해당 회사는 최저임금에 초과근무수당, 건강보험과 유급휴가 등을 모두 챙겨주는 직원으로 노동자를 고용해야 한다. 

투자은행 바클레이스는 AB5법이 적용될 경우 우버에 캘리포니아주에서만 매년 5억 달러(약 6000억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운전기사 1인당 연간 3625달러(약 435만원)를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는 얘기다. 리프트는 매년 2억9000만 달러(약 3500억원)를 더 부담해야 한다. 

이에 대한 평가는 분분하다. AB5법이 본격 시행된다면 수많은 유니콘(기업 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 스타트업)을 낳은 ‘혁신’의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있는 반면, 누군가는 혁신이라는 이름 아래 침해당해 온 노동 기본권을 회복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최근 미국과 유럽 등에선 후자를 지지하는 목소리가 점차 힘을 얻고 있다. 우버가 운전기사 1인당 연간 추가로 납부해야 하는 약 435만원이라는 금액이 바로 우버 혁신의 본질이며, 그것은 바로 노동법을 어긴 결과값이며, 이를 다양한 혁신의 서사로 교묘하게 감추고 포장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바로 그것이다. 

 

파괴적 혁신의 본질, 노동법 회피

이 문제를 가장 적극적으로 공론화하며 제기하고 있는 인물이 바로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 제레미아스 아담스-프라슬이다. 그는 저서 《플랫폼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에서 플랫폼 기업들이 규제를 회피하고 사회적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감언이설을 꾸며내고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플랫폼 기업들이 노동에 가짜 이름표를 붙여(플랫폼 기업을 중개자로, 노동자를 법적 규제를 받지 않는 독립적 기업가로) 노동법을 농락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배달 노동자라는 말 대신 라이더 등으로 부르는 것은 노동자를 독립 계약자로 계약상 재분류함으로써 노동법을 따돌리기 위해 고안된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플랫폼 기업들이 자신들을 ‘규제를 통해 공고한 기득권을 누리는 골리앗과 싸우는 디지털 다윗’처럼 꾸며내고 있는데, 이는 노동법 등을 규제 당국으로부터 받지 않기 위해 만들어낸 서사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혁신은 점점 더 완전히 다른 어떤 것을 가리키는 암호가 되고 있다. 바로 법을 어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차량 호출서비스 ‘타다’ 기사를 법적 노동자로 봐야 한다는 중앙노동위원회 행정심판 결과가 나왔지만 아직 한국에서는 이런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지 않다. 그동안 일자리 통계에 목매온 정부는 지금껏 이런 플랫폼 노동의 확산을 굳이 막지 않았다. 어떤 사회적 보호가 필요한지에 대한 논의에도 적극적이지 않았다.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등에서 관련한 쟁점을 몇 차례 다루긴 했지만, 선언적 의미의 결과물을 도출하는 데 그쳤다. 

문제는 그사이 우리의 플랫폼 노동자들이 저임금과 불안정한 고용상태 등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종속적인 지위에서 개인적으로 노무를 제공하는데도 노동법은커녕 사회보험조차 적용받지 못하는 상태로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있다. 근로계약 대신 도급, 용역 등의 형식으로 계약을 맺어 분쟁이 벌어지면 자영업자로 취급돼 노동자로서의 보호도 받기 어렵다. 대다수는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못해 일을 하지 못하게 되더라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도 없다.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원이 발표한 ‘한국의 플랫폼 노동과 사회보장’ 보고서를 보면 국내에서 플랫폼 노동자로 분류된 사람들 가운데 일하는 방법, 노동시간·장소 등에 대한 지시나 규율을 받는 이들은 53.5%에 달한다. 

하종강 성공회대 교수는 “기업이 마땅히 부담해야 할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오히려 더 철저한 자본주의적 시각일 수 있다”면서 “전형적인 시장경제 자본주의 체제인 미국에서 왜 AB5법을 도입했을지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기업이 비용을 부담하지 않으면 그걸 사회 전체가 부담해야 한다. 결국 그건 시민의 세금으로 돌아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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