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우 송환 불허 결정문 뜯어봤더니
  • 유지만 기자 (redpill@sisajournal.com)
  • 승인 2020.07.07 21:0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수사 끝난 사안에 “추가수사 필요” 이유로 인도 불허
“해외에도 피해자 존재하는 상황인데 왜 보내지 않나”
“검찰 기소 부실해 송환거부 빌미 됐다” 비판도

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 ‘웰컴투비디오’ 운영자인 손정우(24)씨를 미국에 강제송환하지 않기로 판단한 법원의 결정문을 두고 비판이 거세다. 국내에서 손씨에 대한 수사와 처벌이 사실상 종료되다시피 했음에도 강제송환을 불허하면서 재판부가 오히려 손씨를 감쌌다는 것이다. 재판부가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결정을 내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검찰의 부실한 기소가 강제송환 불허의 빌미가 됐다는 비판도 제기한다. 검찰은 손씨를 재판에 넘기면서 범죄수익은닉 혐의로는 기소하지 않았다. 재판부 역시 결정문에서 검찰이 기소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현행 범죄수익은닉규제법이 암호화폐를 통한 자금세탁에 대해 제대로 작동하기 힘들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고법 형사20부(강영수 부장판사)는 6일 손씨에 대한 범죄인 인도 심사 심문에서 손씨를 인도 청구국인 미국에 인도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범죄인 인도 청구를 낸 법무부는 법원 판단에 따른 후속조치를 논의하고 있다.

세계 최대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 손정우씨의 미국 송환 여부를 결정하는 범죄인 인도심사 세 번째 심문이 열린 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 마련된 중계 법정. ⓒ연합뉴스
세계 최대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 손정우씨의 미국 송환 여부를 결정하는 범죄인 인도심사 세 번째 심문이 열린 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 마련된 중계 법정. ⓒ연합뉴스

“손정우 송환 불허는 정당한 처벌 기회 내팽개친 것”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손씨 측이 주장한 인도 불허 사유에 대해서는 모두 기각했다. 우선 손씨 측이 주장한 “미국에서 아동 음란물 혐의 등으로 처벌받지 않는다고 보증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한미 범죄인인도) 조약은 체약당사국의 협의를 통해 체결된 것이므로 당사자인 국가에 대해 구속력을 가지고, 체약당사국은 조약을 성실하게 준수할 법적 의무가 있다”며 별도의 보증은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또한 손씨가 한국에서 저지른 범죄이기 때문에 국내에서 재판받아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범죄인의 소재지는 물론 ‘웰컴투비디오’ 사이트 회원의 국적이나 소재지, 암호화폐 거래소 소재지, 서버 소재지 등에 상관없이 ‘다크 웹’과 암호화폐 거래소 등에 접속이 가능한 네트워크가 연결된 곳이라면 어느 곳에서든 (범죄가)발생할 수 있다”며 “범죄지가 체약당사국간 범죄인 인도 여부를 좌우할 본질적이고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국제적으로 벌어진 범죄라는 점을 인정한 셈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아동·청소년범죄 근절을 위해서는 손씨를 한국에 있도록 해야 한다는 논리로 강제송환 불허를 결정했다. 현행 범죄인인도법에서는 △정치적 성격의 사건이거나 △절대적 사유 또는 △임의적 사유가 존재하는 등 크게 3가지 사유로 인도를 불허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재판부가 제시한 사유는 3번째인 ‘임의적 사유’에 해당한다.

재판부는 “우리사회의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 관련 범죄의 악순환적 연결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다크웹’에 개설된 세계적 규모의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 전용 웹사이트 운영자였던 범죄인의 신병을 대한민국에서 확보하여 관련 수사활동에 필요한 정보와 증거를 추가적으로 수집하고 이를 수사과정에 적극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어 “범죄인이 청구국으로 인도된다면 범죄인의 신병을 확보하지 못한 대한민국에서는 ‘웰컴투비디오’ 국내 회원들에 대한 수사가 현 단계에서 미완의 상태로 마무리되거나 그 진행에 지장이 생길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사실상 손씨가 한국에 남아있어야만 추가적인 수사와 처벌이 가능하다는 논리를 펼친 것이다.

하지만 이는 재판부가 국적을 가리지 않는 디지털성범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현재 손씨에 대한 국내법상 수사와 처벌이 거의 다 이뤄졌다는 점을 간과한 판결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승재현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재판부의 판단에 대해 “디지털성범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판단”이라고 지적했다. 승 위원은 “손정우에 대한 수사와 증거수집은 이미 18개월의 실형이 선고된 재판에서 모두 끝났다. 사실상 추가적인 수사나 기소를 할 수 있는 여지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현재 남아있는 손씨에 대한 혐의는 손씨 아버지가 ‘셀프 고발’ 한 범죄수익은닉 혐의 뿐”이라고 지적했다.

성범죄를 주로 다루는 한 법조인은 “손씨에 대한 수사는 이미 경찰과 검찰에서 종결된 것이다. ‘웰컴투비디오’ 국내 회원에 대한 수사는 손씨를 통해서가 아니라 국제 사법공조와 디지털 증거분석을 통해서 진행하는 것”이라며 “손씨를 국내에 남도록 한 것은 디지털성범죄 발본색원에 도움도 되지 않을뿐더러, 정당하게 처벌할 수 있는 기회마저 내팽개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검찰의 기소가 부실해서 강제송환 불허의 빌미가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검찰은 2018년 손씨를 기소하면서 범죄수익을 추징·몰수했지만 자금세탁 혐의로는 기소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검찰이) 추가수사를 통해 인도범죄가 된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의 점을 기소했더라면 범죄인으로서는 당초 기소된 범죄에 대한 재판과정에서도 예측하지 못한 범죄인 인도 절차에 놓이지 않았을 것”이라며 검찰을 에둘러 지적했다. 이에 대해 승재현 연구위원은 “미국의 ‘자금세탁방지법’은 암호화폐에 대해서도 엄격하게 혐의를 적용해 처벌이 가능하지만, 국내법에서는 암호화폐의 가장·은닉(자금세탁)에 대한 공소유지가 매우 어렵다”며 “관련 법규정이 미비한 상태라 검찰이 기소를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 검사출신 변호사는 “범죄수익을 추징하거나 몰수하는 경우는 많지만 자금세탁은 자금의 은닉을 입증하기 굉장히 까다로울뿐만 아니라 관련 법조항도 상당히 복잡하다”며 “재판부의 판단은 국내 사법체계의 현실을 도외시한 채 실현되기 힘든 부분을 핑계 삼아 손씨를 풀어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