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개입 관찰카메라 전성시대의 명과 암
  • 정덕현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7.11 12:00
  • 호수 160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선한 영향력만큼 사회적 책임도 함께 고민해야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은 관찰카메라라는 형식과 백종원이라는 요리연구가이자 사업가의 만남이 절묘한 시너지를 내는 프로그램이다. 골목상권을 살린다는 취지로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실제 방송을 통해 큰 성공을 거둔 사례들을 내놓으면서 화제가 됐다. 상권을 분석하고 가게가 더 잘될 수 있게 잘못된 점을 지적해 주며 새로운 솔루션까지 제공하는 백종원은 화제의 중심에 선 인물이다. 텅 비었던 골목이 손님들로 가득 채워지는 그 광경은 그래서 ‘백종원의 기적’이라 불리기도 했다. 여기에 장사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이나 태도까지도 짚어주니 백종원은 가게와 골목을 살리는 걸 넘어 사람까지 만들어주는 요식업계의 큰 스승처럼 자리매김하게 됐다.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의 한 장면 ⓒSBS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의 한 장면 ⓒSBS

백종원은 이 프로그램의 성공과 더불어 SBS에서 《맛남의 광장》을 통해 지역 특산물들을 유통과 연결해 소비를 촉진시켜주는 프로그램까지 만들었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와 계기들이 있겠지만 적어도 백종원이 자신이 가진 ‘선한 영향력’을 방송과 더불어 하려는 그 진심만은 분명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백종원의 골목식당》은 이러한 그의 진심과는 상관없이 그간 참 많은 논란이 쏟아져 나온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어째서 저런 가게가 선정돼 솔루션을 받고 있느냐는 대중의 질타가 이어진 적도 있었다. 백종원이 분노할 때마다 시청자들의 분노가 폭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제기되는 논란은 이런 흐름과는 사뭇 성격이 다르다. 방송이 지나치게 자극적인 편집을 의도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여름특집으로 마련된 ‘긴급진단’의 경우 서산 해미읍성 돼지찌개집은 자극적인 편집의 예고를 보여준 후 2주가 지나서야 그 내용을 방송함으로써 시청자들의 원성을 샀다. 일종의 ‘낚시질’이라는 비판이다. 게다가 해당 돼지찌개집 사장님은 방송에 의해 일방적으로 매도당했다며 한 유튜버의 방송에 출연해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 유튜버의 방송에는 이 프로그램에 나왔다가 질타를 당했던 홍제동 팥칼국수집 사장님이 그간 엄청난 악플의 고통을 호소하며 눈물로 사죄하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물론 진위가 어떤지 알 수는 없지만 이제 《백종원의 골목식당》에 방송된 내용이 실제와는 다르다는 호소가 유튜브 방송을 통해 전해지는 건 그 자체로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이건 무얼 말해 주고 있는 걸까.

MBC 《공부가 머니》의 한 장면 ⓒMBC
MBC 《공부가 머니》의 한 장면 ⓒMBC

솔루션 방송의 힘과 그 양면성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 포방터시장은 이 프로그램의 성취를 보여주는 성지 같은 곳이다. 그곳에서 두 가게가 스타로 등극했다. 하나는 돈가스집이고 다른 하나는 홍탁집이다. 돈가스집은 모범의 전형을 보여줬고 홍탁집은 빌런(악당)에서 시작해 개과천선한 인물의 전형을 보여줬다. 하지만 최근 이곳에서 벌어진 일들은 방송과 현실 사이에 얼마나 큰 괴리가 있는가를 드러내준다. 돈가스집은 너무 많은 손님이 몰려와 결국 포방터시장을 떠나 제주도에 자리 잡았고, 홍탁집은 백종원이 일종의 ‘졸업’을 선언하는 그 순간부터 방심한 것인지 위생점검에서 바닥을 찍었다(물론 이 내용도 방송에서 보여준 것이다). 방송이 실제 현실(포방터시장 골목상권)을 바꿔놓았지만 그 결과는 그 골목상권에 좋게만 작용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이처럼 방송이 관찰카메라에 전문가의 솔루션을 더해 현실에 개입하기 시작하고 그 현실을 심지어 바꾸는 모습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했다. MBC 《공부가 머니》, KBS 《개는 훌륭하다》, 새로 시작한 tvN 《신박한 정리》 같은 프로그램들이 그렇다. 하지만 이처럼 관찰카메라가 바꾸는 현실에는 서로 다른 사정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는 점에서 위험성을 내포한다. 즉 전문가의 지적은 지적받는 이들을 ‘빌런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다. 방송은 이런 시청자들을 뒷목 잡게 하는 빌런들의 등장을 좀 더 극적으로 편집해 보여줌으로써 시청률과 화제성을 가져간다. 하지만 그건 다른 말로 하면 솔루션을 빙자해 출연한 일반인들을 소비하고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KBS 《개는 훌륭하다》의 한 장면 ⓒKBS
KBS 《개는 훌륭하다》의 한 장면 ⓒKBS

일반인을 소비한다는 위험성

최근 KBS 《개는 훌륭하다》에서 보더콜리견 코비와 담비가 출연했던 방송은 시청자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고 급기야 동물 학대 논란까지 만들었다. 입질이 심한 코비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어린 담비를 보고는 강형욱 훈련사가 무릎까지 꿇고 담비를 다른 좋은 곳으로 보내자고 했지만 그러지 못한 보호자의 모습이 나가게 되면서였다. 방송에서 보호자는 결국 “고민하겠다”고 했지만 그 이야기는 “보내지 않겠다”는 식으로 오인되어 이들에 대한 악플과 비난이 쇄도하게 됐다. 다음 방송분에 보호자는 코비를 교육시키고 담비는 다른 곳으로 입양 보내기로 결정했다는 통화 내용이 나왔지만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까지 올라온 청원글 때문에 경찰이 이 집을 내사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관찰카메라에 전문가의 솔루션이 더해지는 방식은 사실 새로운 건 아니다. 본래 관찰카메라는 교육이나 상담 분야에서 전문가들의 솔루션을 더하는 방식으로 활용돼 왔다. 그럼에도 관찰카메라가 예능의 트렌드로 들어오기까지 꽤 긴 시간이 필요했던 건 이 형식이 갖는 위험성과 불편함이 만만찮았기 때문이다. 사생활 노출의 문제도 컸고, 무엇보다 편집에 따라 달리 보일 수 있는 방송의 문제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MBC 《나 혼자 산다》처럼 오락적인 방식으로 소비되던 관찰카메라는 어느 순간부터 전문가가 투입되어 현실에 변화를 일으키는 본래의 방식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관찰카메라에 전문가의 솔루션이 더해지는 방송은 현실에 개입한다는 점에서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그 힘이 선한 영향력으로 발휘될 때는 한없이 긍정적이지만 자칫 저마다의 사정과 취향이 다른 이들을 타깃으로 해 빌런화했을 때는 그 폐해 역시 만만찮을 수 있다. 이제 하나의 방송 트렌드로 자리한 ‘전문가의 솔루션이 동반된 관찰카메라’ 프로그램이 그 막강해진 힘만큼 사회적 책임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하는 이유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