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인들은 왜 푸틴에 열광할까
  • 김선래 한국외국어대학교 HK 연구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7.22 11:00
  • 호수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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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맞서던 강한 나라 그리워해…푸틴의 강한 리더십 외 대안 없다고 봐

7월1일 러시아 개정헌법에 대한 국민투표가 실시된 결과, 67.88%의 투표율과 78.56%의 찬성으로 개정헌법이 가결되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이번 투표는 완전한 승리로 사실상 푸틴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보여준다”고 논평했다. 이로써 올해 초 신년 국정연설에서 푸틴 대통령이 제안한 헌법 개정 절차가 마무리돼 사실상 푸틴 대통령의 종신집권이 가능해졌다. 

크렘린은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다. 시베리아 크라스노야르스크시는 투표자 경품으로 아파트 10채를 제공했으며, 모스크바는 약 1600억원 규모의 경품권을 뿌렸다. 스마트폰과 자동차를 경품으로 내건 지자체도 있었으며, 공무원과 국영기업체 임직원들을 동원해 홍보하게 하는 등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여러 방법을 사용했다. 특히 투표 시작 전인 6월24일에는 러시아 전승기념일 퍼레이드를 전국 주요 도시에서 개최했고, 크렘린 붉은광장에서 다양한 무기와 육·해·공군 무력을 과시함으로써 강력한 러시아, 위대한 러시아 건설을 위한 푸틴 정부의 필연성과 당위성을 대대적으로 선전하기도 했다.

일사천리로 이뤄진 개헌으로 지난 2000년 러시아 대통령에 처음 취임한 푸틴은 2008년 잠깐 최측근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에게 대통령직을 넘긴 4년을 제외하고(이 4년 동안에도 푸틴은 총리로서 사실상 러시아를 통치했다) 32년간 러시아 통치가 가능해진다. 이는 구소련 때의 이오시프 스탈린 31년,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18년의 통치기간을 초월한 역대 지도자 중 최장기 집권하게 되는 것이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6월24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열병식을 마치고 붉은광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6월24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열병식을 마치고 붉은광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러시아 역사에서 장기집권 거부감 없어

이번 개정헌법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대통령에 관한 조항으로, 동일 인물이 세 번 이상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없다고 규정해 개정헌법하에서 장기집권 가능성을 차단했다. 다만, 현재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거나 이미 수행한 사람의 기존 임기는 고려되지 않는다는 조항을 넣어 현 대통령인 푸틴의 장기집권 길을 활짝 열어놓았다. 현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2024년 개정헌법하에서 치르는 선거를 통해 푸틴이 대통령직에 다시 선출되면 2030년 연임에 성공한다고 가정할 경우, 최대 2036년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게 된다. 러시아 대통령 임기는 6년이다. 따라서 임기가 끝나는 2036년에 푸틴 대통령의 나이는 84세가 된다.

러시아의 야당과 반정부 인사들은 개정헌법이 푸틴 정부의 장기집권 술수라고 비난하면서 국민투표에서 반대표를 던지거나 선거를 보이콧할 것을 주문했으나, 개정헌법에 대한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등에 업은 푸틴 정부에 대한 견제력은 한계에 부딪혔다. 일부 반정부 활동가들은 푸틴이 권좌에서 내려오는 2036이라는 숫자를 붉은광장에서 몸으로 표시하거나 1인 피켓 시위를 이어갔다. 수백 명의 반푸틴 시위대가 모스크바 중심에서 시위를 벌였으나, 경찰은 예전과 같이 강경 진압하지 않았다. 야권은 오는 9월에 있을 러시아 지방선거에서 현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러시아에서 야당의 존재감은 매우 미약하기만 하다.

푸틴 대통령의 지지율은 2014년 크림반도를 합병한 직후 수직으로 상승해 줄곧 80%대를 유지하다가, 2018년 연금개혁에 반발한 국민들의 불만으로 현재 60%대를 유지해 오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과의 갈등, 대(對)러시아 경제제재 조치, 국제유가 하락으로 인한 재정수지 악화,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제 침체 등과 같은 악재에도 다수의 러시아 국민은 푸틴 이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장기집권의 폐해로 나타나는 민주주의의 후퇴와 국민의 권리와 인권이 제한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데도 러시아인들이 푸틴에 대한 지지를 지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러시아 국민 중 많은 사람들은 그를 제정러시아 황제 표트르 대제에 비유한다. 푸틴은 러시아의 영광스러웠던 과거를 기억 속에서 끌어내 위대한 러시아, 강한 러시아의 자부심을 국민에게 심어주는 데 주력했다. 국민들은 그가 위대한 러시아를 이룩할 지도자라고 믿고 있다. 1990년대 소련 붕괴 이후 급격한 체제 변화 과정에서 발생한 무질서와 경제 파탄을 푸틴이 2000년 집권 이후 바로 세웠다는 점을 평가하고 있다. 그가 재임한 지난 20년 동안 민주주의의 후퇴, 언론탄압, 인권침해 등과 같은 문제들이 불거졌지만, 러시아인들은 혼란과 무질서를 극복하고 경제 성장과 안정을 가져왔다는 점을 더 높이 평가하는 셈이다. 무엇보다 러시아 역사에서 장기집권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는 점과 참여민주주의의 전통이 약하다는 점도 국민들이 한 사람에게 권력을 집중시켜주는 데 그다지 걸림돌이 되지 않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7월11일 러시아 하바롭스크에서 시민들이 푸틴의 정적인 야당 소속 주지사 체포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연합뉴스
7월11일 러시아 하바롭스크에서 시민들이 푸틴의 정적인 야당 소속 주지사 체포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연합뉴스

경제 침체 장기화와 코로나 대처 능력 ‘뇌관’

그렇다면 과연 푸틴은 지금의 예상대로 무난히 2036년까지 권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러시아가 갖는 특유의 상황을 본다면, 현재로선 그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게 사실이다.

첫째, 러시아 국민들은 무엇보다 미국 제일주의로 재편된 지금의 세계 질서에서 과거 미·소(러) 양강 구도를 형성했던 강한 러시아를 그리워한다. 그를 위해선 푸틴과 같은 강력한 리더십으로 단합된 국가의 힘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소련 붕괴 트라우마가 있는 러시아인들은 서방세계의 공격과 포위 공세에 대항해 맞설 수 있는 강한 지도자로 푸틴을 선택하는 것 외엔 다른 대안이 없다고 생각한다.

둘째, 푸틴 대통령을 대체할 인물도 딱히 없다. 2017년 대선 때 푸틴 대통령과 경쟁한 야당 지도자는 지리놉스키(자유민주당), 파벨 그루디닌(러시아연방공산당), 야블린스키(야블리카당), 알렉세이 나발리(진보당) 등이다. 이 가운데 그나마 파벨 그루디닌만 두 자릿수 지지율(11.80%)을 기록할 뿐, 나머지는 의미가 없을 정도다. 푸틴 대통령은 개인적으로 내면화된 강한 의지와 열정 이외에 대중을 대하는 부드러움과 단호함이 있다. 이러한 개인적 캐릭터를 러시아인들이 좋아한다.

셋째, 러시아 국민들의 러시아 행정부에 대한 지지도와 푸틴 대통령 개인에 대한 지지도는 그 인식에서 차이가 나타난다. 러시아 행정부의 무능과 비효율성을 비판하면서도 푸틴 개인에 대한 호감도는 다르게 보고 있다.

물론 푸틴 정부의 취약성은 곳곳에 포진되어 있다. 고질적인 병폐의 하나인 관료계급의 무능력과 부패 그리고 석유 자원에 치중된 경제구조 문제 등이다. 미국과 서방 진영의 전방위적인 경제제재 조치로 인한 경제 침체도 심각한 뇌관이다. 국민들의 삶의 질 하락과 국제유가의 하락으로 인한 국가 재정위기, 중앙과 지방의 불균형 발전과 경제적 격차 심화 현상 등이 한꺼번에 폭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 발생한 코로나19 사태는 러시아 정부의 무능력과 비효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앞으로 코로나 사태를 포함해 국민의 요구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푸틴의 장기집권 가도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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