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시브 투자 가고 액티브 투자 되살아나나
  • 이승용 시사저널e. 기자 (romancer@sisajournal-e.com)
  • 승인 2020.07.23 08:00
  • 호수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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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이후 개미투자 열풍 가속…인덱스 투자보다 ‘종목’에 집중

‘동학개미’ ‘로빈후드’ ‘부추’…. 최근 주식투자에 뛰어든 개미투자자들을 일컫는 말로 한국(동학개미), 미국(로빈후드), 중국(부추)의 신조어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주식투자 열풍이 뜨겁다는 방증이다. 개미투자자들이 주식시장에 입성하는 배경은 크게 다르지 않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각국 정부가 금리를 낮추고 돈을 풀자 자금이 증시로 흘러들고 있는 것이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6월(6월26일 기준)까지 우리나라 증시로 들어온 자금은 약 39조원에 이른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전후(2007~09년) 시기를 상회하는 수치다. 올해 같은 기간 주식활동계좌는 약 275만 개 늘어났는데, 이 역시 2009년 이후 최대치다.

유동성이 증시를 끌어올리면서 기업 주가가 단기간에 급등하는 일도 흔하게 벌어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카카오, 네이버, 엔씨소프트 등 언택트 기업들과 SK바이오팜, 삼성바이오로직스 등 바이오 기업들의 주가가 최근 매섭게 올랐다. 해외에서는 테슬라와 니콜라의 주가가 급등하며 ‘대박’이 났다.

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 경제가 신음하고 있지만 주식시장은 활황세를 이어가고 있다. 사진은 하나은행 딜링룸 ⓒ시사저널 최준필
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 경제가 신음하고 있지만 주식시장은 활황세를 이어가고 있다. 사진은 하나은행 딜링룸 ⓒ시사저널 최준필

진보·보수와 같은 액티브·패시브

개미투자자들이 대거 증시에 뛰어들면서 투자패턴도 바뀌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부터 지난해까지는 시장수익률을 추종하는 ETF(상장지수펀드) 등 ‘패시브’ 투자가 대세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올해 증시에 입성한 개미투자자들은 지수가 아닌 종목 매수에 열을 올리고 있다. 패시브 대신 특정 종목 매수에 집중하는 ‘액티브’ 투자가 다시 대세가 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민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통상 개미투자자는 시간적·기술적인 한계 탓에 위험자산 포트폴리오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어렵다. 위험이 잘 분산된 포트폴리오에 장기적으로 투자하기보다는 소수 종목에 집중한 고위험-고수익 투자를 추구하는 경향이 짙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분석했다.

시장에서는 올해를 기점으로 액티브 투자가 장기적으로 활성화될지 주목하고 있다. 주식투자 철학으로서 액티브와 패시브라는 개념은 정치 이념의 진보와 보수처럼 끊임없는 경쟁을 펼쳐왔다. 성과 측면에서도 주기성을 띠면서 수십 년 동안 서로 위치를 바꿔왔다.

최근 10년 동안은 패시브 투자가 우세한 시기였다. 패시브의 개념은 1952년 해리 마코위츠가 낸 ‘포트폴리오 이론’이 시초로 꼽힌다. 가장 큰 변곡점은 유진 파머 시카고대 교수가 1960년대 “시장의 모든 정보는 주가에 반영돼 있다”며 가치투자를 부정하면서 시작됐다. 이어 유진 파머 이론에서 영감을 얻은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출신 존 보글이 1974년 뱅가드를 설립하고 인덱스펀드를 만들면서 패시브 투자는 본격화됐다.

반면에 액티브의 개념은 월가의 전설적인 투자자 벤저민 그레이엄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1949년 주가가 저평가된 기업의 주식에 투자해야 한다는 ‘가치투자’ 이론을 정립했다. 그리고 그의 제자가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이다.

너무 다른 두 철학은 수십 년 동안 백중지세로 싸워왔다. 2013년 파머 교수와 공동으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는 “정보 비대칭성과 인간의 동물적 본능이 시장가격을 움직인다”며 파머 교수의 가설을 반박하기도 했다. 하지만 버핏은 패시브의 우수성을 인정했다. 심지어 버핏은 자신의 유언장에 “기부 이후 남은 돈의 90%는 S&P500 지수를 추종하는 인덱스펀드에 투자하고, 나머지 10%는 국채를 매입하라”고 쓰기도 했다.

실제로 버핏과 헤지펀드 운용업체 프로테제 파트너스는 2008년부터 2017년까지 10년 동안 뱅가드의 S&P500인덱스펀드에 투자하는 것과 헤지펀드에 투자하는 것 중 어느 수익률이 좋을지 100만 달러짜리 내기를 벌였는데 버핏은 헤지펀드의 운용 수수료와 성과 수수료가 높기에 S&P500인덱스펀드 투자가 높은 수익률을 낼 것이라고 예상했다. 내기 시작 후 1년까지는 헤지펀드 수익률이 더 높았다. 하지만 10년 후 최종 수익률은 인덱스펀드가 연평균 7.1%, 헤지펀드는 2.2%였다.

 

국내 증권사들도 랩어카운트에 공 들여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승자는 패시브였다. 액티브 투자의 수익률은 무너진 반면, 패시브 투자의 위험관리 능력이 상대적으로 부각됐기 때문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패시브 투자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대세로 자리 잡았고 국내에서도 2018년 10월부터 패시브 펀드의 설정액이 액티브 펀드를 앞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세계 각국에서는 액티브 투자가 다시 활성화되고 있는 모습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지난 4월 40억 파운드 이상의 개인 투자자금이 펀드로 유입됐는데 이 가운데 액티브 펀드로 유입된 자금은 27억 파운드를 차지했다. 뉴욕증시(NYSE)에서도 올해 5월말까지 기존 ETF에 액티브 투자를 결합한 ‘액티브ETF’로 순유입된 자금이 약 1900억 달러에 이른다.

국내 증권사들도 늘어나는 액티브 투자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소수 종목에 투자하는 랩어카운트(Wrap Account)에 공을 들이고 있다. 랩어카운트는 증권사가 개인투자자들에게 어떤 종목을 사야 할지 조언해 주거나 일임을 받는 서비스다. 수십 개 종목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종목에 집중 투자함으로써 수익률을 높이는 데 초점을 둔다.

삼성증권은 4월 해외주식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글로벌1%랩’을 내놓았고 한국투자증권은 최근 중국 배당주·성장주에 투자하는 ‘차이나흑묘백묘랩’을 출시했다. 신한금융투자 역시 ‘신한 글로벌리서치랩’을 선보였다. KB증권의 ‘에이블 어카운트랩’의 운용자금은 최근 7조원까지 늘어나며 지난해 말 3조원에서 두 배 이상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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