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제조된 아름다움과 위험에 빠진 인간성
  • 김윤태 고려대 교수․사회학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7.22 16:00
  • 호수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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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독일 역사가 에두아르트 푹스는 육체적 아름다움이 정치적으로 권력을 장악한 계급의 이해관계에 따라 형성된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여성의 몸은 부르주아지의 쾌락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 미스코리아 대회에서 볼 수 있듯이 여성의 아름다움은 철저히 남성의 기준에 의해 만들어진다. 왜냐하면 부유한 남성은 원하는 것을 맘대로 살 수 있는 돈을 가졌기 때문이다. 수영복을 입은 미인대회 수상자와 노출이 심한 광고모델의 이미지는 모두 남성이 가진 환상의 표현이다.

오늘날 육체미에 대한 숭배는 개인의 욕망을 자극할 뿐 아니라 거대한 산업을 만들었다. 종교 신전에 서 있는 신과 영웅의 석상처럼 수많은 대중매체와 거리에는 아름다운 육체를 가진 모델이 전시된다. 그들은 단지 바라보는 사진이 아니라 닮고 싶은 대상이 되도록 우리를 유혹하고, 설득하고, 매혹시킨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여성을 위한 성형외과뿐 아니라, 남성을 위한 피트니스클럽도 대유행했다. 역사상 이처럼 육체미에 관심을 가진 시대는 없었다. 육체미의 대중화 또는 민주화라 불릴 만하다.

세계 최고의 ‘성형 공화국’이 된 한국에서 여성의 가슴을 크게 만들고 피부를 관리하는 광고는 일상생활이 됐다. 이런 모든 일은 기업과 병원에 막대한 수익을 안겨주었다. 자본과 첨단의학이 만나면서 아름다움은 사고파는 거래의 대상이 됐다. 고대 그리스의 조각에 나오는 이상적으로 아름답고 완전한 육체를 가진 인간이 과연 존재하겠느냐는 질문은 이제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비너스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당연히 육체의 아름다움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관리되는 것이다.

미국과 프랑스뿐 아니라 한국, 중국, 브라질에 이르기까지 몸은 자본주의 소비문화의 논리에 따라 오락을 위한 도구이자, 상업주의의 중요한 표적이자, 개인의 욕망을 표현하는 장소가 됐다. 몸은 광고 산업에 이용되고, 소비의 대상이 되고, 정체성의 중요한 요소가 됐다. 폴란드 출신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혼돈스럽고 뒤죽박죽처럼 보이는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정체성에 대한 불확실성에 직면하게 되고, 결국 정체성 형성에 유일한 가시적 매개물은 바로 몸이라고 지적한다. 몸이야말로 자아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다.

현대사회에서 몸은 자아 형성의 ‘프로젝트’로 간주된다. 몸은 자연적 과정에서 탄생하지만, 문명화 과정을 거쳐 변용되며, 현대사회에서 개인의 정체성과 사회적 지위를 표현하는 프로젝트로 작동한다. 끝없는 건강, 운동, 젊음에 대한 신비화와 동경에 의해 노화와 죽음은 부인되고 거부된다. 육체미를 관리하는 의학 기술의 상업화를 통해 몸은 원하는 대로 변화하고, 재구성되고, 재창조될 수 있다. 화장품, 패션, 성형수술에 이어 보톡스, 필러, 리프팅과 같은 미용수술도 물신화된 상품이 된다. 거대한 뷰티 산업이 창조됐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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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관리를 통해 우리의 몸은 자본주의 사회의 중요한 상품이 되고 일종의 자본이 된다. 자신의 몸을 관리하는 프로젝트의 결과에 따라 몸은 시장에서 평가되고, 이에 따라 보상을 받고, ‘몸 자본’에 따른 사회적 위치를 획득한다. 우리는 자신의 몸을 타인과 비교하며 끊임없이 우월감과 열등감의 롤러코스터를 오르내린다. 몸은 상품화되고, 물신화되고, 대량 소비되면서 인간을 서로 소외시키고 불행하게 만든다. 몸을 관리하는 과도한 프로젝트는 섭식장애와 성형중독뿐 아니라 육체와 정신의 균형을 추구하는 인간성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델포이의 신탁처럼, 뭐든지 너무 지나친 것은 좋지 않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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