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금 콘텐츠 전성시대…무엇이 성패 가르나
  • 정덕현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8.08 12:00
  • 호수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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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과 개연성 없이 자극성만 좇으면 ‘필패’

종영한 드라마 JTBC 《부부의 세계》는 무려 최고 시청률 28.3%(닐슨 코리아)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남겼다. 이는 JTBC 역대 드라마뿐만 아니라 비지상파 드라마 중 최고 시청률이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건 이 드라마가 19금 드라마였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이 놀라운 건 우리 드라마가 지상파 중심으로 커오면서 사실상 19금 드라마의 불모지였다는 걸 상기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지상파는 이른바 ‘보편적 시청자’를 대상으로 한다는 불문율이 있어 19금 콘텐츠는 아예 세워질 기회조차 없었다. 또 19금을 붙인다는 건 시청률을 포기한다는 말과 사실상 동의어였다. 프라임 타임대 편성이 불가능하고 시청에도 진입장벽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부의 세계》는 이런 관점이 이제 과거의 유물이 되어 버렸다는 걸 여실히 드러냈다. 지상파도 아닌 비지상파에서 밤 11시에 방영하는 19금 드라마가 지상파 프라임 타임대에 방영되는 드라마들보다 몇 배는 높은 시청률과 화제성을 가져갈 수 있다는 걸 이 드라마는 보여줬다. 이는 사실상 TV 본방 시청률을 좌지우지하는 시청층이 중장년층이라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성인들이 TV를 본방 시청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어째서 이들을 타깃으로 하는 본격 성인 콘텐츠가 나오지 않았는가가 오히려 의아한 일이다. 실제 TV조선 《미스터트롯》 같은 프로그램이 무려 35.7%라는 경이적인 시청률을 냈다는 사실은 성인 타깃 콘텐츠가 이제 먹히는 시대에 들어왔다는 걸 방증한다. 

넷플릭스를 필두로 새로운 콘텐츠 소비 플랫폼으로 떠오른 OTT는 상당히 많은 비중이 성인 콘텐츠다. 전 세계적인 폐인들을 양산한 《왕좌의 게임》 같은 드라마나 《스파르타쿠스》 《그레이스 아나토미》, 나아가 우리 드라마인 《킹덤》 《인간수업》 같은 작품이 모두 19금이다. 어찌 보면 19금 아닌 드라마를 찾는 일이 더 어렵다. 이러니 시청자들은 이미 OTT를 통해 19금 콘텐츠에 익숙해졌다. 어떤 면에서는 19금을 배제하고 있는 듯한 우리네 콘텐츠가 밋밋하게 느껴질 정도다. 《부부의 세계》는 바로 그 지점을 정확히 짚어냄으로써 신드롬급 성공을 거뒀다.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 ⓒJTBC

《부부의 세계》가 꺼낸 19금 콘텐츠의 가능성 

《부부의 세계》 성공은 여러모로 JTBC 금토드라마 후속작으로서 《우아한 친구들》의 기획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 이른바 JTBC표 드라마 하면 떠오르는 《밀회》 《품위 있는 그녀》 《스카이캐슬》 그리고 《부부의 세계》 같은 일련의 부유층의 위선을 폭로하는 소재를 떠올리게 하는 데다, 무엇보다 아예 19금 드라마를 표방했다는 점이 그렇다. 실제로 《우아한 친구들》은 예고편을 통해 《부부의 세계》를 잇는 드라마라고 공공연히 표방했다. 그렇다면 과연 《우아한 친구들》은 이런 표방에 맞는 드라마로 호평받고 있을까. 

그렇지 못하다. 《우아한 친구들》은 첫 회부터 비즈니스 때문에 호스트바에 가는 정해(송윤아)를 남편 안궁철(유준상)이 알면서도 허락해 주는 장면이나, 그런 자리에 “아줌마처럼 보이고 싶지 않다”며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가는 모습, 술자리에서 벌이는 남성들의 듣기 불편한 성적 농담들이 어딘지 불안감을 주더니 급기야 정해에게 약을 탄 술을 먹이고 알몸 사진을 찍는 성폭력 장면까지 버젓이 등장했다. 그런데 그런 성범죄를 당한 정해가 그 사실을 남편에게도 숨긴 채 경찰에 신고도 하지 않는 대목은 이 드라마가 가진 성의식의 왜곡을 드러냈다. 결국 성범죄를 범죄의 하나로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이 사건은 그 범죄를 저지른 주강산(이태환)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는 일로까지 이어진다. 

JTBC 드라마 《우아한 친구들》 ⓒJTBC

물론 이런 성폭력 장면이나 호스트바 설정 같은 것들이 그 자체로 문제가 있는 건 아닐 게다. 19금을 표방하고 있으니 이야기 개연성에 합당하다면 말이다. 하지만 《우아한 친구들》은 개연성이나 공감대에 기반해 그런 자극적인 장면과 설정을 넣어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그때그때의 자극적인 포인트로서 그런 장면들을 활용한다. 에로영화 촬영 현장 장면이나 심지어 요가 운동을 하는 장면에서도 여성의 몸을 훑는 카메라의 시선이 그걸 방증한다. 이러니 시청률은 4.3%대를 유지한다고 해도 호평이 나올 리가 만무하다. 

《부부의 세계》 역시 특정 장면들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여주인공의 집으로 괴한이 무단침입해 벌이는 폭력 장면에 카메라가 마치 가상현실(VR) 게임처럼 가해자의 시선으로 연출된 장면이 그랬다. 하지만 그런 다소 과하고 잘못된 연출에 대한 비판이 있었지만, 《부부의 세계》는 ‘맞불륜’ 같은 자극적인 설정들이 있어도 호평받았다. 그것은 단지 그런 설정들을 자극을 위한 자극으로 세워둔 것이 아니라, 인물이 그럴 만한 심리적 개연성을 공감할 수 있게 담아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아한 친구들》에는 이런 부분들이 충분히 전제되어 있지 않아 비판받는 상황에 놓였다. 

넷플릭스 드라마 《인간수업》 ⓒ넷플릭스

제2의 《부부의 세계》가 나오기 위한 선결조건들 

넷플릭스에 방영돼 호평받았던 19금 드라마 《인간수업》은 청소년의 성매매라는 다소 자극적인 소재를 다뤘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가 좋은 반응을 얻게 된 건 역시 나름의 개연성과 드라마가 이런 소재를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의 선명함이 전제됐기 때문이다. 《킹덤》이 전 세계적인 호평을 받은 것도 마찬가지 이유였다. 인육을 뜯어먹는 좀비들의 이야기지만 이 작품은 ‘배고픈 민초들’과 대비해 ‘권력에 눈이 먼 자들’을 좀비로 은유해 냄으로써 작품이 그저 표피적인 자극에 머무르는 것을 훌쩍 넘어섰다. 

《부부의 세계》 이후 우리 시장에서 19금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건 환영할 만한 일이다. 실제로 최근에는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KBS 《스탠드업》이나 채널A 《애로부부》 같은 19금 콘텐츠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미 OTT 시장이 열렸고 그래서 글로벌 콘텐츠들을 일상적으로 접하게 된 시청자들은 19금 콘텐츠에 익숙해졌다. 지상파라는 보편적 시청자를 겨냥해 온 플랫폼의 시대에 머물러 있어 19금 콘텐츠를 시도하지 않았던 우리는 콘텐츠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이를 좀 더 적극적으로 시도할 필요가 있다. 

다만 선결되어야 할 건 19금에 대한 오해와 편견의 시선을 넘어서야 한다는 점이다. 19금을 일종의 ‘금기’로 여겨오면서 그저 자극적이고 야한 어떤 걸 19금으로 오인해 온 게 우리 콘텐츠의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19금은 말 그대로 성인들이 공감하고 받아들일 만한 콘텐츠라는 얘기일 뿐이다. 다소 자극적일 수는 있지만 공감과 개연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 19금이어야 제2의 《부부의 세계》 같은 작품이 나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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