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손석희 마이크 놓자 언론계 ‘춘추전국시대’
  • 이민우 기자 (mwlee@sisajournal.com)
  • 승인 2020.08.19 14:00
  • 호수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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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불안한 1위’…독주 체제 끝났다
지상파 방송 3사·네이버 ‘약진’…영향력 커진 유튜브

‘2020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국내 언론 사상 단일 주제 최장기 기획인 시사저널의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전문가 설문조사는 1989년 창간 이후 31년째 계속되고 있다. 올해도 국내 오피니언 리더들인 행정관료·교수·언론인·법조인·정치인·기업인·금융인·사회단체인·문화예술인·종교인 각각 100명씩 총 1000명의 전문가를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했다. 국내 최고 권위의 여론조사 전문기관 ‘칸타퍼블릭’과 함께 했다.

‘전체 영향력’을 비롯해 정치·경제·언론·문화예술 등 13개 부문에 걸쳐 각 분야의 영향력 있는 인물들이 총망라됐다. 6월22일부터 7월15일까지 리스트를 이용한 전화여론조사 방식으로 진행됐다. 응답자는 남성 72.2%, 여성 27.8% 비율이며, 연령별로는 30대 23.6%, 40대 33.3%, 50대 32.9%, 60세 이상 10.3%다. 각 문항별 최대 3명까지 중복응답을 허용했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 최근 JTBC만큼 이 말을 실감하는 언론사가 있을까. 2017년 이후 언론계 판도는 JTBC 독주 체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JTBC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태를 적극 보도하면서 시사저널 조사에서 영향력과 신뢰도, 열독률에서 3관왕을 차지할 만큼 국민들의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았다. 특히 영향력과 신뢰도 지목률은 과반을 넘기며 압도적 1위를 자랑했다.

손석희 JTBC 사장이 올해 1월 《뉴스룸》 신년토론 진행을 마지막으로 앵커에서 하차했다. 이후 JTBC의 영향력과 신뢰도는 모두 눈에 띄게 빠졌다. ⓒJTBC 캡쳐
손석희 JTBC 사장이 올해 1월 《뉴스룸》 신년토론 진행을 마지막으로 앵커에서 하차했다. 이후 JTBC의 영향력과 신뢰도는 모두 눈에 띄게 빠졌다. ⓒJTBC 캡쳐

세상이 변하자 상황도 달라졌다. JTBC에는 ‘국정농단 이후’가 없었다. JTBC의 전성기를 이끌던 손석희 사장은 각종 논란에 휘말리더니 결국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손 사장은 올해 1월 《뉴스룸》 신년토론 진행을 마지막으로 앵커에서 하차했다. JTBC에서 손 사장의 빈자리는 컸다. 이른바 ‘손석희 프리미엄’이 빠지자 JTBC의 영향력과 신뢰도는 모두 눈에 띄게 빠졌다.

권력은 공백을 용납하지 않는다. ‘절대 강자’가 사라진 자리엔 새로운 강자가 등장했다. 그 주인공은 미디어 시장을 새롭게 재편하고 있는 유튜브다. 유튜브는 수동적으로 머물러 있던 대중들을 능동적인 콘텐츠 생산자로 탈바꿈시키며 미디어 빅뱅을 이끌고 있다. 세상 모든 콘텐츠가 유튜브로 몰려들고 있다. 유튜브는 영향력 부문에서 7위로 단숨에 진입하며 기존 매체들을 위협했다.

영향력·신뢰도 회복하는 KBS·MBC

올해 31회째인 시사저널 2020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조사에서 언론매체 분야의 꼭짓점은 JTBC가 차지했다. JTBC는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매체’(영향력) 조사에서 지목률 33.8%, ‘가장 신뢰하는 언론매체’(신뢰도) 조사에서 지목률 27.3%로 모두 1위를 지켰다. JTBC는 영향력 분야에선 2017년 이후 4년째, 신뢰도 면에선 2016년 이후 5년째 1위를 차지했다. 기존 방송에서 관행화되다시피 한 뉴스의 백화점식 나열에서 과감히 벗어나 선택과 집중을 통해 깊이 있는 뉴스를 전한 것이 주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연도별 지목률 변화 추이를 보면 그렇다. 손 사장의 등장 이후 가파르게 치솟던 JTBC의 영향력과 신뢰도는 2017년을 기점으로 하락세를 걷고 있다. 그리고 올해는 그 폭이 더 커졌다. JTBC의 영향력 지목률은 2019년 48.4%에서 올해 33.8%로 급락했다. 2위인 KBS 지목률(32.4%)과의 격차가 불과 1.4%포인트에 불과했다. 지난해 1~2위 간 격차(19.3%포인트)와 비교하면, 사실상 독주 체제가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뢰도 역시 지난해엔 39.2%의 지목률을 보였지만, 올해는 27.3%에 불과했다. 열독률 면에서도 1위 네이버와 어깨를 견주었던 지난해(25.4%)와 달리 올해는 17.7%로 급락했다.

김성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JTBC의 브랜드 가치는 곧 손석희 사장으로 귀결됐는데, 손 사장이 앵커에서 하차하면서 그 가치가 깨졌다”며 “손석희라는 인물의 빈자리를 파고들려는 미디어 간 경쟁이 치열해져 뉴스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했다”고 분석했다.

JTBC가 흔들리는 사이 ‘전통의 강호’ KBS가 1위 자리를 넘보고 있다. JTBC에 영향력과 신뢰도 면에서 1위를 내줬던 KBS는 매섭게 추격 중이다. KBS는 영향력 분야 지목률이 32.4%로 상승했다. 2018년 27.7%, 2019년 29.1%, 2020년 32.4%로 매년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신뢰도 면에선 더욱 상승세가 두드러졌다. KBS에 대한 신뢰도는 2018년 14.0%에서 2019년 15.3%, 2020년 22.4%로 크게 올랐다. 일각에선 여전히 권력 편향적 보도가 이어진다고 평가하지만, 과거에 비해 ‘방송 장악’ 프레임에 갇혀 있진 않다. ‘공영방송’의 프리미엄이 다시 평가받는 분위기다.

흔들렸던 MBC의 영향력과 신뢰도도 다소 개선되는 양상이다. MBC의 영향력은 JTBC, KBS, 네이버, 조선일보에 이어 5위에 올랐다. 최근 3년간 순위에 변화는 없지만 지목률은 2018년 10.8%, 2019년 12.8%, 2020년 21.9%로 상승하는 추세다. 신뢰도 순위 또한 2018년 7위(7.1%), 2019년 5위(8.0%), 2020년 3위(17.0%)로 계속 오르고 있다.

신문사 중에서는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의 강세가 여전했다. 올해 조선일보의 영향력은 3위 자리를 네이버에게 내주면서 한 계단 하락한 4위를 기록했지만 지목률은 2019년 25.7%, 2020년 25.9%로 여전했다. 한겨레신문은 영향력에서 9위를 기록했지만, 신뢰도에서 4위(12.5%)를 기록하면서 진보를 표방하는 매체의 대표성을 유지했다. 중앙일보는 영향력 10위(6.2%), 경향신문은 신뢰도 7위(8.1%)에 올랐다.

네이버, 열독률 독주…유튜브 영향력 수직 상승

‘가장 열독하는 언론매체’(열독률) 분야에선 네이버의 독주 체제가 공고화됐다. 최근 열독률 분야에서 1위 자리를 위협했던 JTBC의 위력이 약화되면서다. 올해 네이버는 열독률 조사에서 지목률 27.5%로 1위를 지켰다. 2위 JTBC(17.7%), 3위 다음카카오(15.1%)와 격차를 10%포인트 내외까지 벌렸다. 네이버는 특히 영향력 조사에서도 지목률 31.0%(3위), 신뢰도 조사에서 11.0%(5위)를 기록하며 위상을 키웠다. 뉴스를 소비하는 플랫폼으로서 갖는 위상이 기존 언론사를 뛰어넘고 있다는 의미다.

동영상 플랫폼인 유튜브의 영향력도 급격히 커졌다. 유튜브는 영향력 면에서 처음으로 10위권 이내에 진입했다. 유튜브의 영향력 분야 지목률은 7.5%(7위)를 기록했다. 유튜브의 영향력은 2018년 0.8%에 불과했는데, 2019년 3.4%(12위)로 상승하더니 올해는 수직 상승을 기록했다. 유튜브를 통해 뉴스를 소비하는 이용자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의미다. 반면에 신뢰도 지목률은 2.1%에 불과했다. 유튜브로서는 ‘가짜뉴스 생산·유통 창구’라는 오명을 불식시키는 과제를 안게 됐다.

김성철 교수는 “모든 뉴스가 네이버를 중심으로 유통되기 때문에 네이버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유튜브의 영향력이 커지는 현상과 관련해서는 “젊은 세대는 기존 미디어는커녕 네이버로도 뉴스를 잘 보지 않는다”며 “유튜브에서 뉴스를 보는 비중은 점점 커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유튜브의 영향력은 커졌으나 신뢰도는 바닥인 결과에 대해서는 “대개 유튜브에서 유통되는 뉴스는 전문가가 만드는 게 아니라 개인이 생산하는 것이기 때문에 흥미는 있지만 믿을 순 없는 정보가 많다”면서 “신뢰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가짜뉴스를 걸러내려는 유튜브의 자체적인 규제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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