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 시대 음식 사업 4대 키워드 [이형석의 미러링과 모델링]
  • 이형석 한국사회적경영연구원장․KB국민은행 경영자문역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8.26 15:00
  • 호수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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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점포·배달 가능한 간편식·IT와 융합·지역사회 상생이 핵심

2019년 말 여의도 증권가에 350평 규모의 푸드코트가 야심 차게 오픈했지만, 얼마 가지 못하고 문을 닫아야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손님이 뚝 끊겼기 때문이다. 베테랑 외식 사업가가 구원투수로 나섰다. 그는 그동안 여러 곳의 폐업 점포를 다시 살린, 그야말로 외식업계에서는 전설과도 같은 창업가여서 기대가 컸다.

2개월이 지난 지금 상황은 어떨까. 예상과는 달리 오픈 효과는 미미했다. 통상 음식점이 문을 열면 속칭 ‘오픈발’을 받아 처음에는 문전성시를 이루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여의도는 오피스 거리다.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음식점도 전통적인 비즈니스 모델로는 한계가 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서울의 한 푸드코트 모습 ⓒ연합뉴스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음식점도 전통적인 비즈니스 모델로는 한계가 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서울의 한 푸드코트 모습 ⓒ연합뉴스

여의도 대형 푸드코트가 두 달 만에 문 닫은 이유

웬만하면 점심과 초저녁 고객이 많은 편이다. 직장인들이 즐길 만한 가성비 높은 음식점도 많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의외의 결과였다.

이렇듯 자영업 시장이 생각 이상으로 심각하다. 전통적인 비즈니스 모델로는 한계 상황에 도달했다. 코로나19 확진자 폭증으로 앞으로 상황은 더욱 힘들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죽으란 법은 없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위기를 헤쳐 나가는 사람들이 자영업 시장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코펜하겐의 노마(Noma)식당은 덴마크에서 유일한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이다. 가재와 대구 등 북유럽 식재료를 이용해 특색 있는 ‘뉴 노르딕’ 요리를 만들어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었다. 그런데 지난 7월 노마식당의 르네 레제피(Ren Redzepi) 셰프는 자신의 레스토랑을 햄버거 가게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다. 여기에서 식사를 하려면 적어도 3개월 전에는 예약해야 할 만큼 잘되던 곳이다. 레제피는 여행자를 위한 요리를 포기하고 현지인들에게 저렴한 음식을 판매하는 것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중국에서 유일하게 중국요리로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신롱지(Xin Rong Ji)도 최근 요리를 버리고 민어국수를 주 메뉴로 한 작은 식당 브랜드 샤오롱구안(Xiao Rong Guan)을 열었다.

앞서 언급한 두 가지 사례를 보면 코로나 이후를 대비할 음식점의 방향, 몇 가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 하나는 요리보다 가성비 높고 테이크아웃이 가능한 패스트푸드로 대체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대형 음식점들이 점포 크기를 줄이고 있고, 셋째는 야생동물과 관련된 메뉴를 기피하고 있다는 점이다. 모두가 코로나19 사태 이후를 대비한 전략이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최근 다양한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하나의 음식점이 위기를 극복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만큼 상권 단위로 대응하고 있는 점이 우선 눈에 띈다. 도쿄에서도 이름난 긴자(銀座) 상권에서는 현재 12개 점포가 협력해 야외에 공용 테라스를 열었다. 어떤 식당에서 주문을 해도 공용 테라스에서 대기 중인 손님에게 갖다주는 시스템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인근 유휴지를 활용하는 모델이다. 법적인 문제가 있지만 지자체가 일시적으로 허가했다. 이 모델이 성공하면 지자체도 장기로 활용할 수 있는 유휴지를 제공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교토의 한 상점가에서는 ‘벼랑 도시락’을 한곳에서 모아 판매한다. 이 상점가에 입점한 음식점들이 각자 자신의 메뉴로 도시락을 만들어 정해진 공간에서 통일된 가격(800엔)에 판매하는 것이다. 고객은 여러 곳을 다닐 필요 없이 한자리에서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도시락 이름으로 낭떠러지를 뜻하는 ‘벼랑’을 선택한 것은 “벼랑 끝에 몰린 자영업자를 살려 달라”는 간절함을 담기 위해서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처음 사업을 시작한 4월, 1500개 도시락이 불과 15분 만에 완판됐다. 언론에서 상생모델로 소개되자 일부러 찾아오는 고객이 많아졌고, 유튜버들이 앞다퉈 소개해 준 덕분에 지금은 각 음식점에서 따로 판매할 때의 매출보다 훨씬 많이 팔고 있다.

여세를 몰아 오프라인 판매를 넘어 배달 채널을 추가했다. 배달은 대상 지역 택시를 활용한다. 택시회사도 관광객이 급감해 운영이 심각한 상황이어서 선뜻 응했다. 그야말로 지역사회를 살리는 획기적인 상생 비즈니스 모델이라 하겠다. 다만 도시락으로 만들기 어려운 음식점에 대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과제는 남아 있다. 우리나라도 지역에 따라 상권 활성화 재단이나 상가 번영회 같은 조직이 있는 만큼 서로 협력하면 일본과 같은 효과적인 상생모델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19에 취약한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비즈니스 모델도 떠오르고 있다. 노인에게 맞는 식빵과 수프를 배달해 주는 사업 모델이 그것이다. 노인 식빵은 일반 식빵과 달리 이가 약한 노인들을 위한 맞춤형 식빵이다. 딱딱한 음식을 잘 씹지 못하고, 소화가 잘 안된다는 점에 착안했다. 수프도 노인 영양 섭취에 맞춰져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디지털과의 융합을 통한 서비스 모델이 급속도로 번지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본비반트(Bon Vivant)’의 비즈니스 모델은 앞으로 음식점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먼저 키친스튜디오에서 셰프가 요리를 한다. 그 장면은 세 가지 채널을 통해 고객에게 전달된다.

 

시험적인 비즈니스 모델 잇달아 선보여

첫 번째 채널은 인도어 채널이다. 요리를 하는 장소에서 함께 어울리며 식사하는 형식이다. 메뉴는 매일 앱을 통해 미리 공개되기 때문에 관심 있는 사람은 현장을 찾으면 된다. 두 번째 채널은 줌(ZOOM)을 통한 원격 화상 채널이다. 유명 셰프의 요리를 따라 하고 싶은 가정이 구독한다. 가입자는 실시간으로 셰프에게 지도를 받으면서 요리할 수 있다.

세 번째 채널은 유튜브다. 키친스튜디오에서 요리하는 과정을 모두 녹화해 유튜브에 올린다. 여기에서 광고수익을 올린다. 그야말로 원소스 멀티유즈(OSMU) 모델이다. 음식점은 입지 업종이라는 한계를 극복해 수익모델을 다각화하기 위한 시도다. 이 모델은 확장 가능성이 높아 헬스, 요가 등 서비스 업종에서도 차용될 것이 확실하다.

음식업이 위기의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작은 점포, 배달이나 픽업이 가능한 간편식, IT와 융합한 O2O 시스템, 지역사회 상생 등이 핵심 키워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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