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유희와 B급이 뜬다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0.08.25 09:00
  • 호수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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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MZ세대에 통하는 마케팅을 pick하는 이유

‘라떼’라는 단어는 더 이상 카페라떼만을 뜻하지 않는다. 기성세대가 자주 쓰는 말인 “나 때는 말이야”를 풍자하는 표현이 “라떼는 말이야”가 된 이후부터 그렇다. 라떼는 이제 젊은 세대가 일명 ‘꼰대’에게 붙이는 하나의 별명 같은, 원래 존재했지만 새로운 뜻을 담은 단어가 됐다. 저연차 직장인들과 학생들 사이에서 처음 유행했던 이 말, ‘Latte is a horse’라는 문구까지 탄생시키며 회자되던 이 멘트가 삼성생명 유튜브 광고에 등장했다. 드라마 《SKY 캐슬》에서 독선적인 로스쿨 교수 역을 맡았던 40대 배우 김병철이 “라떼는~”을 시전하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가치관과 생각이 변했기 때문에 자신도, 보험도 변하기로 했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광고였다. 편의점 CU는 과자 ‘라떼는 말이야’를 내놨다. “나 때는 어땠는 줄 아나”라는 상사의 질문에 “매일 들어서 잘 안다”고 답하는 ‘사이다’ 웹툰을 포장에 그려 놨다.

주목할 점은 두 가지다. 일명 MZ세대라고 불리는,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를 포괄하는 세대가 쓰는 말을 기업이 마케팅에 활용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MZ세대가 원하는 방식과 내용이 주가 된다. 라떼를 외치는 것보다 지금의 시대에 적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영상, 라떼 운을 띄우는 상사에게 주눅 들지 않고 할 말을 속 시원하게 하는 젊은 직장인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MZ세대를 불러들인다. 이 세대를 사로잡기 위해, 기업은 그들이 쓰는 단어와 그들의 ‘갬성’, 그들이 재미를 느끼는 포인트를 ‘픽’할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됐다.

래퍼 사이먼 도미닉의 대표곡인 《사이먼 도미닉》 후렴구 가사인 “사이먼 도미 닉”을 “쌓이면 돈이니”로 표현한 야놀자의 언어유희 광고 ⓒ야놀자
래퍼 사이먼 도미닉의 대표곡인 《사이먼 도미닉》 후렴구 가사인 “사이먼 도미닉”을 “쌓이면 돈이니”로 표현한 야놀자의 언어유희 광고 ⓒ야놀자

‘펀슈머’ 잡기 위해 말 줄이고, 말 바꾸고

그래서 유통업계는 언어유희와 신조어를 이용한 마케팅을 펼치게 됐다. 숙박 플랫폼 야놀자는 올여름 광고로 히트를 쳤다. 야놀자의 광고모델은 래퍼 사이먼 도미닉. 그의 대표곡인 《사이먼 도미닉》의 후렴구 가사인 “사이먼 도미닉”이 “쌓이면 돈이니”로 들리는 효과를 이용해 야놀자 방문만으로도 역대급 혜택을 제공한다는 내용의 중독성 있는 광고를 내놨다.

유튜브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노래의 중독성이 오진다” “저런 미친 생각은 누가 하는 건가”라는 댓글부터 ‘광고 맛집’ ‘마약 광고’라는 호평이 달렸고, ‘삶은 동민이’ ‘삶은 도미’ 등 사이먼 도미닉과 비슷하게 들리는 단어들을 댓글로 서로 공유하는 일종의 놀이문화까지 생성됐다. 해당 광고 두 버전의 조회 수는 2000만을 넘겼다. 밀레니얼 세대라면 들어봤을 ‘쌈디’의 예전 대표곡을 배경음으로 한 데 그치지 않고, 단어나 문장이 다른 의미의 발음으로 들리는 ‘몬더그린’ 현상을 이용해 젊은 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언어를 이용해 흥미를 유발하려는 움직임은 최근 더 두드러진다. 오뚜기는 자사 온라인 쇼핑몰인 오뚜기몰 제품의 마케팅을 언어유희적 측면에서 펼치고 있다. ‘누들이 고생이 많다’ ‘이렇게 맛있으면 다이어트는 호떡하라구’ ‘통통한 새우가 멘보샤라있네’ 등 제품을 연상하게 하는 문장들을 사용한다. 스타벅스는 검은깨나 흑미 등을 넣은 ‘도와줘 흑흑’, 라임이 들어간 음료인 ‘기운내라임’ 등을 내놨다. LG생활건강은 ‘화장이 무너진다’는 말을 이용해 ‘문어지지 말자’ 컬렉션을 출시하기도 했다. 단순히 재미만 고려한 것이 아니라, 제품의 원료나 장점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언어유희 마케팅이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오뚜기는 자사 온라인 쇼핑몰인 오뚜기몰 제품의 마케팅을 언어유희적 측면에서 펼치고 있다. ⓒ오뚜기
오뚜기는 자사 온라인 쇼핑몰인 오뚜기몰 제품의 마케팅을 언어유희적 측면에서 펼치고 있다. ⓒ오뚜기

기업들이 언어유희 마케팅 전략을 들고나오는 것은 ‘펀슈머’라고 불리는 MZ세대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서다. 초창기 인터넷 세대가 기성세대가 된 지금, 자판 입력이나 설명 편의성, 재미 등을 이유로 말을 줄여 쓰는 경우가 늘어났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온라인 공간에서 쓰는 줄임말과 은어를 활용하는 효과가 과거보다 훨씬 커진 것이다. SK를 ‘스크’, KT를 ‘크트’라고 읽는 것에서 시작해 ‘내돈내산(내 돈으로 내가 산 제품)’ ‘알잘딱깔센(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 ‘민초단(민트초코를 좋아하는 사람들)’ 등 신조어격 줄임말까지 등장했다.

정은우 대학내일 20대연구소 센터장은 대학내일 2020 트렌드 컨퍼런스를 통해 “MZ세대를 대상으로 마케팅을 펼칠 때는 그들이 쓰는 작은 단어를 주목하고 그들의 모습을 포장하지 말라”고 조언한 바 있다. 실제로 기업들이 MZ세대 소비자들이 쓰는 단어를 활용해 제품명을 바꾸거나 새로 내놓는 경우도 많다. 지난해 롯데제과는 자사의 스테디셀러 제품인 ‘롯데샌드’를 ‘롯샌’으로 개명했다. “요즘 10대들이 롯데샌드를 줄여 표현하는 데서 착안했다”는 것이 개명 이유였다.

초성어를 붙인 제품들도 등장하면서 모바일 메신저나 온라인을 통해 초성 줄임말을 쓰는 것이 일상화된 MZ세대에게 다가가고 있다. 반박할 수도 없이 좋다는 뜻의 ‘ㅇㄱㄹㅇ ㅂㅂㅂㄱ(이거레알 반박불가)’와 동의를 구하면서 거절을 막기 위해 혼자 묻고 답하는 말인 ‘ㅇㅈ? ㅇㅇㅈ(인정? 어 인정)’은 CU가 판매한 조각케이크의 이름이다. 10대들이 처음 사용했고, 온라인을 통해 널리 쓰이게 된 언어가 곧 제품명이 된 사례다.

‘읽히는 방법’에 마케팅을 적용한 사례도 있다. ‘RtA’는 영어권 외국인들이 한글 ‘너구리’를 뒤집어서 ‘RtA’로 읽는다는 내용이 온라인에서 퍼져 나간 뒤 붙여진 너구리 라면의 별명이다. 이에 농심은 실제로 한정판 신제품 ‘앵그리 RtA’를 내놓았다. “소비자들이 붙여준 별칭을 실제 제품에 적용해 친근한 이미지를 심어준다”는 전략이었다. 이미 해태htb는 장수 음료인 ‘갈아만든 배’의 ‘배’라는 글자가 IdH와 모양이 비슷하다는 것이 회자되자 이를 상표로 출원한 바 있다. 글로벌 쇼핑업체 아마존 검색창에 IdH를 입력하면 ‘갈아만든 배’ 제품이 검색될 정도로 그 이름은 글로벌해졌다. 멍멍이를 댕댕이, 명곡을 띵곡이라고 표현하고 읽는 일명 ‘야민정음’이 유행하면서 제품명에 적용된 대표 사례는 팔도의 ‘괄도네넴띤’이다. 언어유희 마케팅의 성공 사례로 꼽히는 이 라면은 한정판으로 생산된 500만 개가 완판되는 기염을 토한 바 있다.

‘너구리’를 뒤집어서 ‘RtA’로 읽는다는 내용이 온라인에서 퍼지자 농심은 실제로 ‘앵그리 RtA’ 제품을 출시했다. ⓒ농심
‘너구리’를 뒤집어서 ‘RtA’로 읽는다는 내용이 온라인에서 퍼지자 농심은 실제로 ‘앵그리 RtA’ 제품을 출시했다. ⓒ농심

MZ세대, 주요 광고 소비층으로 부상

예전에는 일부 방송인이나 기업이 만들어낸 신조어를 TV광고 등 일방적인 전달 방식을 통해 대중에게 확산시키는 형태였다면, 이제는 달라졌다. MZ세대를 중심으로 만들어지고 회자된 단어들을 기업이 취한다. 기업이 마케팅을 통해 ‘먹힐 법한’ 언어유희를 내놓는 순간, 그것을 공유하고 확산시키는 중심에 다시 서는 것은 소비자다. 학생들이 사용하는 ‘급식체’가 개그 프로그램에 등장하고, 밀레니얼 세대가 사용하는 신조어가 뉴스에 쓰이고 있다.

디지털 광고 미디어랩 메조미디어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모바일에서 하루 4~5회 광고를 보는 소비자 중 32.3%가 20대였고, 10대가 22.5%를 차지했다. 유행에 민감한 1020세대가 주요 광고 소비층으로 부상하면서 기업들도 이들의 취향을 저격할 수 있는 광고에 힘을 싣는 것이다. 그래서 기업들이 선보인 것 중 하나가 B급 광고다. MZ세대에게 주효할 법한, 기존 주류 문화에서 벗어난 마니아적 B급 문화를 온라인 마케팅에서 적극 활용하게 된 것이다. 유치하지만 중독성 있는 광고, 독특한 이벤트, 신선한 모델을 사용해 광고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재미를 주고, 심리적인 문턱을 낮춰 친근하고 신뢰가 가는 브랜드라는 인식을 심어주려 한다. 언어유희와 B급 코드를 동시에 사용한 동원참치 광고는 “이건 맛의 대참치~”라는 노래 가사가 중독성이 있다는 이유로 ‘수능 금지곡’이라 불리기도 했다.

신세계의 영문 머리글자를 소리 나는 대로 읽은 ‘쓱’과 모든 자음을 ㅅ이나 ㄱ으로 바꾸는 ‘섯씨구(얼씨구)’ ‘식석갓세(신선한데)’ 등으로 언어유희 마케팅을 선보였던 SSG닷컴은 올해 ‘압도적 쓱케일’ 영상을 통해 B급 감성이 충만한 광고를 공개했다. 광고에는 MZ세대에게 익숙한 웹툰 작가 이말년과 주호민이 등장한다. 화물칸을 연 이말년이 “쌀”을 외치면 주호민이 벼를 들어올리고, “올리브유”를 외치면 올리브 나무 사이에서 올리브유를 손에 든다. “계란”을 외치자 주호민 작가의 머리가 계란판에 수십 개 놓인 채 등장한다. 신선하고 빠르게 배달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는 이 광고가 MZ세대에게 “약빤 광고”라는 평을 받은 이유는 B급 코드의 유쾌함 때문이었다.

B급 코드를 사용해 주호민 작가의 특징을 광고 속에 유쾌하게 녹여낸 SSG닷컴 광고 ⓒ 주호민 작가 유튜브 캡쳐
B급 코드를 사용해 주호민 작가의 특징을 광고 속에 유쾌하게 녹여낸 SSG닷컴 광고 ⓒ주호민 작가 유튜브 캡쳐
빙그레는 만화 캐릭터 ‘빙그레우스 더 마시스’로 MZ 세대의 B급 감성을 저격했다. ⓒ 빙그레 인스타그램
빙그레는 만화 캐릭터 ‘빙그레우스 더 마시스’로 MZ세대의 B급 감성을 저격했다. ⓒ빙그레 인스타그램

캐릭터 등 활용해 B급 감성 저격 

빙그레 왕국의 왕위 계승자라는 콘셉트의 만화 캐릭터 ‘빙그레우스 더 마시스’도 B급 감성을 저격한 예다. 바나나맛 우유 왕관을 쓰고, 빵또아 바지를 입고, 꽃게랑과 메로나 봉을 든 빙그레우스에게는 비서 ‘투게더고리 경’도 있다. 순정만화 같은 그림체와 ‘하오체’, 인터넷 소설에서나 나옴 직한 오글거리는 대사가 콘셉트다. 빙그레우스가 “야채와 사과를 한 병에 담은 음료를 만드시오”라고 명해 ‘야채랑 사과’ 음료가 만들어졌다는 만화 컷, 근육 위에 프로틴 음료를 얹고 “멋진 근육을 만들어보시오!”라고 외치는 컷은 팔로워들을 환호시켰다. 빙그레우스가 이끄는 빙그레 공식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14만2000명. 다른 식품 회사 인스타그램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수다. 장수기업의 올드한 이미지를 벗어던진 빙그레의 마케팅은 일명 ‘도른자(돌은 자) 마케팅’이라고까지 불리며 찬사를 받았다.

수많은 콘텐츠 속에서 소비자들의 이목을 끌어야 하는 광고의 특성을 감안하면, 자극성과 중독성이 강한 B급 코드는 소비자들의 반응을 쉽게 얻어낼 수 있는 촉매제가 된다. 특히 MZ세대의 주 활용 플랫폼인 SNS상에서 B급 마케팅은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김익성 동덕여대 교수는 “기업이 마케팅에서 활용하는 B급 코드는 새로운 세대의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는 요소가 될 수 있다”면서 “비속어를 사용한 광고나 비논리적인 내용은 기성세대와의 건전한 소통에 문제가 될 소지가 있기 때문에 언어와 체계를 파괴하는 부분에서는 다방면으로 고민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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