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적에게 ‘무자비’한 푸틴...더 황당한 러시아인들의 ‘무관심’
  • 김선래 한국외국어대 HK연구교수 (sunrae63@hanmail.net)
  • 승인 2020.09.03 15:00
  • 호수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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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발니 노비촉 중독으로 본 크렘린의 공포 정치
정치 냉소·무기력이 야당 탄압 부채질

변호사 출신 반부패운동가에서 출발해 현재 러시아 야권 정치 지도자로 활동 중인 알렉세이 나발니(44)가 독극물에 중독돼 중태에 빠졌다. 측근에 따르면, 나발니는 9월13일 예정된 러시아 지방선거를 앞두고 시베리아 여당 의원들의 비리를 수집하고 모스크바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혼수상태에 빠졌다. 이후 독일로 이송돼 치료를 받고 있으며 독일 정부는 노비촉이라는 독극물에 중독되었다고 발표했다. 노비촉은 소련이 개발한 신경작용제로 2018년 영국에서 발생했던 전직 러시아 정보원 스크리팔 독살 기도사건에 쓰여졌던 약물이다. 나발니는 부패한 관료로부터 수년간 신체적 위협을 받아왔으며 여러 차례 약물 테러를 당했다.

이번 시베리아 방문길에 살해 위협을 피하기 위해 숙박지를 변경하고 이동 시 차량을 갈아타는 등 용의주도하게 움직였으나 공항 라운지 홍차 한 잔에 중독된 것으로 보인다.

대선후보로 추대된 러시아 야당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가 2017년 12월24일 수도 모스크바에서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AP연합

‘反푸틴’ 상징 된 알렉세이 나발니의 수난

나발니는 2011년 12월 총선 이후 푸틴 대통령의 3기 집권을 규탄하는 시위를 주도하면서 러시아 내 반(反)푸틴의 상징적 인물이 됐다. 그는 푸틴 정권의 부정부패와 고위급 정부 인사들의 비리를 폭로하는 반부패재단(FBK)을 설립해 활동 중이었다. 언론이 통제된 러시아에서 유튜브와 SNS를 통해 반부패 운동을 해 온 그는 2012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올해의 100인에, 2017년에는 인터넷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25위 안에 들었다.

인터넷을 통해 고위 관료들의 부정을 폭로한 이후 러시아 부패 관료들은 나발니에 대한 탄압을 적극적으로 전개했다. 2012년 총선 부정과 푸틴 재집권에 반대하는 시위를 주도하다 15일 구류를 받은 나발니는 국제인권단체에 의해 양심수로 판정받았다. 같은 해 그는 국영기업 공금 유용 혐의로 형사 기소돼 2013년 횡령 혐의로 징역 5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그해 모스크바 시장에 출마해 27%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이 밖에도 그는 2014년 2월 소치동계올림픽과 관련한 대규모 비리를 폭로했고, 12월에는 횡령 혐의로 집행유예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에 대해 미국과 유럽연합은 야권 인사 탄압, 정치적 동기가 개입된 재판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2017년 반푸틴 불법 집회를 기획한 혐의로 나발니는 세 번에 걸쳐 15일, 25일, 20일의 구금형을 선고받았다. 이뿐만 아니라 같은 해 시베리아 알타이 지역에서 약물 공격을 받았으며,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는 얼굴에 약물 공격을 받아 시력을 잃을 뻔한 적도 있다.

이후에도 나발니의 수난은 계속된다. 2018년 5월 푸틴 대통령의 장기집권에 반대하는 불법 반정부 시위를 조직한 죄로 30일 구류를 살았고, 그해 8월에는 모스크바 시위로 인해 집회와 시위에 관한 행정법 위반으로 30일간 구류에 처해졌었다. 또 9월에는 구치소에서 나오자마자 러시아 연금법 개정 반대 시위 참여를 호소했다는 혐의로 20일간 구류형에 처해졌다. 구치소에 복역 중이던 9월11일에는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인 러시아 국가 근위대 빅토르 졸로토프 대장이 “나발니는 국가의 안위를 불안하게 하는 미국의 스파이”라고 비난하면서 결투를 신청했다. 지난해 7월에도 나발니는 모스크바에서 열린 자유 공정선거 촉구 집회를 주도하는 과정에서 비허가 집회에 참석을 독려해 불법 시위를 선동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으며 30일간 구류를 살았다. 구치소에 수감 중이던 당시에도 독성물질에 중독된 현상을 보여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은 바 있다.

크렘린은 러시아 국민의 적과 반역자들에 대해 지구 끝까지 쫓아가 처단하기로 유명하다. 대표적인 사건이 2006년 영국으로 망명한 전직 러시아연방보안부(FSB) 요원 리트비넨코 독살 사건이다. 영국 경찰은 독살의 주범으로 안드레이 루고보이를 기소했지만, 루고보이는 러시아로 도망쳤다. 이후 루고보이는 하원의원에 선출됐고 대통령으로부터 명예훈장까지 받았다.

2015년 2월 저명한 야권 지도자 넴초프가 모스크바 크렘린 근처에서 총격으로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도 마찬가지다. 전직 부총리였던 넴초프는 우크라이나 돈바스 전투에 투입된 러시아 용병들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던 중 체첸인들에 의해 암살됐다. 영국은 2018년 전직 러시아군 정보부 요원 스크리팔 독극물 중독 사건도 그 배후에 러시아 정부가 있다고 보고 러시아 외교관 23명을 추방했다.

서방 전문가들은 나발니에 대한 이번 독살 시도는 크렘린의 의중을 주관적으로 해석한 부패 관료들과 일단의 정보기구에서 주도했을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나발니가 외세와 결탁 혹은 손잡고 러시아를 배신하는 행동을 적극적으로 했을까 하는 점이 의문으로 남는다. 몇몇 전문가들은 최근 일어나고 있는 극동 시베리아 시위 사태와 벨라루스 시위 사태를 보면서 크렘린이 미래 불안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손을 썼다고 주장한다.  

알렉산더 무라호프스키 옴스크 제1응급병원 병원장이 8월21일 취재진을 상태로 브리핑을 하고 있다. ⓒAP연합

연이은 암살과 독극물 테러는 크렘린 작품?

테러 여부를 떠나 푸틴 대통령의 대표적 정적인 나발니가 쓰러졌고, 이는 곧 권력의 핵심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대다수의 러시아인은 이번 사건을 신중하게 바라보고 있는데, 이는 러시아가 내포하고 있는 사회구조적 특성을 이해해야만 설명이 가능하다.

먼저 언론 자유의 문제다. 러시아 언론 자유 지수는 50.34로 세계 149위에 놓여 있다. 나발니가 유튜브와 같은 SNS를 통한 반부패 투쟁으로 명성을 얻었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러시아 언론이 정부의 통제하에 있기에 러시아 시민들이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는 데 한계가 있다. 

러시아인들의 정치적 냉소와 무기력감도 문제다. 러시아인들은 국가를 운영하는 관료와 집권 엘리트들 대부분이 부패했으며 야당은 무기력하다고 보고 있다.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 비율이 73%에 달한다는 연구조사가 있다.
또한, 소련 붕괴로 인한 고통의 트라우마를 지닌 러시아인들은 자유와 민주주의보다는 안정과 질서를 우선 순위에 둔다. 더 중요한 점은 역사 이래로 악명 높은 막강한 정보기구의 능력과 그에 대한 공포심이다. 러시아인들은 자국의 정보기구에 대하여 공포심에 가까운 경외를 지니고 있다. 러시아에서 스파이라는 말은 한국의 군사독재 시절에 부르던 빨갱이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부패 관료들이 나발니를 서구의 앞잡이, 서구의 스파이라고 부르는 순간 그는 절대적 위험에 노출된 것이다.

부패 관료와 일부 권력 엘리트들의 포장된 애국주의와 오만이 러시아를 병들게 하고 있다. 계속되는 반정부 인사에 대한 살해와 테러가 크렘린의 의지에 따른 것인지 아니면 부패 권력기관의 일탈적 행위인지 여부를 떠나 중요한 점은 이러한 일 때문에 러시아의 국가 이미지가 손상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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