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깐한 유럽 병원서 단번에 알아본 한국産 폐 검진 SW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0.09.09 14:00
  • 호수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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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유니콘⑩ 코어라인소프트] 코로나 리스크에도 100억원 투자
국내 성과 뒷받침되자 ‘글로벌 러브콜’도 줄 이어

인공지능(AI) 기반 의료영상 소프트웨어(SW) 기업인 코어라인소프트는 최근 100억원 규모 ‘시리즈 B’ 투자를 받았다. 이번 투자로 총 150억원의 누적 투자금을 확보했다. 올해 매출은 25억원으로 지난해 14억원 대비 80%가량 신장할 것으로 보인다. ‘2년 내 코스닥 시장 상장’이라는 목표를 향해서도 순항 중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속에서 AI 산업은 분명 각광받고 있으나, 매출로 시야를 좁혀보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특히 AI 의료 분야에선 당장 높은 수익을 남기는 업체가 별로 없다. 아직 연구·개발(R&D) 투자에 상대적으로 많은 비용이 투입되는 데다, 고객인 병원들의 경영 악화까지 겹친 탓이다. 

서울 마포구 코어라인소프트 본사에서 직원들이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코로나 리스크에도 100억원대 투자 유치 

그럼에도 코어라인소프트는 지난 8년간 탄탄하게 구축해 놓은 R&D 역량과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여느 경쟁사보다 앞서가고 있다. 서울 마포구 코어라인소프트 본사에서 최근 만난 김진국 대표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전반적인 신규 투자가 위축되는 와중에도 투자자들이 우리의 가능성을 알아봐줬다”며 “투자금을 시의적절하게 받았다.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향후 더욱 성장할 기반을 마련한, 한마디로 굉장히 좋은 상황이라 판단한다”고 말했다. 

코어라인소프트는 2012년 9월 김 대표 등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대학원 동문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회사다. 폐질환 진단 SW를 주력으로 사업을 확장해 왔다. 창업 초기 비즈니스 모델은 의료기기 회사들을 대상으로 영상 SW 플랫폼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한계를 느끼고 자체 의료영상 SW 제품을 개발하기로 마음먹었다. 그중에서도 시장 잠재력이 커 보이는 폐질환 진단에 집중했다. 

2015년께부터 R&D에 돌입해 2017년 만성폐쇄성폐질환(COPD)을 진단하는 ‘에이뷰(AVIEW) COPD’를 선보였다. 이후 ‘AVIEW LCS’(폐암 검진), ‘AVIEW Modeler’(3D 프린팅), ‘AVIEW Research’(의료 데이터 관리 솔루션), ‘AVIEW LUNG Nodule CAD’(AI 폐 결절 검출 보조) 등으로 제품군을 확대했다. 

특히 폐암 진단 기술은 코어라인소프트가 숙원인 ‘세계적인 기업’을 향해 달려가는 데 든든한 엔진이 되고 있다. 폐암의 경우 자각 증상이 거의 없다. 뒤늦게 발견하면 손쓸 수 없는 상황으로 번져 있기 일쑤다. 전체 암종 중 사망자 수 1위를 차지하고, 5년 상대생존율이 췌장암에 이어 두 번째로 낮다. 조기 진단과 치료가 중요한 이유다. 

폐암 조기 진단을 위한 연구는 2000년대 초반부터 전 세계적으로 활발히 이뤄져 왔다. 국내에서는 연구에 더해 폐암 검진을 국가 암 검진 사업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필요성에 대해선 이견이 없었지만 쉽지 않은 문제였다. 갑자기 많은 사람을 검사해야 하는데, 전산화단층촬영검사(CT) 영상을 판독할 전문가는 부족했기 때문이다. 위험이나 비용 부담이 적지 않은 조직 검사로 들어가기에 앞서 신뢰할 만한 영상 SW를 확보해야 하는 숙제도 있었다. 

정부는 2017년부터 2년간 전국 13개 병원과 함께 국가 폐암 검진 시범사업을 펼쳤다. 정부가 선택한 파트너는 바로 코어라인소프트였다. 시범사업에서 코어라인소프트의 ‘AVIEW LCS’가 안정적인 진단 성과를 내자, 정부는 2019년 7월부터 폐암 검진을 국가 암 검진 사업에 도입했다. 만 54~74세 중 ‘30갑년(담배를 하루 한 갑씩 30년간 피운 것)’ 이상 흡연력을 가진 흡연자를 대상으로 2년마다 폐암 검진을 실시하는 게 골자다. 비용 11만원 중 90%를 건강보험이 부담한다. 

코어라인소프트의 주력 제품이자 폐암 검진 SW인 ‘AVIEW LCS’ ⓒ코어라인소프트 제공

매출 2배씩 상승…2022년 상장 목표 

폐암 검진의 국가 암 검진 사업 추가에 따라 코어라인소프트가 솔루션을 공급하는 병원은 50개로 훌쩍 늘게 됐다. 김윤아 코어라인소프트 과장은 “유럽에서도 폐암 검진을 국가 사업으로 편입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히 일어나는 분위기”라며 “이미 시행하고 있는 한국 상황에 대한 유럽 의료계 관심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코어라인소프트는 안정적인 매출 기반을 앞세워 2년 내에 코스닥 기술특례 상장에 도전할 계획이다. 매출은 지난해 14억원에 이어 올해 25억원, 내년엔 50억원 등 매해 2배가량씩 늘려 간다는 목표다. 

코로나19로 국내외 영업 상황이 주춤한 가운데서도 코어라인소프트는 끊임없이 R&D, 제품 출시, 허가·승인 등 이슈를 만들어내고 있다. ‘AVIEW LUNG Nodule CAD’는 올 6월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았다. 서울아산병원 임상시험에서 기존 CAD 제품보다 20% 이상 높은 폐 결절 검출 능력을 검증받았다. 

이에 앞서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지난 2월 코어라인소프트의 3D 프린팅 SW ‘AVIEW Modeler’를 인증한 데 이어 5월 ‘AVIEW LCS’에 대해서도 510(k) 승인을 해 줬다. 박혜이 코어라인소프트 부장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인허가를 받아 글로벌 AI SW 의료기기 시장을 선점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신제품 ‘AVIEW ACS’는 AI 딥러닝(컴퓨터가 사람의 뇌처럼 사물이나 데이터를 분류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으로 개발된 SW다. 환자의 CT 데이터를 자동 컨투어링(윤곽 형성)으로 제공한다. 간, 신장, 유방, 심장 및 폐를 비롯한 흉부와 복부 대부분의 장기 윤곽을 추출할 수 있다. 기존 대비 최대 80%의 시간 절감 효과가 있다고 코어라인소프트는 설명했다. 아울러 올 하반기 중 두경부와 골반 부위 CT 데이터 컨투어링 솔루션도 출시할 예정이다. 

“글로벌 1등 회사 될 수 있다” 해외 진출 박차 

코어라인소프트가 위기 속에서도 선방하고 더 큰 꿈을 꾸는 비결은 해외사업에 있다. 글로벌 시장분석업체 얼라이드마켓리서치는 세계 AI 헬스케어 시장 규모가 2016년 14억4100만 달러에서 2023년 227억9000만 달러로 급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예상되는 연평균 성장률은 48.7%에 달한다. 이 시장에서 변방국이었던 한국은 선진 의료 시스템과 좋은 데이터 품질을 바탕으로 경쟁력을 키워가고 있다. 

최근 해외의 AI 의료학회, 전시회 등에서 한국 SW 기업들에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고 있다. 많은 국내 AI 의료 기업들이 좁은 국내 무대를 넘어 해외시장 진출을 노린다. 코어라인소프트 역시 해외 진출에 사활을 걸고 있다.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전에는 외국으로 나가 잠재 고객들을 만나거나 북미 방사선 의료기기 전시회(RSNA) 등 글로벌 행사에도 적극 참석하며 제품 홍보에 매진했다. 해외 의료진과 맺어둔 탄탄한 네트워크는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졌다. 

코어라인소프트는 국립 대만대 의대에 COPD 진단 SW를, 유럽엔 폐암 진단 SW를 납품했다. 특히 유럽에서의 성과는 국내외 의료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올해 초 코어라인소프트는 독일에서 폐암 검진 임상 사업인 ‘한세(Hanse)’ 프로젝트의 SW 공급자로 선정됐다. 역시 폐암 임상 프로젝트로, 내년부터 유럽 6개국에서 4년간 진행하는 ‘포인더렁런(4-In the Lung Run)’에도 코어라인소프트 SW가 들어간다. 각각 2만5000건, 2만6000건의 초대형 검사다.  

제품 세부 정보 확인부터 평판 검토, 병원 시연, 시범 설치·운영, 타사 제품과 비교 등까지 장장 6개월여에 걸친 심사 끝에 얻은 천금 같은 기회다. 치열한 경쟁을 뚫었음은 물론이다. 더구나 유럽에서 중요 프로젝트에 한국 기업, 특히 스타트업의 기술을 채택한 것은 이례적이다. 김진국 대표는 “(국가 폐암 검진 시범사업 등) 국내에서 검증된 성과가 유럽 의사들의 신뢰를 얻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며 “의료영상 SW는 물론 의료기기 분야에서도 세계적인 국내 기업이 없다. 우리가 적어도 폐 쪽에선 그런(세계적인) 회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이 밖에 벨기에 루벤대학교병원, 프랑스 포슈병원, 일본 훗카이도대학교병원 등에서도 ‘AVIEW COPD’ 시험 가동에 들어간 상태다. 코어라인소프트가 쟁쟁한 글로벌 회사들의 견제를 뚫고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지 관련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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