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벤츠 한국 시장 선두 경쟁의 이면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0.09.16 10:00
  • 호수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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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차 압도하는 경쟁력” vs “품질·사회 기여 미흡”

“현대자동차가 더 많이 불타는 거 아닌가? BMW 타고 다니는데, 좋기만 하다.” 

BMW는 2018년 이후 연쇄적인 차량 화재 사건으로 논란의 중심에 서왔다. 그럼에도 인터넷상에선 BMW를 옹호하는 의견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가 집계한 올해 8월 BMW 판매 실적(7252대)은 이런 여론이 더욱 확대되고 있음을 방증한다. BMW는 2017년 12월 이후 처음 월간 판매량에서 벤츠를 앞질렀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서는 69.0% 많이 팔렸다. BMW코리아가 설립된 1995년 이후 가장 높은 기록이다. 월간 판매량 7000대를 넘어선 것도 2018년 3월(7052대) 이후 두 번째다. 수입차 모델별 판매 순위 1위인 520(1097대)과 3위 520d(727대)가 BMW의 실적 상승을 이끌었다. BMW는 애써 표정을 관리하며 판매 상승세를 이어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벤츠의 아성 지켜질까 

2위 벤츠의 판매량은 8월 6030대로 10.5% 감소했다. 모델별 판매 순위 10위 안에 A 220 세단(2위) 등 6개가 들어갔으나, 주포(主砲)인 E 클래스 실적이 40% 줄어들며 1위 자리를 뺏겼다.  

벤츠 측은 곧바로 매출 감소 사유를 설명했다. E 클래스가 부분 변경 모델 판매를 코앞에 두고 재고 소진 단계에 들어갔다는 점을 들었다. 벤츠코리아 관계자는 “조만간 E 클래스 부분 변경 모델이 나오면 판매량이 다시 정상궤도로 진입하지 않을까 예상한다”고 말했다. 

벤츠는 지난해 한국 시장에서 역대 최다인 7만8133대를 팔아치웠다. 2018년 대비 10.4% 성장하면서 4년 연속 수입차 판매 1위에 올랐다. 2위 BMW(4만4191대)와 3만3000대 이상 차이가 나고, 3위 렉서스(1만2241대)보다는 6배 많은 실적이다. 

철옹성 같던 벤츠의 아성이 BMW의 대약진 속에서 올해도 지켜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사실 5년 전까지만 해도 BMW가 더 많이 팔렸다. 2015년 신규 등록 대수를 돌아보면 BMW가 4만7877대로 4만6994대였던 벤츠를 앞섰다. 

BMW와 벤츠 모두 표면적으론 “판매량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면서도 은근히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다시 수입차 시장이 커지면서 양사의 경쟁은 더욱 가열될 조짐이다. 2018년 26만 대를 웃돌았던 국내 수입차 판매량은 지난해 24만4000대가량으로 내려갔다가 올해 반등하는 모습이다. 1~8월 테슬라를 제외하고도 17만 대 가까이 팔리며 지난해보다 15% 이상 성장했다. 8월 수입차 신규 등록 대수는 2만1894대로, 1년 전 같은 기간(1만8122대)보다 20.8% 급증했다. 그야말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도 피해 간 호황이다.  

 

코로나19에 아랑곳없는 대호황 

오히려 수입차 업체들은 폭주하는 주문량을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운송 문제로 100% 감당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벤츠 측은 ‘더 뉴 GLB’ ‘더 뉴 GLA’ ‘더 뉴 GLE 쿠페’ 등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3종에 대한 대기 수요 해소도 향후 판매량 신장 요인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BMW 등 약진한 업체들은 8월 실적에서 출고 지연 해소 덕을 톡톡히 봤다. 임한규 수입자동차협회 부회장은 “브랜드별로 물량 부족이 있었는데, 일부 브랜드의 대기 수요가 해소되며 전체 수입차 신규 등록 대수가 증가했다”고 전했다. 

코로나19 사태 속 BMW와 벤츠 인기 모델은 계약 후 차를 인도받기까지 대기 기간이 최장 1년에 달하는 상황이다. 유럽차의 출고 대기 기간은 기존에도 여타 지역에서 오는 수입차들에 비해 긴 편이었다. 운송거리 자체가 워낙 먼 데다 통관, 점검 등 과정을 거쳐야 해서다. 특히 인기가 많은 독일차의 경우 각 브랜드가 매달 공급할 수 있는 물량이 한정돼 있고 편차도 크다. 

모든 리스크에 아랑곳없이 8월 독일차 브랜드는 국내에서 전년 대비 38.3% 늘어난 1만6739대를 판매했다. 올 들어 8월까지 누적 판매량은 11만3799대다. 지난달 전체 수입차 시장에서의 점유율은 76.5%에 달했다. 벤츠와 BMW에 이어 3위를 차지한 아우디(2022대 판매), 5위 미니(1107대), 6위 폭스바겐(881대), 8위 포르쉐(560대) 등 10위권 내에 6개나 들어갔다. 

전문가들은 국내 고급차 시장에서 독일차가 확고한 경쟁 우위를 확보했고, 그중 ‘대표 브랜드’인 BMW·벤츠에 성장의 과실이 집중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반일(反日) 감정 때문에 일본차 수요가 줄어든 이후 BMW·벤츠로 상징되는 독일차가 국내 수입차 시장을 완전히 석권했다”면서 “일본차의 시장 점유율을 흡수한 모양새지만, 결국 품질 경쟁력이 가장 큰 성공 요인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품질 경쟁력에 더해진 접근성 확대는 BMW·벤츠 성장에 가속도를 더하고 있다. 이 연구위원은 “소득 양극화 속에서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는 소비층이 수입차를 구매하는 것은 과거에 비해 훨씬 더 자연스러워졌다”며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도 고급차 수요는 증가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서울 코오롱모터스 BMW 강남전시장(왼쪽), 서울 더클래스 효성 메르세데스벤츠 강남대로전시장 ⓒ시사저널 박정훈
서울 코오롱모터스 BMW 강남전시장(왼쪽), 서울 더클래스 효성 메르세데스벤츠 강남대로전시장 ⓒ시사저널 박정훈

“소득 양극화에 독일車 판매 가속도”

수요를 더욱 끌어올리기 위해 벤츠와 BMW는 시기별·모델별로 가격 할인 정책과 금융 프로그램을 적극 펼치고 있다. BMW 운전자인 30대 A씨는 “주변을 보면 나처럼 차에 관심이 많은 젊은 층이 너도나도 수입차를 구매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BMW의 인기에 대해선 “할인 폭이 크고 엔트리급 모델(초기 구매자를 겨냥한 중저가 모델)의 가격 경쟁력이 워낙 뛰어나다”며 “벤츠에 비해 운전하는 맛도 느껴져 20~30대가 특히 선호하는 것 같다”고 했다. 

국산차인 현대·기아자동차 가격이 높아진 점도 BMW·벤츠 선호 현상에 한몫을 했다는 분석이 많다. BMW 인기 모델인 520d의 출시가는 6780만원에서 7450만원 사이다. 비슷한 사양의 현대차 제네시스 G80 2.2디젤의 5536만원보다 1000만~2000만원가량 높은 수준이다. 수요자 입장에선 ‘조금만 보태면 수입차 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할 만하다. 

업계에서는 당분간 다른 수입차 브랜드들이 BMW와 벤츠의 질주를 따라잡긴 힘들 것으로 내다본다. 그나마 추격하는 업체도 역시 독일차다. 아우디와 폭스바겐은 ‘디젤 게이트’의 악몽을 떨쳐내고 올 들어 서서히 점유율을 회복해 가는 중이다.   

 

각종 논란에도 독일車는 ‘쾌속’   

아우디와 폭스바겐은 ‘디젤 게이트’ 이후 무더기 인증 취소 사태를 겪으며 사실상 차를 팔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디젤 게이트란 아우디와 폭스바겐을 보유한 폭스바겐그룹이 디젤 차량의 대기오염 물질 배출량과 배출가스 저감장치 등을 조작하고, 디젤차를 친환경 차로 허위광고해 판매한 사건이다. 

벤츠도 디젤 게이트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다. 환경부는 지난 5월 벤츠코리아, 한국닛산, 포르쉐코리아가 국내에 판매한 경유차 14종, 총 4만381대에서 배출가스 불법 조작이 있었다고 최종 판단했다. 

벤츠의 배출가스 불법 조작이 국내에서 적발된 것은 이번이 최초다. 게다가 도마에 오른 경유차 14종 중 12종이 벤츠였다. 환경부는 벤츠를 상대로 인증 취소, 결함 시정 명령 및 과징금 776억원(닛산과 포르쉐에는 각각 9억원, 10억원)을 부과하고 형사 고발을 진행하기로 했다. 환경부가 부과한 과징금 776억원은 2015년 아우디·폭스바겐 배출가스 조작에 대한 과징금 141억원을 크게 웃도는 역대 최대 액수다.  

벤츠가 “환경부의 발표에 동의하기 어렵다. 불복 절차를 진행할 방침”이라며 소송전을 예고했지만, 이미지 실추는 피할 수 없게 됐다. 그러나 환경부 발표 이후에도 벤츠 판매량엔 아무런 타격이 없었다. 

BMW 역시 끊이지 않는 차량 화재 이슈에도 꿋꿋이 실적 회복세를 이어가고 있다. ‘불타는 차’란 오명을 얻기 전인 2017년 6만 대에 육박하는 연간 판매량을 올린 바 있는 BMW는 2018년 여름 대규모 리콜 사태 이후 실적 악화의 터널로 진입했다. 2017년 5000대 수준이었던 월평균 판매량은 2019년 4000대 선 밑으로 떨어졌다. 

터널은 짧았다. 불매운동 확산이나 한국 시장 철수 압박 등 BMW가 우려했던 대형 악재는 터지지 않았다. 올해 들어서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다. 올 1~8월 누적 판매량은 3만6498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 급증했다. 2년8개월 만에 수입차 월간 판매량 1위를 탈환하며 완전한 회복 국면에 들어섰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수입차, 특히 BMW·벤츠의 소유자나 수요자 상당수는 각종 논란이 발생해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자기 만족감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며 “심지어 ‘국산차에서도 불 많이 난다’ ‘현대·기아차 도와주려고 괜히 수입차를 압박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그만큼 수입차에 대한 팬심 내지 국산차를 향한 반감이 두텁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 밖에 벤츠와 BMW가 사회공헌·투자 등에 소극적이란 비판도 항상 따라다닌다. 한국에서 수조원대 매출을 올리고 소비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면서도 그에 상응한 역할을 다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2015~19년 업체별 감사보고서를 보면 벤츠코리아와 BMW코리아의 지난 5년간 누적 기부금은 각각 125억7000만원, 89억7000만원으로 집계됐다. 

벤츠코리아 관계자는 “감사보고서에 잡히지 않은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다임러트럭코리아, 딜러사 등의 활동까지 합치면 최근 5~6년간 기부 액수가 270억원 정도”라며 “이런 사회공헌뿐 아니라 전시장, 서비스·물류센터 구축 등 투자도 계속 확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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