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자 응징’ 한답시고 ‘마녀사냥’ 일삼는 디지털교도소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9.16 08:00
  • 호수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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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고한 사람들 공격하면서 공분 대상 된 ‘디지털교도소’…“사법 불신이 초래한 존재” 지적도

‘현대판 자경단’으로 불렸던 디지털교도소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지난 7월6일 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 ‘웰컴투비디오(W2V)’ 운영자 손정우씨(24)를 미국에 송환하지 않겠다고 법원이 결정하자 국민 분노가 폭발했다. 이후 포털사이트에는 ‘디지털교도소’가 실시간 검색어로 올라오면서 뜨거운 국민적 관심을 받았다.

이곳은 악성 범죄자들의 신상을 공개하는 사이트다. 아동학대범·성범죄자·살인범 등이 주된 대상이다. 최근까지 손씨를 비롯한 100명이 넘는 개인 신상이 올라왔다. 사진은 물론 생년월일·출신학교·전화번호 등 개인정보까지 공개하고 있다. 사법 불신이 최고조에 달한 상황에서 디지털교도소의 출현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왔다.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재판 결과에 낙담하는 이들에게 대리만족을 준 것이다. 네티즌들은 디지털교도소를 응원하며 댓글로 범죄자들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다.

한때 네티즌들의 뜨거운 응원 댓글 이어져

디지털교도소 운영자는 “대한민국의 악성범죄자에 대한 관대한 처벌에 한계를 느끼고, 이들의 신상정보를 직접 공개해 사회적인 심판을 받게 하고, 범죄자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처벌, 즉 신상 공개를 통해 피해자들을 위로하려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디지털교도소의 신상 공개로 인해 엉뚱한 피해자가 생겨나면서 비판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디지털교도소에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의 가해자 중 한 명으로 지목된 30대 김아무개씨의 경우 이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동명이인으로 밝혀졌다. 격투기 선수 출신으로 유튜브 채널과 쇼핑몰을 운영하는 그는 사진 등 개인정보가 게시되면서 많은 피해를 보았다. 김씨가 문제를 제기하자 디지털교도소는 사과와 함께 ‘실수’라며 김씨에 대한 정보를 삭제했다.

채정호 가톨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도 한동안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다. 지난 6월 디지털교도소는 ‘위장 판매자에게 접근해 n번방 자료 등을 구매하려 했다’며 채 교수의 휴대전화 번호와 사진, 직장명 등 신상정보를 올렸다. 이후 채 교수는 저주와 욕설이 담긴 휴대전화 문자를 하루에도 수십 통씩 받았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그를 처벌해 달라는 글이 올라왔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서는 ‘비윤리적인 의사’라며 윤리위원회에 회부하고 강의 중단까지 요구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자 채 교수는 울분장애와 우울증에 시달려야 했다.

결국 참다못한 채 교수는 디지털교도소 운영자를 명예훼손으로 경찰에 고소했다. 경찰은 채 교수의 휴대전화 디지털 포렌식에 들어갔고, 그가 주고받은 메시지 약 10만 건을 분석했다. 그 결과 삭제된 데이터를 포함해 채 교수의 휴대전화에서는 디지털교도소에 게시된 것과 같은 내용은 없었다. 디지털교도소가 주장하는 시간대에 채 교수가 텔레그램에 접속한 적도 없었다. 성착취물을 구매하려는 것으로 의심할 만한 대화·사진·영상 등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경찰은 “채 교수를 사칭한 이가 디지털교도소에 메시지를 보냈거나, 누군가 메시지를 합성해 조작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채 교수는 경찰 수사를 통해 결백이 입증되고 억울함도 풀게 됐다. 하지만 신상 공개로 인해 입은 정신적 피해는 돌이킬 수 없게 됐다.

디지털교도소로 인한 피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급기야 ‘지인능욕’을 요청했다는 고려대생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디지털교도소는 지난 7월 정아무개씨(21)가 ‘지인능욕’을 요청했다는 내용의 텔레그램 캡처와 그의 이름과 얼굴 등 신상정보를 8월12일 게시했다. 지인능욕은 지인의 사진을 음란물에 합성해 인터넷상에서 공유하는 것을 말한다.

디지털교도소는 정씨가 7월6일 텔레그램에서 22세 지인에 대한 능욕을 요청했고, 피해자 측이 이를 디지털교도소에 제보하자 자신의 전화번호와 함께 반성하는 요지의 음성파일을 보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음성파일과 텔레그램 대화 화면 캡처 사진 등을 공개했다.

하지만 정씨는 억울함을 주장했다. 그는 고려대 온라인 커뮤니티 ‘고파스’와 ‘에브리타임’에 결백하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정씨는 “디지털교도소에 올라온 사진·전화번호·이름은 내가 맞다”면서도 “그 외의 모든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 모르는 사이트에 가입됐다는 문자가 와서 URL(링크)을 누른 적이 있다. 그때 휴대전화 번호가 해킹당한 것 같다”며 억울함을 주장했다. 정씨는 디지털교도소를 명예훼손으로 경찰에 고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디지털교도소는 정씨의 해명이 거짓이라며 그의 정보를 삭제하지 않았다. 운영자는 정씨의 신상을 공개한 맨 위에 정씨의 해명을 올려놓았으나 그 아래에 메시지 캡처 등을 근거로 들며 이를 반박하는 내용으로 채웠다. 결국 정씨는 정신적 고통과 억울함을 호소하며 자택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지인들에 따르면 정씨는 디지털교도소에 ‘지인능욕범’으로 올라온 후 온갖 악성 댓글과 협박 전화, 문자메시지 등에 시달렸다고 한다. 이로 인해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몇 차례 쓰러지다가 결국 죽음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정씨가 소속된 학과 학생회는 “억울함을 풀고 사실관계를 파악해 알리겠다”고 밝혔다. 디지털교도소는 정씨가 사망한 후에도 그의 신상을 공개로 유지했다.

디지털교도소에 신상 공개된 고려대생 정씨의 정보 ⓒ디지털 교도소 캡처

경찰, 운영자 검거에 속도

경찰에서도 디지털교도소에 대한 본격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지난 7월 “개인이 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은 위법 소지가 있다”며 수사에 나섰다가, 최근 고대생 정씨의 극단적 선택으로 사회적 파장이 커지자 속도를 내고 있다.

현재 디지털교도소 운영자는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아동청소년보호법’ 위반 혐의, ‘개인정보법’ 위반 혐의 등으로 입건됐다. 아동청소년보호법에 따르면 청소년 대상 성범죄자의 신상 공개는 여성가족부의 ‘성범죄 e알림’ 사이트를 통해서만 해야 한다.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대구지방경찰청은 운영자 IP와 서버 접속 기록 등을 확인해 일부 운영자의 소재지를 확인했다. 경찰은 운영자 검거를 위해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에 공조를 요청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조만간 박아무개씨를 비롯한 디지털교도소 운영자가 검거돼 국내 송환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9월8일 오후부터 디지털교도소는 접속이 불가한 상태다. 운영진이 사이트 운영을 포기하고 폐쇄한 것인지 일시 중단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이런 상황 만든 사법 시스템 개혁해야”

디지털교도소는 충분한 검증 없는 폭로로 인해 처음부터 한계를 명확히 드러냈다. 무고한 사람을 범죄자로 둔갑시켜 신상을 공개하면서 오히려 응징의 대상으로 삼았던 범죄자의 모습을 답습했던 것이다. 악용될 소지도 많았다. 누군가 원한을 품고 허위 제보를 하거나 채정호 교수의 경우처럼 타인을 사칭하거나 메시지를 합성해 조작하는 등의 방법으로 피해자가 생기면 구제할 방법이 없게 된다. 법치주의를 무시한 사적 제재의 위험성을 안고 있었던 것이다.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디지털교도소는 사적 처벌을 하는 것이고, 내용 자체가 명예훼손”이라며 “문명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디지털교도소’의 등장은 사법부의 불신이 초래한 측면이 강하다. 현행 사법 시스템하에서는 성범죄자에 대한 ‘정의로운’ 처벌이 불가능하다는 일반 국민들의 불신과 무기력이 깔려 있는 탓이다. 때문에 지금처럼 사법부의 불신이 해소되지 않는 한 악순환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제2, 제3의 디지털교도소 출현은 불을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이대희 한국범죄연구원 원장은 “지금 우리 국민들 중 상당수는 법원의 판결이 정당하다고 보지 않는다. 또 피해자보다 범죄자의 인권을 우선한다는 비난도 계속되고 있다. 법원 자체를 믿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며 “이런 상황에서 디지털교도소가 출현했고 문제 제기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면도 없지 않았으나 피해자가 생기면서 한계를 드러냈다. 사적 제재가 있어서는 안 되지만 이런 상황을 만든 사법 시스템의 개혁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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